생계연대 밥상연대, 가장 구체적 연대
2,000일 넘는 콜트콜텍 투쟁, 다시 생각한 투쟁의 의미
    2012년 07월 28일 06: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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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7월 28일) 아침에 국내에서 노르웨이로 돌아왔습니다. 암스테르담행 비행기가 3시간반 연발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는데, 암스테르담 공항 근방의 한 호텔에서 보낸 밤을 포함해서 도합 약 20시간 정도 된 길고 힘든 여행에서 딱 한 가지가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번에 2000일을 맞이한 콜트/콜텍 투쟁이었습니다. 콜트콜텍 투쟁이 2000일을 맞이하기 며칠 앞두고 제가 그 투쟁의 현장을 찾아간 일이 있었는데, 그 때의 인상들을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밥 먹고 사는 業은 역사쓰기, 역사가르치기인데, 제가 그 투쟁의 현장에서 본 것은 바로 상상 이상의 고통 속에서 역사를 만들고 있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단, 거기에서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대한민국 선남선녀의 절대 다수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기야 동일방직 투쟁을 지켜보고 있었던 1970년대의 한국 지식인들이 “공순이”들이 벌이는 이 일이 새로운 역사, 즉 밑바닥부터의 저임금 피차별 노동자들의 민주적 조직의 시초라는 것을 과연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유신반대 투쟁이 “다”이었던 시절에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비교적으로 둔감했는데 말입니다.

저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늘 문장마다 “노동자”를 끼워 넣지만, 우리 주위의 다수의 피고용자, 즉 노동자들에게는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그들의 역할에 대한 인식은 거의 전무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안타깝게도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주인공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당분간 실패한 자본가”/”자본가 지망생”에 더 가깝습니다.

마치 대학의 시간강사 중에서는 시간강사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대학이라는 악질 기업을 뒤엎어 전복시킬 열혈투사들보다 “교수 되기”에 실패한 “교수 지망생”들이 훨씬 더 많은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통계적으로 본 한국의 평균 노동자는 몇년 뼈 빠지게 힘들게 일한 뒤에 돈 모아 작은 가게라도 열어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려는 데에 전념하는 중소기업의 미조직 비정규직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의식없는” 노동자에 대한 질책이라기보다는, 그저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일 뿐이죠.

“노동자”라는 게 태어나서 절로 얻어지는 태생적 신분이라기보다는 사회화과정에서 획득되어지는 자기 의식의 형태인데, 비극적이게도 한국 사회에서 형식상의 노동자를 진짜 노동자로 만들어주는 요소들은 아직도 좀 드물죠.

이 요소는 무엇인가 하면 첫째 절망, 즉 자신의 위치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고, 둘째 조직이고, 셋째 투쟁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작동되지 않는 이상 돈 모아 치킨집이라도 차리는 걸 꿈꾸는 피자 배달부로서는 노동계급의 의식적인 구성원으로 거듭나기가 너무나 힘들 것입니다.

절망이라는 게 여기에서는 무슨 의미입니까? 피자집부터 대학까지의 각종각급 비정규직들이 현존 체제 안에서는 그들 중의 절대 다수가 전임교수도 피자집 주인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도 될 수 없을 점,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이 세세대대로 신흥빈민으로서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는 점을 톡톡히, 뼈저리게 의식한다면, 그들이 하나의 “대전환”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들이 개인적 차원의 “주류”편입 투쟁에서 집단적 차원의 반체제적, 계급적 투쟁으로 나아갈 것이고, 후자의 과정에서 연대, 단결, 동지애를 익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임금 노동의 착취로 움직여온 체제의 골간부터 동요하게 될 것이죠.

조직, 즉 노조가입은 노동자에게는 다수의 연대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위한 투쟁의 아비투스를 익히게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투쟁은, 여태까지 “나”와 “가족”만을 알아온 사람에게는 가족주의에서 계급주의로의 의식 전환의 기회를 줍니다.

계급적 연대라는 추상적 용어는, 투쟁의 과정에서는 현실적으로 구체화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과정을, 제가 콜트 투쟁의 현장에서 봤습니다.

저임금 노동에 의한 악기 제조로 “재벌”쯤이 된 콜트의 사장에게는 노동자는 아무래도 우마, 가축과 같은 존재이었던 셈입니다.

그들이 바깥에서의 자연적 시간에 대해 눈치 채고 무제한적 특근, 잔업에 반발할 것 같아, 공장에서 창문들이 까막히 막혀 있었습니다. 공장이라기보다는 “축사”에 더 가까운 곳이죠.

업주의 위장폐업과 부당 정리해고, 그리고 자율적 노조가 아직도 불가능한 중국, 베트남으로의 사실상의 공장이전을 반대해서 들고 일어난 노동자들에 대한 사장의 대응은, “대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진압”이라고 불러져야 할 것입니다.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 대한 단전단수 조치, 폭력을 일삼는 용역 투입, 농성 중인 공장 건물의 위장매매 시도까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로 “세계적” 악기 생산업자로 알려지게 된 사장에게는 노동자란 “대화 상대”라기보다는 순치되지 않으면 무조건 각종의 초강경 조치로 팰 만큼 패야 하는 “가축”이었다고 봐야죠.

국립오페라합창단도 함께 한 콜트콜텍 투쟁문화제(사진=참세상)

하기야 노동자들은 그렇다 치고 한국 기업인에게는 국법도 다소 우스운 존재에 불과합니다. 대법원이 콜트악기 노동자 해고를 “부당 해고”로 인정했을 때에 사업주의 반응은 무엇이었을까요? 세계 노동운동사상 전례 찾기 드문 일이지만, 그는 복직돼야 할 노동자들을 그저 다시 한 번 해고 통지했을 뿐이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복직 판결을 계속 따와도 나는 너네들을 어차피 계속 해고하면 될 테니 해볼테면 잘 해보라, 이것이었습니다.

사업가가 그렇게 살아도 아무 제재도 받을 수 없는 나라는 바로 기업천국 노동자지옥, 우리들의 대한민국입니다.

힘의 비대칭성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콜트 노동자들이 2000일, 세계노동운동사상 최장의 파업을 벌여왔으며 지금도 전혀 포기할 의사는 없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미친 자본”의 광적 폭주에 맞서는 것인가요? 바로 “가족” 들 사이의 경계선과 국경을 넘는 연대의 온기입니다.

일부 동료들이 곰팡이가 핀 차가운 공장 안에서 몸을 망가뜨리면서 농성하는 동안 또 일부의 동료들이 생계투쟁에 나서 고추장, 된장, 장아찌를 만들어 파는 등 그들이 생계를 같이 책임지는 하나의 커다란 “非혈통적 가족”이 된 것이었습니다. 생계의 연대, 밥상의 연대 이상의 연대를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한겨레> 등 자유주의적 언론까지 포함해서 국내에서 그들의 투쟁을 상대적으로 외면해도 그들은 해외에까지 연대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직업적으로 기타를 쳐야 하는 톰 모렐로 등 상당수 외국 음악인들이 인제 5년 이상 집이 아닌 천막 안의 침랑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폭력과 착취로 만들어지는 기타의 이용을 스스로 거부했습니다.

미국 원정투쟁에서 미국 문화예술인들도 관심과 지원을 보냈다(사진=민주노총)

심지어 미국에서 반동적 미디오의 전형으로 알려진 팍스뉴스에서마저도 콜트 문제를 더이상 외면하지 못해 미국 원정투쟁 간 콜트 노동자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렇게 하지도 못해온 국내 주류 미디오들을, 그렇다면 팍스뉴스 이하의 악질로 봐야 되지 않겠는가요?

이미 세계사에서 전례 없는 2000일 파업을 해온 그들은, 과연 언제 승리를 거둘는지 예상하기가 힘듭니다.

총선이니 대선이니 어느 고위직 도둑이 무엇을 훔치게 될 것인가 라는 중차대한 문제에 일년씩 전념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이 모든 정치적 쇼들보다 백배 더 중요한 콜트와 같은 투쟁에 대한 외면 분위기가 강해 사업주에 대해 사회적 압력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아 문제입니다.

콜트 노동자들이 겨울이면 냉장고가 되는 공장 안에서 점차 각종 고질 질환의 환자로 변해가는 것은, 이 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가지지 못해온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입니다.

그러나 승리가 당장 오지 않아도, 콜트노동자들이 이미 엄청난 성취를 한 것이죠.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실패한 자본가”/”자본가 지망생”에 머물러 있는 곳에서는, 그들이 해외 동료들의 연대를 받고 같은 사업주의 손에 또 새로이 고통 받는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의 동료 노동자들의 상황을 걱정해주는, 의식이 있는 노동계급의 구성원이 된 것입니다.

우리 상상 이상의, 초인적인 2000일 투쟁은, 그들을 계급의 전위, 선진노동자로 만든 것이죠. 앞으로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돼도, 그들이 이번 투쟁에서 얻은 국내, 세계 모든 노동자들과의 연대 정신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죠.

추상적이고 멀게 느껴지는 “계급”이나 “국제 연대” 같은 용어들은, 그들에게 피부에 와닿는 현실, 삶이 된 것이죠. 아, 그들이 겪은 고통과 그들이 그 사이에 얻은 깨달음들이 노동자들 사이에 번져서 이 미친 체제를 통째로 뜯어고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를, 저는 계속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공유해야 우리 모두가 새로운 역사의 창조자가 될 수 있을 것이죠.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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