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경의 역사를
    사진 예술의 눈으로 전유하다.
    [다큐멘터리 사진] 이상엽, ‘변경의 역사’전
        2016년 03월 07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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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회 일우사진상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 기념전 이상엽의 ‘변경의 역사’가 서울 서소문로에 위치한 대한항공빌딩 1층 로비 전시장 일우 스페이스에서 2016년 2월 25일부터 3월 30일까지 열린다. 일우사진상은 현재 한국에 몇 남지 않는 권위 있는 사진상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사진가 이상엽은 그 동안 여러 해 동안 우리 사회의 ‘변경’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가까이는 도시 재개발에 대한 것에서부터 멀리는 고구려 역사까지 사회적으로, 지리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중심부에 속하지 못하면서 타자화(他者化) 되는 사람들과 그들의 공간에 대한 기록을 해왔다.

    사진가 이상엽은 그 성격의 지평이 매우 넓어진 다큐멘터리 사진 부문에서 비교적 현장에 충실하고 사진의 기록적 측면에 더 가치를 둔 작업을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자리 매김을 해왔다.

    그러면서 사진과 관련되는 글을 함께 씀으로써 사진이 너무 예술적으로 감상되거나 이해됨으로써 사진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변경의 의미로부터 너무 멀리 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왔다.

    전업 사진가로서는 작품을 팔 수 있는 길을 확보하기 어려워 참으로 지내오기가 어려운 길이다. 그가 그다지 쉽게 팔릴 수 있는 사진을 외면하지 않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동안 지켜온 사진가로서의 소명 의식이랄까, 어떤 자세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가 그 동안 사회에서 소외당한 부문,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불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로부터 그의 가치를 인정해야 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이상엽의 사진이 이번 사진전에서 상당히 바뀌었다. 뭐라고 딱 잘라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불편하지 않고, 마음을 잡아끄는 게 은은하다. 예전의 작품에서 받기 어려운 느낌이 뭉클하다. 사회에서 소외당한 자들에 대한 목소리를 그대로 내되, 예전에는 격문으로 내다가 이제 시로 바꾼 모양새다. 목소리가 거칠지 않고, 낭랑한 게 말을 그리 유창하게 할 필요도 조리 있게 할 필요도 없다. 대포 한 잔 먹고, 마누라 주려고 브라자 하나 리어카에서 사 집으로 터벅터벅 발길을 옮기는 늙은 김 씨의 산동네 풍경 같다.

    며칠 전 사진가 이상엽이 올린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았다. 그것을 보니 자기 자신도 그렇고 남들도 그렇고 모두 사진이 참 좋아졌다고 평가를 하는 모양이다. 사진가는 그가 좋아하는 선배 사진가 이갑철하고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던 모양이다. 이갑철이 그랬다 하는데, “니 사진이 좋아진 건 니가 공부한 양자 물리학 덕분인 것 같다”고. 선배의 평에 그도 수긍하였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사진가 스스로 말하기를, 변경의 역사가 양자 물리학의 파동과 입자의 두 속성을 지닌 빛처럼, 계속 중심과 주변이 뒤바뀌고 얽힘을 봤다고 하였으니. 자신의 사진과 작품성의 관련을 양자 물리학을 통해 자인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지인은 그게 그거하고 무슨 상관이냐, 왠 오버냐고 직언을 던지기도 한다. 난, 이 대목에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사진가 스스로나 이갑철의 생각도 일리가 있고 어떤 지인의 말도 일리가 있는데, 난 그 둘과 비슷하면서 또 달리 본다.

    이상엽의 이번 ‘변경의 역사’는 이상엽이 주류가 말하는 ‘작품’의 세계에 눈을 뜨고 그 안에 적극적으로 들어가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비주류를 소재 삼아서도 얼마든지 주류가 독점해 온 어떤 예술성이 있는 작품을 생산해 낼 수 있음에 눈을 뜬 것이다. 직설적이고, 자극적이고, 웅변적인 기록에서, 은밀하고, 애매하고, 돌려 말하면서 읽는 사람의 감성을 건드린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사실에 대한 기록을 하되 문학적으로 전유함으로써 사진가가 말하고자 하는 변경의 역사에 대해 그 독자가 더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통합의 목적성을 가지고 지나온다고 하지만, 자연과학의 엔트로피는 그렇지 않아 통합에서 분열로 간다. 엔트로피는 정돈된 것이 어질러지는 것이고, 중간 중간 통합될 수도 있지만 결국은 다양성으로 가는 것이다.

    그는 이번 전시의 주제인 역사도 자연과학의 엔트로피처럼 다양성으로 가는 역사에서 찾았다고 한다. 통합된 거대한 집단을 현대 사회에서 목격하지만 실제 그 덩어리는 분열과 다양성으로 가득 차 있음을 믿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이런 생각이 자신의 예술관을 바꾸었을 것으로 유추한다. 말하기의 방식,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방식 이러한 다큐멘터리 사진 작품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이 그 동안 사진가가 전가의 보도처럼 가지고 있던 소리 지르기의 방식에서 감상자에게 말씀 하시라고 자리 내주기의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1

    이 돈대는 연미정이라는 양반집 마당에 세워졌다. 국가가 징발한 것이다. 그 돈대 여장 너머로 근무하는 초병과 조강, 그리고 황해도가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겹의 경계가 존재한다. 월곶돈대 강화도 2015

    이2

    아주 오래전 해병들의 초소였을 곳이 낡아간다. 지평선 먼, 사건의 경계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떤 사건들은 저 경계너머로 사라졌고, 어떤 사건은 튀어나왔을 것이다. 둘은 상쇄되어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충돌하고 있는 것일까? 북일곶돈대 강화도 2015

    그렇다고 그가 이번 작품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가져온 좌파의 시각을 버린 건 아니다. 그는 스스로 돈대에 선 병사의 시각으로 변경을 봤다고 했다. 매우 중요한 고백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에게서 여전히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 깊이 물든 민중사관을 읽는다. 역사학적으로 말하자면, 병사란 종속적 위치에 놓인 사람인데, 그가 ‘변경’이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진가의 시각과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병사가 그러한 시각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가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가 아직도 인민이라는 존재가 자기 스스로의 목소리를 갖고 역사의 주체로 살아온 존재로 봤다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마르크스주의 진보 지식인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시각은, 적어도 사진과 관련하여 그가 말하는 양자 역학의 흔들림의 원리와 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 병사는 중심이든, 변경이든, 국가든, 민중이든 아무 것도 관심을 갖지 않았을 수 있다. 오로지 이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달려가 어머니가 지어준 따뜻한 밥 한 끼만 간절히 바랐을 수 있다. ‘변경’의 큰 역사에 담겨진 ‘밥’을 보는 작은 역사를 보는 사진가의 시각이 어딘가에 담겨져 있기는 할 텐데, 아직 난 그것을 찾지는 못했다. 그와 만나서 대포 한 잔 기울이면서 토론해봐야겠다.

    이상엽의 ‘변경의 역사’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가 가진 역사관이나 사진의 시각에 있을 뿐만이 아니라, 좌파 지식인 사진가가 세상에 대해 말을 하는 방식을 좀 더 정치적으로 자리매김 했다고 하는 데서 찾는다. 우직하게 현장의 목소리를 바로 전하는 과학적 기록의 현장 사진가가 한국 사진계에 여전히 필요한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사회와 역사에 대해 진보적 관점을 여전히 고수하면서 대중들과 불편하지 않고, 좀 더 따뜻하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다. 특히 그가 세상을 바꿔보자는 기치 아래 운동보다는 정치를 하는 정당에 속해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가 예술의 세계에 거침없이 들어가 그들과 예술과 작품으로 소외된 이, 작은 이, 버려진 이들의 세계를 대변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3

    강화도 최남단. 멀리 인천 송도가 보인다. 이 돈대에 서면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한강으로 진입하는 모든 사물들을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에도 지금도 요충지다. 아래서 보면 중세의 요새가 지닌 미학적인 설계마저 읽는다. 분오리돈대 강화도 2015

    이4

    돈대 포구로 본 염하와 김포의 풍경이다. 이곳에서 청나라 군사를 봤고, 프랑스 군함을 봤을 것이다. 그렇게 경계를 서던 초병은 배는 주리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밥이 있어야 생명이 있고,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을 터인데, 당시 변경은 이를 충족치 못했다. 용당돈대 강화도 2015

    난,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 지상주의를 찬하지 않는다. 예술은 그 뿌리를 사람의 삶에 내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역사를 시대의 정신으로 삼아야 그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다. 그런데, 적어도 한국의 사진계에서 그 예술의 판은 대부분, 예술을 위한 예술, 돈을 위한 예술, 학연, 지연, 혈연 등 갖은 연줄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 그 사람들끼리 줄 서고, 그 사람들끼리 나눠 먹고, 그 사람들끼리 서로 호가호위 하는 꼴이 가히 가관이다.

    사진가 이상엽이 이제 주류의 세계에 비주류의 이름으로 들어가, 비주류의 세계에 대한 기록을 주류의 언어와 겨루어 기죽지 말고 실력을 펼치기만을 바란다. 그의 무한한 가능성을 그의 사진집 표지에서 난, 보았다.

    표지는 사진가 이상엽의 사진에 예술가 강홍구의 붓이 만나 협업하여 만든 것이다. 마치 이상엽이 말하는 파동과 입자의 서로 다른 속성이 하나의 빛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협업에서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그가 예술 세계로 당당히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진가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변경에 선 사람도 예술을 할 수 있고, 상도 받을 수 있고, 대중들과 널리 교유할 수 있음을 보여줬으면 한다. 주류 아닌 비주류도 예술계에서 작품으로 가치 있음을 인정받음을 보여줬으면 한다.

    그것이 진보 정당인 사진가 이상엽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해 낼 수 있는 진보 정치 아닐까.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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