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옳음을 추구한다면 플라톤을 읽어라.
    [서평] 『플라톤 정치철학의 해체』(박동천 저/ 모티브북)
        2012년 07월 28일 03: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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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살의 대학생에게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사유하는 학문이다. 사유라는 행위가 어렵게 들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사유의 과정을 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낫을 놓고 낫이라고 말하는 단순한 인식과 판단의 과정도 사유라고 볼 수 있다. 혹은 추리 소설처럼 현실을 통해 새로운 결론을 찾아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유이다.

    사유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인과에 대한 고민을 통해 현실을 그 자체로 판단하는 과정을 뜻한다.

    우리는 현실을 지각하여 지식을 습득하고, 그러한 지식들이 쌓여 자아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 자아를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나간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가장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이러한 지식에는 너무 다양한 층위가 있어서 이루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본인이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나라는 인간이 어떻게 와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돈이란 무엇인지, 친구란 어떻게 사귀는지,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무슨 원인인지 등등. 이러한 모든 것들이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에 대하여 현실과 다른 지식을 습득하게 될 경우 판단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할 경우 그 결론이 논리적으로 옳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잘못된 지식을 습득하는 경우, 이는 단순히 ‘논리적으로 오류였군 어이쿠!’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의 행동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게 하고, 결국 스스로의 자아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길을 가게 한다.

    인간은 수학의 공리와도 같이 자신을 행동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삶의 의지 위에 올바른 지식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성취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그 위에 쌓여나가는 전제와 논리들이 올바르게 정립될 때 스스로 존재하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그러므로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 개인이 스스로의 지향점을 위하여 모든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왜 플라톤인가?

    이러한 생각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바는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모두 알고 있듯이 아리스토텔레스와 더불어 서양 철학의 가장 큰 두 거장이다.

     

     

    고대 그리스의 인문철학을 대표하는 두 인물은 매우 다른 성향을 지닌다. 혹자는 플라톤을 이상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자라고 말하는데, 어느 정도 적확한 설명이라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은 이상주의자가 확실하다. 그는 마치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지 않으며 오직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의 본질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인 것 같다. 마치 관찰자와 같은 사람이다.

    플라톤을 우리 시대의 사람으로 재구성해본다면, 초야에 묻혀 지내는 선인과 같은 느낌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들로부터의 시선을 무시하지 못한다. 또한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유혹과 돈을 통해서 해결되는 현실의 성취를 인생의 중심에 두는 사람들이 많다.

    인생 살기도 힘든데, 최대한 오랫동안 많이 즐기면서 살기 위해 노력한다. 육체를 통해 느껴지는 혹은 사람들에게서 오는 명예나 애정을 통해서 오는 만족감을 가장 중시한다. 반면 육체의 고통이나 사람들로부터의 멸시, 혼자 있는 외로움 등을 견디지 못한다.

    플라톤은 삶의 스타일 자체가 다르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의 성취와 물질적인 쾌락을 중심에 둔다면, 플라톤은 그의 삶에서 신과 영혼이 중심에 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이를 아테네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며 옳음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로부터 오는 멸시나 물질적인 빈곤은 그에게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어차피 그에게 육체라는 감옥은 중요하지 않으며, 그 안에 있다고 생각되는 영혼을 살리는 것이 그에게 중요하다. 끊임없이 죽음을 연습하며 영에 가까워지기를 노력하는 그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리고 삶의 끝에 죽음이 이르렀을 때 신께서 올바르게 자신과 다른 이들을 심판해주시리라고 믿는다. 그에게서 예수 혹은 기독교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마 이러한 신과 영혼에 대한 의지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이데아

    이런 연유를 가진 플라톤이다 보니 그는 현실 자체의 변화를 위한 이론을 정립하기보단 본질 그 자체, 즉 이데아를 탐구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인간이 왜 올바름을 탐구해야 하는지를 논한 저서인 국가 혹은 정체를 보면 이것이 잘 드러난다.

    ‘국가‘에서는 사람들이 올바름을 추구해봤자 아무에게도 좋은 바가 없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올바름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들이 우리 시대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현실에서 느끼는 물질적인 풍요와 이로부터 얻은 정신적인 만족을 가장 큰 가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올바름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삶을 즐길 때에, 홀로 올바름을 추구하며 거지같이 살고 매일 굶주린다면 그들에게 더 이상 올바름을 추구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올바름과 반대되며 행동하는 게 그들의 공리에는 더 맞는 논리일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플라톤은 가상의 국가를 재조직해보며,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탐구하고 올바름을 왜 추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국가가 머리와 가슴, 배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기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완전한 국가라고 주장하며, 인간도 가슴이나 배가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통치하며 살아갈 때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이 분석한 틀에 따르면, 플라톤에 반대하여 올바름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하는 사람들은 배가 통치하여 현실의 욕망에만 주안점을 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플라톤에 대한 오해

    플라톤의 철학은 이러한 공상적인 전제가 많이 깔려있다. 현실에 존재할 수도 없는 국가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이 올바름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을 보면, 플라톤은 현실의 제약과 상관없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먼 이상인 이데아를 알고 싶었던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기존의 정치철학자들은 이러한 플라톤의 이론에 대하여 머리와 꼬리는 모두 잘라 플라톤이 의도한 내용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도대로 곡해하여 비판하였다.

    예를 들면 인간의 올바름과 상관없이, 플라톤이 생각한 국가 자체만을 떼어 비판하거나, 철인정치론의 비민주성에 대하여 문제를 지적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제는 죽어서 말도 할 수 없는 플라톤의 글에서 일부만 떼어다가 비판을 하니 어떤 비판이 안 먹히겠는가?

    모두 플라톤의 철학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가 철학을 하는 목적과 그의 생각의 경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 오류를 범했다.

    모든 생각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공리부터 시작하여 논리를 차츰 따라가며 그의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를 찾아가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보이고 들리는 말만 가지고 그를 비판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며 이는 플라톤이 말하는 올바름을 훼손하는 일일 것이다.

    플라톤 정치철학의 해체

    플라톤의 철학이 실천적이되 중구난방에 빠지지 않고, 이론적이면서도 동어반복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은 플라톤의 인생과 그의 철학을 명확하게 이해한 문구라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의 철학은 매우 이론적이다.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신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처럼 현실과는 멀어 보이는 본질을 추구한다. 올바름과 좋음,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무엇인지 인간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플라톤은 이것을 알고 싶어 했다. 그 본질을 알아야 우리의 삶에서 이것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플라톤은 현실적이다. 착한 일을 행하자. 라는 문구에서 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니라‘와 같은 동어반복에 빠지지 않는다.

    또한 이럴 때 착한 것은 이거고 저럴 때 착한 것은 저거다라는 것처럼 수많은 사례를 통해 수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사용하며 착함 그 자체의 구조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를 통하여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탐구를 플라톤은 스스로 실천했다.

    플라톤의 철학은 이분법적이다. 본질이 있고 그것에 도달하는 것이 선한 것이며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악이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생각을 지지하는 자에게 있어서 플라톤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가의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러한 플라톤의 본질을 일말의 오해 없이 제대로 보여주었던 책이다.

    필자소개
    학생. 연세대 노수석 생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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