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자,
그리고 우리 모두의 책임
"우리 모두가 악질 기업에 'No'를 크게 외쳐야"
    2016년 03월 09일 09: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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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에 제게 한 가지 약점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같이 가서 보자 해도, 액션 영화를 도저히 눈 뜨고 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총탄을 맞은 군인이 쓰러지는 장면이나, 누군가가 산악이나 건물 고층으로부터 떨어지는 장면, 주먹다짐해서 한쪽에서 머리통이 깨지고 눈이 빠지는 장면 등등이 철저하게 잘 연출되고, 고도의 전문성을 자랑하는 프로들이 다수의 경우에는 약간도 다치지 않고 그 어떤 전투, 그 어떤 싸움이나 사고 장면을 다 연출해낼 수 있다는 걸 모를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늘 그런 공포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스턴트맨, 스턴트우먼 아저씨, 아줌마 중에서는 누군가가 진짜 이러다가 다치면 어쩌지? 저는 누군가의 부상이나 더욱이 누군가의 죽음을 대가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를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 걱정은 기우도 아니었습니다. 쏘련 국내 영화들이야 전쟁 장면이나 일반적 싸움 장면 등 이상의 그렇게까지의 “고도”의 스턴트를 보통 포함하지 않았지만 “고도의 스턴트 기술”에 크게 의존하는 할리우드의 경우에는 특히 엑스트라나 스턴트맨/스턴트우먼의 부상이나 사망은 그렇게까지 드문 일은 아닙니다.

지금 제 아들이 즐겨 보는 1997년의 <타이타닉>만 해도, 배 침몰 장면이 촬영됐을 때에 수 명의 엑스트라들이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겪었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사람들이 줄줄이 물속으로 빠지는 장면을 긴박감 있게 촬영한다는 건 그 만큼 위험천만한 작업입니다.

타이타닉 침몰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의 침몰 장면

중상 정도뿐만 아니고 최근 몇 년간만 해도 <G.I.Joe>(2013)나 <The Expendables-2>(2012) 같은 할리우드 주요 고예산 영화의 촬영 현장에서는 사망 산재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폭발이나 불의의 낙하 등으로 이름 없는 엑스트라나 스턴트맨/우먼이 죽어도, 대개는 매체들이 침묵하고 영화는 그냥 개봉됩니다. “인명을 대가로 해서 영화를 만들면 안된다”는 따위의 도덕률은, 철저하게 이윤 위주의 영화사업에 전혀 해당되지 않죠.

국내라면? 더할 뿐입니다. <명량> 촬영에 부상 입은 상당수의 엑스트라 이야기를, 과연 그 어떤 신문이라도 소리 높여 했나요? 영화판의 노동자는 그 지배자들에게 말 그대로 “이용품”에 불과하고, 이름 없고 구두 계약으로, 비정규직 신분으로 고용됐다면 제대로 된 보상 받기가 하늘별 따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액션을 찍는 게 위험하다는 것은, 일단 그 업계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그나마 사전에 알기나 했을 것입니다. 물론 각오해서 들어왔다고 해서, 엑스트라들을 악질적으로 착취하고 보상이나 사과를 하지 않는 영화업체들을 용서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적어도 액션 장면 촬영에 임하는 영화 노동자는, 그 위험도 정도를 정확히 알 것입니다.

오늘 (3월6일) 그 9년 기일이 되는 고 황유미 노동자는, 그 “유명한”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했을 때에 과연 그 공장이 바로 노동자들의 사지임을 알 수 있었을까요?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그 화학물질로부터 일선 노동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고 “절약”하는 비용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타 업체들을 상대로 이겨 이윤을 최대화시키려고 하는 걸 알 수 있었을까요?

주주들에게 돌아간 배당금의 작은 일부분이라도 안전기술의 향상에 쓰였다면 150 여명의 백혈병 등 피해자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삼성전자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가져다주는 그 제품을 사줄 생각부터 없어지고 맙니다.

인명을 대가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도 볼 마음이 안 나지만, 노동자의 목숨을 대가로 해서 “경쟁자보다 약간 더 싸게” 만든다는 휴대폰을 과연 일분 동안이라도 마음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안전기술의 부족만 문제가 아닙니다. 한 나라를 쥐락펴락하고, “국가 위에 있는 더 하나의 국가”처럼 군림하는 삼성의 지배자적 태도도 노동자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짓밟으며 그들의 생명들을 위협합니다.

수년간의 피해자 투쟁으로 결국 대화에 나선 삼성은 비록 보상을 해준다고 하지만 보상의 기준을 제대로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 노동자나 유가족, 그리고 그들을 대표하는 시민단체와 “협의”할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그저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내부 기준”으로 돈을 산정하는 등 피해 노동자나 그 유가족을 동등한 파트너가 아닌 “돈 받고 꺼져야” 하는 “밑의 사람”으로 취급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지배자적 태도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요소는 역학조사 등 병인 조사에 있어서 피해자와 그 대리인의 참여권을 침탈하는 등 조사의 공정성을 약화시키고 재발 방지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부분입니다. 조사를 제대로 해야 더 이상의 억울한 희생을 막을 수 있을 터인데, 피해자의 대리인이 배제되고 삼성으로부터 결코 독립적일 수 없는 국가기관과 회사만이 조사한다면 과연 병의 재발이 잘 방지될까요?

산재 사망을 낳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위험한 생산공정만이 아닙니다. 산재 사망을 낳는 것은 결국 그 공정을 오로지 그 잇속 챙기기에 이용하는 자본의 확대재생산 욕망과 자본에 종속돼 있는 허수아비 “국가”의 완전한 부실함, 그리고 국가나 자본의 철저한 비민주성입니다.

삼성에 제대로 된 노조라도 있었다면 과연 노동자들이 이렇게 줄이어 사망하는 참극을 맞게 됐을까요? 기업이 작은 독재국가처럼 운영되면 결국 그 공장은 노동자들의 묘지가 됩니다.

그런데 기업의 민주화,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율권과 나아가서 경영 참여권 보장을, 기업 내 노동자들만이 해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면서 만드는 제품들을 소비해야 하는 우리 모두가 악질 기업에 “No”를 크게 외치지 않고 그 노동자들과 연대하지 않는 이상, 죽음의 행렬이 계속 이어지리라고 봐야 합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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