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일 할 사람’을
    ‘큰 일 낼 사람’ 만들어
    [학교야 뭐 하니?] 독특한 배려
        2016년 02월 29일 04:07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다소 지난 시기의 내용을 다루는 정현주 선생님의 칼럼이다. 그럼에도 이 글 내용은 과거만이 아니라 지금 오늘도 여전히 유효한 아픈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편집자>
    —————–

    해외에서 삼성 로고를 보고 뿌듯했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누군가는 외국 공항 대형 멀티비전 화면을 가득 메운 삼성전자 광고를 보면서 뭉클했다고 했다. 그런 세계 굴지의 기업, 삼성의 대형 병원이 국내 메르스 확진자 중 절반 가까이를 배출하면서, 무기한 병원 폐쇄에 들어갔었다.

    메르스 사태를 보도하는 언론에서 삼성 병원을 향해 사용했던 공통된 표현이 있다. ‘국내 최고’라는 것. 그렇기에 삼성 병원이 메르스의 진원지가 된 현실에 대한 사회적 당혹감은 컸다. 메르스 초기 정부는 삼성 병원의 이름 공개를 극구 꺼렸고, 병원 폐쇄도 하지 않았다. 이 병원을 통한 감염 확진이 속수무책으로 늘어가기 시작하는 시점에서도 병원 관리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만큼 국내 최고의 병원을 강하게 신뢰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의 이런 태도가 과연 ‘신뢰’ 때문 만이었을까?

    우연히도 메르스 사태의 와중에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사건이 터졌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논란 속에 특히 눈에 띄는 발언이 있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의 말이다.

    “한국문학이 이만한 작가를 만들어 낸 데는 엄청난 공이 들었다. 해외에서 이만큼 알려진 우리나라 작가는 고은 시인 외에 신경숙이 처음이므로 이 귀함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나는 여기서 ‘귀함에 대한 배려’라는 단어의 조합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배려’란 ‘도와주고 보살펴 주려 애쓰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미 ‘귀함’이라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자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도와주고 보살피라’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번역되어 호평을 얻었으며, 최단기간 100만부 판매를 돌파한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 그는 ‘맨 아시아 문학상’ 수상 작가이며, 50만 독자를 가진 ‘국내 최고’의 작가이다. 이것이 출판사의 매출을 보장하는 거대 작가, 신경숙을 가리키는 ‘귀함’이란 단어의 의미이다. 그러니까 그의 귀함을 배려하라는 것은, 평범한 다수가 문단과 출판계의 강자인 신경숙을 배려하라는 얘기인 것이다.

    그리고 메르스 사태의 한복판에 있었던 ‘국내 최고의 병원’ 삼성에 대한 정부 당국의 태도는 ‘국내 최고의 작가’ 신경숙에 대한 문단의 태도와 유사했다.

    정부는 병원 이름을 밝히거나 폐쇄함으로써, 1일 매출액이 30억에 달하는 이 병원에 타격을 가하는 것을 꺼렸다. 단순히 최고의 실력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국내 최고’의 병원을 배려한 것이다.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이들이 규칙을 어기거나 실수를 범했을 때, ‘최고’라는 이유로 그들에 대한 배려가 당당하게 요구된다. 이런 독특한 우리 사회의 풍토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독특한 ‘배려’?

    이 독특한 ‘배려’ 앞에서 내게 떠오르는 익숙한 학교의 풍경이 있다.

    예전에는 예체능 과목 점수가 지금보다 내신에 반영되는 비율이 높았다. 교장 교감이 주최하는 예체능과 회의가 몇 번이고 소집된 적이 있다. 소위 명문대에 갈 학생들의 예체능 실기 점수를 잘 주라는 회의였다. 예체능과 선생님들이 매우 분노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상위권 학생 명단을 미리 배포해 달라”며 자조하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까다로운 복장 규정이나 학생부 처벌 규정도 성적이 좋으면 비껴가는 경우가 있다. 수행 평가를 베끼거나 늦게 제출해도 “서울대 갈 학생”이니 봐줘야 한다고 공공연히 관리자들이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학교 자율학습실을 성적순으로 배정하는 학교는 너무나 많다.

    교육부 역시 승자를 배려하는 교육 행정을 펼친다.

    교육부는 학업 성취도 평가 성적이 좋은 순으로 각 시ㆍ도교육청에 특별교부금을 지원해 왔다. 교육청도 같은 기준으로 학교에 성과급을 차등지급했다. 미국의 국가학력평가(NAEP)는 인종, 민족, 사회경제적 지위, 성별 등에 따른 학력차를 분석하여, 학력이 떨어지는 집단을 지원하는 데 쓰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많은 학교를 더 지원하고, 성적 향상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우리 교육부는 거꾸로 하고 있다. 시도별, 학교별, 개인별 경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교육 또는 교육 행정’의 포기이다. 국가나 교육청, 혹은 학교 당국은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학생 개인, 혹은 교사 개인의 노력에 맡기겠다는 얘기다.

    단순히 승자에게 돈을 포상해서 경쟁시키겠다는 발상의 바탕에는 역시 승자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학교별로 학생들을 남겨서 밤늦게까지 학업성취도 평가 대비 문제풀이 훈련을 시키거나, 교육청 장학사의 묵인 하에 부정행위를 유도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승자가 되기만 하면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고, 실수나 규범을 어긴 행동에 대해서도 배려 받을 수 있기에, 거꾸로 승자가 되기 위해서 부정을 저지르는 일도 자주 생겨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당시 안일하고 무능한 대처를 했던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았다. 세월호 사태가 수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선거를 맞이했다. 이 사태의 책임을 물어 집권 여당이 참패하리라고 예측되었으나,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로 호소했다. 그리고 선거 유세에 나선 여당 의원들이 내세운 말이 ‘도와주십시오.’였다. 강자를 배려해달라는 호소였고, 그 호소는 효력을 발휘해 선거는 여당의 승리로 끝났다.

    많은 생명을 어이없이 수장시킨 세월호 사건을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을 평범한 국민들이 배려한 것이다.

    성적 좋은 학생으로 특혜를 누리고, 규칙을 어기거나 실수를 해도 배려 받으며 자란 한국의 엘리트들은 커서도 비슷한 어른이 된 것 같다. 그렇기에 주요 공직자들이 평균적인 한국인보다 훨씬 더 많은 비리를 저지른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이 특혜 받는 동안, 갖은 차별을 감내해온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137번 메르스 확진자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이송요원이었다. 그는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일주일 남짓 계속 일을 했다. 그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였기 때문에 관리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대전 대청병원 외주 노동자였던 143번 환자도 마찬가지이다. 일찍 증상을 보였지만 관리대상에서 빠졌다. 병원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마스크도 뒤늦게 지급되거나 누락되기도 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평등하다. 내 옆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감염된다면, 특권을 가진 사람들도 계속 안전할 수는 없다. 이웃이 고통 받는 가운데, 몇몇 승자들만 특권과 특혜를 누리는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필자소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23년간 국어교사로 일했다. 현재는 마을과 대안학교에서 청소년들과 책을 통해 만나는 다양한 모임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