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도, 삶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그림책이야기]『알』(이기훈/비룡소)
        2016년 02월 26일 01: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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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계란 이야기?

    표지부터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계란판 위에 단 하나 남겨진 계란이라니! 게다가 누런 계란 위에는 『알』이라는 제목 글자가 다시 동그라미 속에 쓰여 있습니다. 정말 알쏭달쏭한 제목입니다.

    책장을 넘기면 새카만 면지 속에 수십 쌍의 눈들이 보입니다.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도 눈빛만은 가둘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눈빛이 햇빛보다 강한 모양입니다. 햇빛은 가려도 눈빛은 가릴 수 없으니 말입니다.

    면지를 넘기면 병아리 장수가 좌판을 펼치고 앉아 있습니다. 그 앞에는 병아리를 사달라고 조르는 여자 아이와 손을 놓아주지 않는 엄마가 서 있습니다. 그림책 『알』은 정말 계란 이야기일까요?

    알

    냉장고에 있는 계란을 품으면?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엄마 몰래 냉장고에 있는 계란을 자기 치마폭에 쓸어 담습니다. 그리곤 자기 방으로 돌아가 이불 속에 계란을 넣고 품기 시작합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른인 저는 이 장면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합니다. ‘유정란이어야 할 텐데.’

    혹시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어릴 때 계란을 품어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계란을 품어본 경험이 없다면 이번 기회에 한번 품어보면 어떨까요? 계란에서 무엇이 나올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설마 정말 병아리가 나올까요? 여러분이 품으려는 알이 정말 계란일까요?

    알을 품어본 사람이든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든, 그림책 『알』에서 벌어진 일을 보게 되면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할 것입니다! 저도 입을 쩍 벌리고 다물지 못할 만큼 깜짝 놀랐습니다. 심지어 주인공 소녀는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맙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장면에서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질 수 있습니다.

    알다가도 모를 알

    알은 신비롭습니다. 계란에서 병아리가 태어나는 것도 신기하고 오리 알에서 오리가 태어나는 것도 신기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신기합니다. 알 속의 흰자와 노른자가 새로운 생명체가 된다는 사실은 아무리 과학적인 설명을 덧붙이더라도 놀라운 일입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알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공적으로 알을 만들거나 어떤 생명체가 태어나게 만드는 일을 인간은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생명의 탄생은 여전히 인간에게 신비의 영역입니다. 인간 역시 자연이 만든 피조물일 뿐이니까요. 인간의 능력은 자연의 섭리를 헤아리기조차 어렵습니다. 따라서 자연 현상은 언제나 경이롭습니다.

    알 수 없는 매력

    주인공 소녀가 알에서 느낀 매력은 바로 알에서 생명체가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생긴 알에서 예쁜 생명체가 나오다니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더불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를 알 수 없기에 더욱 매력적입니다. 계란에서 병아리가 태어나는 일은 어린이에게는 분명 마술입니다.

    그래서 소녀는 냉장고에서 계란을 가져다가 스스로 품습니다. 계란이 병아리로 변하는 마술을 체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계란에서 전혀 다른 생명체들이 나옵니다. 계란이라고 생각했던 알이 계란이 아니었던 겁니다!

    이 뜻밖의 장면에서 제 머리털은 모두 곤두섰습니다. 알에서 나온 것들을 보고 너무 놀라서가 아니라,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알에서 삶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호기심과 상상력

    물론 알에서 삶이 보이는 것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알은 살아있으니까요! 그런데 알이 더 신기한 까닭은 알이 보통 생명체와는 전혀 다르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떤 알은 자갈 사이에 놓아두면 잘 구별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알은 생명체라고 하기엔 너무나 단순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단순한 외모가 강렬한 호기심과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호기심에 불타는 사람은 소녀뿐만이 아닙니다. 소녀가 알을 품듯이 과학자들은 우주선을 쏘아 올립니다. 소녀가 알을 품듯이 누군가는 라디오를 분해할 것입니다. 어떤 요리사는 갈비탕에 카레를 넣어볼 것입니다. 언제나 호기심은 상상력을 부르고 상상력은 행동을 유발합니다. 소녀가 알을 품듯이 우리는 꿈을 품습니다.

    알도 삶도 미지의 세계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알에서 어떤 동물이 나올지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걱정거리를 대비하느라 오늘을 하루를 다 보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내일은 어떤 재미있는 일을 할까?’하고 행복한 고민에 빠질 수 있습니다.

    알도 삶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이 부화하기를 기다리고, 내일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저에게 삶의 매력을 알의 매력으로 일깨워준 그림책, 바로 『알』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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