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메르켈,
약진하는 극우정당의 현실
[독일 지방선거] 난민문제와 '히틀러 키드'의 약진
    2016년 03월 08일 10: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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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크푸르트를 끼고 있는 독일 헤센주 지방선거에서 반(反)난민 극우파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3당으로 약진했다. 기민당(28.2%)과 사민당(28.0%)에 이어 3위(13.2%)를 기록하며 기민당의 주정부 소수파 파트너인 녹색당(11.6%)과 자유민주당(6.3%), 좌파당(3.7%)을 따돌린 것이다. 13일(이하 현지시간)로 예정된 바덴뷔르템베르크, 라인란트팔츠,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를 앞두고 극우정당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상황이다. 유럽의 핵심 정치이슈인 난민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주요 배경이다. 이에 주요 지방선거를 앞둔 독일의 정치상황을 살펴본다. 최백순 정의당 당원의 기고 글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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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권당인 기민련(기민-기사연합)에서 ‘배신의 정치’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율리아 클뢰크너 기민당 부대표와 자매정당인 기사당의 제호퍼 대표다. 물론 타깃은 메르켈 총리다.

클뢰크너는 메르켈의 측근 중에 측근이다. 기민당내에서 이견이 발생하면 언제나 ‘닥치고 메르켈’로 유명할 정도다. 포스트 메르켈의 맨 앞자리도 클뢰크너라는 게 현재로서는 정설이다. 그런 그가 메르켈의 난민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제호퍼 대표 역시 클뢰크너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언론에는 “뒤에서 칼을 꽂는 행위”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차세대 리더 클뢰크너의 위기와 반격

3월 13일(현지시간) 지방선거가 실시될 주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작센안할트, 그리고 라인란트팔츠 3개 지역이다. 클뢰크너는 라인란트팔츠 주 대표를 겸직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주지사 후보에 나선 상태다. 2011년 선거에서(독일 주지사 임기는 5년) 기민당은 사민당과 초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선거를 일주일 남기고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면서 그 후폭풍은 독일까지 강타했다. 한자리수의 지지율이 예상되던 녹색당이 15%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악재가 겹쳤다. 믿었던 연정 파트너인 자민당이 5%조차 얻지 못하고 원외정당으로 몰락한 것이다. 기민당은 적록연정에 라인란트팔츠를 내주고 말았다.

클뢰크너는 5년간 라인란트팔츠를 탈환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이제 막 40대에 들어선 클뢰크너는 주지사 자리에 오르는 것이 포스트 메르켈로 가기 위한 직행 티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전국구답게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이점을 활용하여 라인란트팔츠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마인츠에서 클뢰크너의 얼굴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될 정도였다.

클뢰크너

위 사진 : 율리아 클뢰크너 기민당 부대표. 2002년 비례대표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2005년 선거에는 50여년만에 크로이츠나흐 지역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라인란트팔츠 기민당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하원의원 이전에는 마이닝거출판에서 발행하는 와인잡지(Sommelier-Magazin)의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기민당의 탄탄한 기반과 클뢰크너의 우먼파워에 힘입어 지지율은 조금씩 올라갔다. 한때 와인여왕으로 선발되어 ‘금발의 여왕’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외모도 한몫하고 있지만, 10년 만에 2인자 자리까지 오를 만큼 정치력 또한 뛰어난 인물이었다. 자민당도 과거의 지지율을 회복하면서 기민당과 자민당의 집권은 눈앞까지 다가왔다.

난민사태가 터질 때만 하더라도 기민당은 자신들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르켈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독일이 무제한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기민당 내에서 반발이 거세지자 클뢰크너는 언제나 그랬듯이 메르켈을 옹호했다. 클뢰크너는 공공장소에서 부르카와 히잡의 착용을 금지할 것을 요구할 정도로 보수적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민당의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라인란트팔츠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민당이 지지율이 떨어지고 사민당은 턱밑까지 추격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녹색당도 두 자리 숫자에 가까운 지지율을 회복하면서 라인란트팔츠 선거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적록연정의 악몽이 재현될 판인데도 메르켈은 라인란트팔츠에 나타나 “독일은 더 많이 열려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면서 자신의 난민정책 소신을 재확인했다. 클뢰크너는 메르켈이 자신을 저격하는 심정일 수밖에 없었다. 클뢰크너의 반격은 총리의 꿈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녹색으로 물들고 있는 바덴뷔르템베르크

바덴뷔르템베르크 선거 역시 초미의 관심사다. 이 지역은 후쿠시마 사태에 힘입어 녹색당이 창당 이후 첫 주지사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2011년 선거는 그야말로 내각제가 보여줄 수 있는 절묘함 그 자체였다. 기민당은 60석을 차지했지만 2위에 오른 것은 36석을 차지한 녹색당이었다. 사민당은 한 석이 적은 35석을 차지했고 과반수는 70석이었다. 단 한 석 차이로 적록연정이 아닌 첫 ‘녹적연정’이 탄생한 것이다. 드라마처럼 주지사 자리는 녹색당의 빈프리트 크레취만에게 돌아갔다.

녹색당은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 지지율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다른 주와는 확연히 다른 기반을 가지고 있다. 녹색당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략지역이 되어있었다. 독일의 녹색수도라고 불린 프라이부르크는 최초로 시장을 배출한 도시다. 주도인 슈투트가르트도 사민당을 앞서면서 녹적연정에 성공했다. 크레취만의 집권 이후 하이델베르크와 튀빙겐 등에서도 녹색당은 이전보다 비약적인 성장을 마련했다.

크레취만

위 사진 : 빈프리트 크레취만 녹색당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지사. 68혁명 당시에는 극좌파이기도 했지만 현재는 당내에서 괴링-에카르트 원내대표와 함께 가장 오른쪽 블록을 형성하면서 필요할 땐 자본과의 타협을 주장하고 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만 35년간 녹색정치를 해온 ‘녹색노장’ 크레취만은 여당이라는 프리미엄을 충분히 활용했다. 5년이라는 시간은 짧지 않았다. 주 전체를 녹색으로 물들이는데 전념하면서도 다임러 같은 자동차자본을 지원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녹색당의 지지율이 계속해서 상승하면서 마침내 기민당을 뛰어넘었다.

바덴뷔르템베르크 기민당은 충격에 빠졌다. 과반의석을 잃은 적은 있었지만 지난 60년간 단 한번도 1당의 자리는 내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민당의 주지사 후보인 기도 볼프는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문제였다. 클뢰크너가 반격에 나서자 볼프도 그 대열에 합류하면서 메르켈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메르켈의 난민정책과 극우정당 AfD의 약진

1990년 더블린조약이 탄생할 때만 하더라도 EU 회원국은 12개국에 불과했다. 회원국은 계속해서 늘어나 동유럽의 헝가리, 크로아티아, 그리스까지 확대됐다. IS와 비대칭전쟁으로 대규모의 시리아 난민들이 망명에 오르면서 동유럽 국가들이 더블린조약의 직격탄을 맞았다.

조약은 난민들이 망명을 신청할 경우, “도착하는 첫 번째 회원국”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U국가로 갈 것이 분명한 탓에 불가리아와 세르비아가 가는 길을 열어버리자, 수십만 명이 헝가리와 크로아티아로 쏟아져 들어왔다. 조약에 따라 이들의 망명국가는 헝가리와 크로아티아가 되어야 했다.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상, 첫 번째 국가가 프랑스나 독일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에 헝가리는 난민들을 방관했다. 난민들이 헝가리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예측대로 난민들은 오스트리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독일이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고속도로에서 냉장트럭에 탄 70명의 난민들이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되면서 유럽은 충격에 휩싸였다.

모두 더블린조약이 만든 비극이었다. 메르켈은 “무제한으로 난민을 수용”할 것을 밝히면서 사실상 더블린조약을 무력화시키고 나섰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다. 3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독일에 도착했고 그 숫자는 최대 백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독일은 쾨니히슈타인의 방식(Konigsteiner Schlussel)을 통해 주별로 난민을 분산 수용한다. 경제력에 따라 난민을 차등으로 분산하는 방식이다. 그에 따라 먹고살만한 바이에른 주는 최대 20만 명을 수용해야하는 상황이다. 바이에른의 집권당이자 기민당의 자매정당인 기독사회당이 메르켈에게 반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구동독 지역인 작센안할트주는 기민당에 이어 좌파당이 2당이다. 사민당은 3당이다. 2011년에 사민당은 좌파당과의 연정을 피하기 위해 기민당과 연정을 택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극우정당인 AfD(독일을 위한 대안)이 급부상하면서 기민-사민 연정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AfD가 사민당을 앞서면서 3당 자리까지 오르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당은 기민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고, 녹색당은 5% 봉쇄조항을 넘을지가 불분명하다. 선거결과에 따라 주정부를 구성하지 못하는 독일 최초의 교착상태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AfD의 약진은 작센안할트에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전국 여론조사에서도 AfD는 평균 12%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기민당과 사민당에 이어 3당에 올라있다. 녹색당과 좌파당은 두 자리 턱걸이 수준이다. AfD의 이런 약진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그동안 함부르크를 비롯해 5개 주 의회에 이미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기민당 지지자들 중에 오른쪽표가 AfD으로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페트리

위 사진 : 프라우케 페트리 AfD 당 대표. 당 대표였던 베른트 루케는 AfD의 창당목적은 유로존의 구제금융을 반대하는데 있으며 외국인 혐오증(제노포비아)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입장이었다. 페트리는 반-이민 노선을 전면에 내걸어 루케를 누르고 당 대표로 올랐다. 이후 루케를 당에서 사실상 축출했다.

게다가 전국적인 지역기반도 착실히 강화하고 있다. AfD의 당 대표는 40대 여성인 프라우케 페트리지만 거침없는 언변으로 독일의 오른쪽을 결집시키고 있다. 페트리는 토크쇼에 출연해 “국경을 넘는 난민들에게 발포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해 정치권을 경악시켰지만 오히려 지지율은 오르고 있다. 독일은 지금 난민문제 해결과 의회에 진출하는 ‘히틀러 키드’를 막아야 하는 두 가지 난제를 떠안고 있다.

일각에서는 AfD를 극우정당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띠는 정당일 뿐이며,  유로존 내부의 경제 위기 등으로 타국에 대한 구제금융의 부담을 독일이 지는 것에 반발하는 성향이라는 의견이다. 하지만 민족주의 성향에서 점차 난민 반대와 외국인 혐오와 같은 인종주의적 색깔과 정서가 더욱 짙어지면서 극우정당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필자소개
정의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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