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원의 집안 걱정, 정의당의 정치학
    [기고] 정당정치의 지속성...'로또정당'은 되지 말자
        2016년 03월 11일 08: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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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전 대변인 박성식씨가 기고 글을 보내왔다. 민주노총의 전 대변인이 아니라 정의당의 당원이자 대의원으로서 보낸 기고 글이다. 진보정당과 노동의 문제에 대한 필자의 고민이 녹아 있다. 일독을 권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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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 일상사에서 아이들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때가 언제일까? 짐작컨대 부부싸움이 아닐까 싶다. 어릴 적 기억처럼 진보 내부의 조직 다툼은 나에게 상당한 불안감을 준다. 계속 이 꼴이면 대중에게 외면 받아 결국 진보정치가 소멸하지 싶고, 다툼을 거부하는 본능적인 짜증이 치밀기도 한다.

    그래서 정의당 어느 후보의 일부 선거홍보는 밉살맞다. 통합진보당 출신은 “당선돼도 국회에서 제대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다”, “통합진보당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 시작해야”한다니, 이런 저열한 네거티브를 떠나지 않고선 “정의당은 다르다”고 말하기 민망하다.

    그럼에도 그러한 정치선전을 전략적 선택이라 말하는 당원도 있다. 도대체 그런 전략은 뭔지 난 알 수가 없다. 집단은 실체가 모호한 주장을 전략이라는 개념으로 얼버무리는 나쁜 습관이 있다. 이미 과거가 된 통합진보당을 깔아뭉개는 게 정의당의 전략은 아니지 않는가?

    정당정치의 세력화와 지속성, 노동에 있다

    이 같은 정의당 일부의 정서적 태도도 불안하지만, 가장 불안한 점은 노동문제에 대한 정의당의 인식이다. 정의당의 일부 당원들에게는 기존 노동운동과 진보정치를 분리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느껴진다. “노동의 희망, 시민의 꿈”이란 정의당의 핵심 슬로건도 그러한 분리경향을 통합하려는 노력이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그 둘은 분명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전혀 별개 일 수 없으며 어떤 의제에 집중하고 어떤 행동양식을 가지느냐 정도의 차이다.

    운동이 아닌 개념으로 말하자면 시민이 더 보편적이지만, 시민의 핵심 집단은 바로 노동자다. 또한 시민은 포괄적 존재지만 조직적이지 못하고, 그에 따라 세력으로서의 일관성과 지속성은 노동을 따라올 수 없다. 정당을 만들고 지속적인 세력으로 확장되려면 노동은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진보정당은 더욱이 그러하다.

    정의당의 상당수는 과거 80년대식 노동운동 혹은 민중운동의 방식이 정당정치의 가능성과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가벼이 여긴다고 볼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이다. 과거의 혁명론은 현재의 정보화시대, 다원적 대중주의 시대와 잘 호응하지 못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폴 슈메이커(‘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는 “하나의 이념으로 전체를 설명하고 모든 문제에 해법을 내리려는 ‘신념’을 내려놓고, 여러 이념들의 장단점을 살려 공적문제를 다루는 ‘유연함’을 선택했을 때 비로소 개인과 공동체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념’은 위대하지만 나는 이 생각을 지지한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란 유연함을 그 속성으로 하며,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혁명의 걸림돌이긴 하다. 여기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혁명이냐 민주주의냐?

    정의당의 정책 제일주의, “좀 걱정돼”

    정의당은 민주주의를 택했다. 그렇다고 급진적 진보의 가능성마저 버리는 것이 민주주의는 아니다. 이 기본적 전제 위에서만 보수적 개혁정당과 다른 진보정당이라 자임할 수 있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핵심 영역이 노동문제임을 확고히 지향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가 역사적 지위를 획득한 것은 노동자와 여성들이 보통선거권 획득을 위해 투쟁했기에 가능했으며, 이를 위해 처음으로 대중정당이라는 조직을 만들었기에 등장했다. 즉 노동운동이 바로 체제를 바꾼 민주주의의 근대적 기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작도 그러했지만 과정도 마찬가지다.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의 힘이 강할수록 불평등은 덜하고 빈곤율도 낮다.

    한국시민은 “투표해봐야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당의 노동 대표성이 클수록 정치의 가능성은 높고 투표율도 높아진다. 덤으로 소수자에 대한 보호수준도 높아진다. 정의당이 이 역사적 경험을 한국에서 구현하길 기대한다.

    원로 정치학자 최장집은 한국정치가 가장 핵심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는 “절대다수 노동인구의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라 했으며, “이 문제에 적절한 정책 대안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공허하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러하다. 그 공허한 민주주의는 이미 우리가 경험했고 살고 있는 정치체제다. 이것은 또 민주정부가 무능을 낳았던 배경이기도 하다. 이로 인한 정치적 무관심, 냉소주의, 낮은 투표율이라는 저조한 정치 참여는 다시 노사관계와 같은 중대 이슈를 정당정치의 밖으로 밀어내고, 덜 중요하거나 심지어 가십거리를 둘러싼 정당갈등, 인물정치로 왜곡된 오늘의 정치현실을 낳았다.

    반면 전통적 좌파집단은 종종 문화적 제도적 수단이 자본가와 제국주의의 도구라고 단순화시킨다. 그러나 제프리 골드파브(‘작은 것들의 정치’)가 말했듯 “가장 중요한 점은 제도들을 정치적으로 채색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그와 같은 문화적 제도들을 자유로운 공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는 하나의 공간으로 확립”하는 것이다. 이점에 주목한 것이 기존 좌파와 달리 정의당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당은 제도를 통한 정치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 때문에 정의당은 격렬한 투쟁에 올인하기 보다는, (제프리 골드파브) “현명한 민주주의 운동은 보통 시민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는 의견에 주목한다.

    그럼에도 정의당은 뭔가 오해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혐의를 난 가지고 있다. 바로 “정책제일주의”를 앞세우는 정의당의 모습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 슈나이더(‘절반의 인민주권’)는 “사회시스템이 발전한 공적영역에서는 약자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세력을 규합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대중정당이며 민주주의”라고 정의한다. 또한 “민주주의가 갖는 진정한 가치는 의견분포를 해석하는 차원이 아니라, 의견을 형성해 가는 차원”이다.

    즉 정당정치의 요체는 세력화이자 조직화이며, 이에 기초한 일상적 정치행위여야 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 바로 자본가와 노동자들이다. 그 중 자본가들과 안정적 일가를 이룬 것이 새누리당이고, 더민주의 세력기반은 모호하다. 정의당은 달라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집단과 함께 세력화를 이루고 정당의 지속성을 확고히 하려는지 대답해야 한다.

    조직적 실천 없는 ‘로또정당’은 되지 말자

    아이디어가 빛나는 정책? 중요하다. 번뜩이는 프레임 한 방? 뜰 수 있다. 그러나 정치란 그것만 가지고는 불안하다. 과도하게 정책이나 프레임에 의존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 무엇보다 그러한 정치기술은 정당의 안정과 지속성을 보장해주지 못하며 조직의 근육을 퇴화시킨다.

    즉 꾸준한 실천과 오래가는 성과를 지향하기보단 뭔가 드라미틱한 변화를 가져올 정치 이슈나 정책을 궁리하기에만 골몰한 결과, 실천 없는 로또정당으로 전락할 위험마저 도사린다. 게다가 엘리트정당으로 협소해질 위험도 있다.

    정책이나 홍보가 운동과 투쟁으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프레임만 추구하면 전문가에게 의존한다. 그런데 전문가가 누구인가? “한 분야에선 전부를 알려고 하지만 그 밖의 많은 문제에 대해선 무지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샤츠슈나이더)이다. 그러니 일각에서 “주장 말고 당신들이 할 줄 아는 게 뭐냐?”고 물을 수도 있고, 진정 민중의 현실을 이해할 줄 모른다는 핀잔을 듣기도 십상이다. 또한 엘리트정치는 전문가라는 자부심 때문에 대중과 괴리될 가능성이 많고, 자기가 아는 선에서 다 판단해 결정하므로 편협해질 수도 있다.

    지금이든 앞으로든 정의당을 바라보는 그 모든 우려를 뛰어넘어, 새로운 진보정치를 정의당이 보여주길 기대한다.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이기에 책임도 막중하다. 정의당을 구성하고 있는 정당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각성이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가닿길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의당은 아래로, 노동하는 그곳의 집단을 향한 정치에 능통해야 한다. 그걸 정치 혹은 운동이라 부르기도 하며, 그 과정의 제도적 구현이 정당정치다. 총선을 앞두고 당내 선거가 막바지다. 국회입성 가능성이 있는 비례후보의 순번이 오늘 결정된다. 지금부터 노동자의 희망이 되지 못한다면, 결국 시민의 꿈도 꿀 수 없다.

    필자소개
    정의당 대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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