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이의 신발을 신고 걷는다는 것
    [서평]『푸른 눈, 갈색 눈』(윌리엄 피더스 저/ 한겨레출판)
        2012년 07월 28일 03: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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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에 앉을 때 그녀는 학생들과 함께 인디언 천막을 세운 뒤 가르치려고 계획했던 아메리카 인디언 수족(Sioux)의 기도문이 앞에 놓여있는 걸 보았다. “오, 위대한 영(靈)이여. 내가 상대방의 모카신(1)을 신고 1마일을 걷기 전에는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 p.14

    인터넷에서 “못생긴 여자들이 성격이 더러운 이유“라 검색하면 정말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의 많은 글들이 검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통적인 내용은 얼추 다음과 같다.

    그 이유를 심리적으로 분석하자면
    일반적으로 못생긴 애들은 어릴적부터 못생겼음
    당연히 귀엽게 생긴 애들보다 이쁨을 덜 받고 관심도 덜 받게되지
    자연스럽게 성격이 이상해짐 (후략)(2)

    물론 이 이야기는 너무나도 쉽게 반증되고, 내부적인 논리도 옳지 않다. 그러나 커뮤니티들에서 이런 발상은 외모 지상주의를 더 굳건히 하는 방식으로 커뮤니티들 상에서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맞지도 않고 옳지도 않은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푸른 눈, 갈색 눈』은 한 초등학교 교사 제인 엘리어트가 60년대에 마틴 루터 킹의 암살 직후에 충격을 받고, 교사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 관련 교육이자 한 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번째 날은 갈색 눈을 가진 사람은 우월한 날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날은 푸른색 눈을 가진 사람이 우월한 날이었다. 제인은 실험 내내 정말 교묘하게 사람들의 인식을 조장하고, 특정 색의 눈을 가진 사람이 우월하다는 “설정”에 피험자 모두를 깊숙이 빠져들게 만든다. 실험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이루어지다가 나중에는 성인에게까지 진행하게 된다.

    이 실험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있다. 당당하던 사람들이 정말 말하는 대로 위축되고 소심해진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친하던 아이들이 혹은 알지도 못하던 성인들이 계급을 이루게 되는 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에 따라 수반되는 폭력들은 구성원들에게 너무 쉽게 용인된다.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푸른 눈” 혹은 “갈색 눈”과 같은 단순한 사실 묘사들이 상대방을 비하하는 단어로 쓰이기 시작한다. 차별적인 시선이 만들어내는 편견이 실제로 “사실”이 되어가는 것이 보인다.

    사실 『푸른 눈, 갈색 눈』은 엄밀한 사회학 혹은 교육학 학술서는 아니다. 어떤 메커니즘으로 차별이 생기고, 어떤 메커니즘으로 편견이 생기고, 어떤 메커니즘으로 폭력을 스스로 정당화 시키는지 책의 주인공 교사도 저자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단지 보여준다. “푸른 눈, 갈색 눈“이란 이름의 실험이 어떤 방식으로 어느 집단에서 어떤 모습으로 진행이 됐는지 보여준다.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이 상황을 인지하고, 어떤 과정으로 변해가고, 어떤 모습으로 폭력을 드러내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읽는 이는 다시 한 번 왜 사람들이 저렇게 행동하게 되었을까 고민하게 만든다.

    사회과학의 이론은 자연과학의 이론과 달리 통계적 접근 말고는 반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론에 맞지 않는 데이터는 “소수의 무시할 수 있는 예외“로 취급당하기 쉽고 심지어 통계를 통해 접근해도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왜곡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이 학술적으로는 얼마나 통하는지는 모르나,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통념과 맞지 않는 경우를 보았을 때 쉽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보인다.

    “물론 못생긴 애들 중 착한 애들이 있지, 하지만 그들은 예외일 뿐이고 일반적으로는 성격이 더럽다”
    “내 주변에 똑똑한 흑인이 있지, 하지만 대부분은 멍청하잖아?“
    “그래 네 주변에 더럽지 않은 게이가 있다 쳐. 하지만 걔가 예외겠지. 그리고 네가 걔가 안 더러운지 어떻게 알아“

    이런 방식의 사고방식으로 편견을 마음속으로도 더욱 굳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본인의 모습에서 어떠한 소수자성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지만 각각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이 왜 타인의 소수자성을 당연히 이상하다고 바라볼까. 어떤 상황을 거치고서야 이런 이야기들에 당당하게 “좆까”라고 얘기할 수 있게 될까.

    누가 이런 폭력적인 구조를 재생산하는 것일까.

    왜 제인이 있던 마을 사람들은 “푸른 눈, 갈색 눈“ 실험이 본인들을 인종차별주의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을까. 이들은 정말 인종차별주의적인 행동을 내재화 시키지 않았을까. “갈색 눈”은 왜 사실 묘사가 아니라 폭력적인 말이었을까.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권력적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는지 확신하는 것은 얼마나 기만적인 것일까.

    이런 의문들 속에서 한걸음 나아가기위해 무엇보다 다른 이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고자 한다. 물론 이렇게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본다고 타인이 될 수는 없다. 단지 비슷한 경험을 할 뿐이다.

    이런 한계를 “푸른 눈, 갈색 눈” 실험이 그 자체만으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책 내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한 백인 여성이 실험 속에서 체험을 해 보았으나, 그 뒤 뒤따라오는 한 흑인 여성 자신이 평소 인종차별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느끼는지 얘기하기 전에는 명확히 이해했다고 보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허나, 좀 더 마음을 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 백인 여성이 실험을 거친 후에 흑인 여성의 일상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흑인 여성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처럼.

    slut walk korea의 페이스북 담벼락

    공교롭게도 오늘(28일 토요일) 오후 네 시에 탑골공원에서 잡년행진이 있다. 잡년행진은 어찌 보면 “여성들이 성폭력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창녀(slut)처럼 옷을 헤프게 입지 말아야 한다.”라는 누군가에게는 마땅한 이야기라고 생각된 이야기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겐 너무나 폭력적인 이야기였고, 그 경찰관은 왜 이것을 폭력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다른 이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지 않은 채로 이야기하지 않아서 아닐까. 오늘 한번 같이 걸어보며 고민해봐야겠다.

    1.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사슴가죽으로 만든 신발)
    2.  http://gall.dcinside.com/list.php?id=news&no=3675256, 실제로 검색해보면 한두 개 나오는 게 아니다
    3. 윌리엄 피덕스『푸른 눈, 갈색 눈』 한겨레출판, 204쪽)

    필자소개
    학생. 연세대 노수석 생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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