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개의 기억이
    진정한 역사 화해를 낳는다
    [다큐 사진] 이재갑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2016년 03월 16일 02:1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장면 1.

    2016년 2월. 부산의 반전평화단체인 아시아평화인권연대 활동가들이 베트남 중부 빈딘성에 있는 따이빈싸를 찾았다. 한국군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이곳의 학교에 장학금과 컴퓨터, 정수시설 등을 지원하고 한국군이 자행한 빈안 학살 50주기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다. 아시아평화인권연대는 민간 시민운동 차원에서 베트남과의 역사 화해를 하기 위해 10년 동안 한국군이 학살한 지역에서 장학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참가한 일행 가운데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 있다. 부산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박숙경씨다. 그는 베트남전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참전 군인이었다.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가족은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 보면 가해자이겠지만, 개인 차원에서 보면 엄연한 피해자이이기도 하다. 딸의 입장에서 자신의 아버지도 포함되는 한국군 만행의 참상이 민낯으로 드러난 위령제에 참석한다는 것은 감내하기 정말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눈물을 연신 흘려야 했고, 지역민들은 사과하러 찾아온 불구대천 원수를 환대해야 했다. 만감이 교차하면서 작지만 소중한 화해의 발걸음이 한 걸음 내딛어 졌다.

    1-1

    2013. 빈딘성 따이빈사

    장면2.

    2015년 4월. 베트남 생존자 두 사람이 한국에 왔다. 평화박물관 초대로 종전 40년 만에 처음으로 온 것이다. 서울에서는 그들의 방문과 때를 맞춰 사진가 이재갑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이 전시되었다. 그런데 조계사에서 열릴 행사는 월남전참전자회, 고엽제전우회 등의 반발로 열리지 못했고, 사진전 또한 상당한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국가에서 주도한 자유 민주주의 수호의 전쟁이었다는 것이고, 전쟁 중에 그런 일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같은 장면이 부산에서도 벌어졌다. 부산민주공원에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을 듣는 대회를 열었는데, 대회장 밖에 그 사람들이 몰려와 구호를 외치면서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은 민간인을 학살한 게 아니고 전쟁 중에 적군인 베트콩을 죽인 것이라 했다. 그들이 밖에서 항의 집회를 하는 동안 생존자들은 대회장 안에서 학살 현장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전달했고, 증언을 듣던 시민들은 참전 군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더욱 키웠다. 아무도 그들 참전 군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전쟁의 역사 안에서 가해자라고 규정되는 그 참전 군인들을 온전히 학살자라고만 몰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그들은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막강한 힘 앞에서 저항할 수 없는 약한 인민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조국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전쟁터로 나아갔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그들이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들이 남의 나라 전쟁에 끼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의 정통성 없는 권력 때문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눈 밖에 나서는 안 되었고, 그 차원에서 박정희는 미국의 반공 전쟁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사지에 던지게 한 것이다. 참전 군인들은 전쟁터라는 사지에 몰렸고,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말하건대, 베트남전의 가해자는 미국과 박정희다. 설령 참전 군인을 가해자라고 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가해자가 된 또 하나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화해다. 화해가 아무리 중요하다더라도 민간인 학살과 같은 만행을 유야무야 대충 덮어주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 화해는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한 쪽의 의견이나 심정을 묵살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함이다. 이해하고 공감하지 않고서는 화해와 그 뒤를 잇는 평화를 구할 수는 없다.

    진실이라고 항상 선은 아니다. 진실이 또 다른 폭력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역사에서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더군다나 진실 규명은 다중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적 맥락에서 시도되어야 한다. 하나의 진실, 하나의 역사적 실체라는 건 존재해서는 안 되는 허상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서 있는 나 개인의 역사가 국가와 민족 혹은 어떤 공동체의 역사에 대해 열등하거나 가치가 없는 혹은 그래서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극은 가해자와 피해자, 국가와 개인 그리고 예의 진영 논리 사이에서 묘하게 헝클어져 있다. 진실이 과연 객관적일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차치하고서라도, 어쨌든 진실에 가까이 접근했으면, 화해를 해야 하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려 노력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2-1

    2012. 꽝아이성 빈호아사

    [사진 3] 2012. 빈딘성 프억호아사

    2012. 빈딘성 프억호아사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한국 정부는 남의 나라 전쟁에 참가한 것에 대해 나서서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한국이 일본에 식민 지배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시도 때도 없이 사과하는 독일과 같은 태도를 우리가 일본에게 요구하듯, 우리는 베트남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당국의 사과로 화해가 되고 문제가 일단락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는 없다. 진정한 화해와 해원은 당사자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피해자인 그 참전 군인들, 그들이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가 사과를 함으로써 공식적인 가해자가 되어 버린 그 피해자를 시민 사회가 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제대로 숨 쉬고, 할 말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베트남의 민간인 학살 생존자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살아나서 영웅이 되었다지만, 모두 허울 좋은 국가주의 망령의 춤 장단에 놀아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의 생존 위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조국이요, 민족이요, 해방의 이름뿐이다. 그래서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두 당사자가 만나서 원을 풀고 한을 풀어야 하는 것이다. 해원은 조국과 민족과 해방의 큰 이름 속에서 짓눌려 살아온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위함이다.

    2015년 4월, 한국군이 자행한 퐁니 퐁넛 민간인 학살에서 살아난 사람들이 한국에 온 것은 죄를 추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했다. 사과를 강요하거나 배상을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오로지 화해를 하고 싶어서 라고 했다. 비록 화해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개인으로나 공동체로서나 의미 있고 중요한 발걸음이 디뎌 졌다. 이제 화해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하나씩 하나씩 작은 일부터 해결하면서 나아갔으면 한다.

    우선, 그 생존자들이 다시 오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두 사람일지라도 참전 군인 몇 사람을 만나도록 해야 한다. 그날의 참상을 대중에게 직접 전하는 강연회는 자제했으면 한다. 설사 실체적 진실이 하나의 역사로서 존재한다 할지라도 참상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 또 다른 피해자인 참전 군인들과 그 생존자들과 만나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일 수는 없다. 만남의 자리에서 베트남 생존자의 피눈물도 흐르고, 한국인 참전 군인의 피눈물도 흘러야 한다. 그 두 눈물이 함께 바닥을 적실 때 화해의 실타래가 풀리는 것이다. 국가가 먼저 하고, 이제 당사자가 사과하고 받아주고 화해하면, 시민들이 그 뒤를 받혀줘야 한다.

    정성이 배어나고, 감동이 퍼질 때 비로소 화해는 이루어진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천천히 한 걸음씩, 삼보일배 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그러면 그 증오비에 새겨진 ‘증오가 하늘에 닿아 …’가 ‘정성이 하늘에 닿아…’로 바뀔 수 있다. 정성을 다 하지 않으면 그것은 정치일 뿐이다. 역사적 화해는 정치로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일로 하는 것이다. 사람의 일은 정성과 감동이다.

    4-2

    2012. 꽝남성 유이탄사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이것은 화해를 하고, 그 위에서 갈등을 치유하고자 하는 사진가의 외침이다. 사진가 이재갑은 한국의 여러 사진가 중에 내가 아는 유일한 전쟁이 남기고 간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일제 강점기와 연계되고 분단과도 다시 연계되는 사할린 동포, 2차 세계대전과 연계되는 조선인 강제 징용과 일제의 한국 내 역사, 분단 및 한국전쟁과 연계되는 미군 혼혈인 그리고 지금의 베트남 전쟁 등 어떤 사진가도 접근하지 않은 전쟁과 역사를 재현하는 거대 서사시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항상 그렇지만 그는 사진가로서 거시사가 강제하는 구조에 매달리지 않는다. 민족, 국가, 이념에 묻혀버린 작은 개인의 이야기를 말 하고자 한다. 반전을 주장하고 평화를 외치지만 동시에 하나의 일방적 시각을 반대하는 목소리다. 이번 사진전의 제목이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사진은 그가 가지고 있는 두 개의 기억만큼이나 이중적이다. 증오비가 아름답게 보이도록 재현한 사진들, 그 잔혹의 아름다움을 품은 이미지는 진실과 화해가 이중주로 연주되는 소망을 담는다.

    그 사진전이 3월 11일부터 4월 3일까지 부산민주공원 기획전시실에서 전시된다. 오픈 초대는 3월 18일(금) 18:00에 열리는데, 1부는 사진비평가 이광수(부산외대)와 사진가 이재갑의 다큐멘터리 사진, 사진으로 하는 역사의 기록, 사진가 이재갑의 세계관 등 사진에 대한 대담이 있겠고, 2부는 전진성 교수(부산교대)의 사회로 이재갑, 서해성(작가, 기획자), 이광수가 베트남전쟁, 진실 규명, 역사 화해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바라건대, 참전 군인과 그 가족들의 발걸음이 있어 눈물로 반성하고, 사과하고, 화해하고 용서하는 자리의 첫 단추가 끼워졌으면 한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