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러방지법 반대"
    47년만에 필리버스터
    은수미, 한국 최장 '10시간 18분'
        2016년 02월 24일 12: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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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버스터의 역사, 과거와 현재 링크

    야당의원들이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해 23일부터 현재까지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법안의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데에 새누리당이 합의하지 않을 경우 회기가 끝나는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갈 계획이다.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오전 2시 30분에 시작해서 오후 12시 48분 경에 끝나서 10시간 18분 가까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첫 주자로 나선 김광진 의원이 5시간 35분 동안 발언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록을 깨고, 은 의원이 한국 최장 필리버스터였던 10시간 15분 기록을 경신했다.

    김 의원은 우선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결정한 것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이 급기야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에게 까지 전달된 것 같다”며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위해 국가비상사태로 간주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가 철저히 유린당했던 역사의 시계추가 36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국회의장 논리대로라면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전후 그리고 국정원 테러 정황이나 첩보가 있으면 바로 국가비상사태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국정원이 언제라도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극악한 선례 남길 것이다. 이를 근거로 언제나 법안을 날치기를 할 수 있는 최악의 민주주의 유린 사태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은 의원은 “1973년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필리버스터가 폐지됐는데 공교롭게 2016년 박근혜 대통령 치하에서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믿지만 테러방지법이 ‘전국민 감시법’, ‘국정원 강화법’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역사가 ‘막걸리 보안법’의 암흑시대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의원에 다음 주자로 문병호 국민의당 의원은 24일 오전 12시 35분경부터 2시 30분까지 2시간 가량 연설했다. 은 의원의 토론이 끝나면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연설을 시작한다. 더민주 유승희, 최민희, 강기정, 김경협 의원 등도 발언 순서를 기다리고 있고 더민주 108인 의원 전원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정의당도 박원석 의원에 이어 김제남, 서기호 의원이 발언을 할 예정이다.

    필리버스터란 주로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거나 기타 필요에 따라 의사진행을 저지하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의사진행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장시간 연설, 규칙발언 연발, 의사진행 또는 신상발언 남발, 요식 및 형식적 절차의 철저한 이행, 각종 동의안과 수정안의 연속적인 제의, 출석 거부, 총퇴장 등의 방법이 이에 해당된다.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김-은

    왼쪽이 김광진 오른쪽이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국의 최초·최장 필리버스터

    우리나라에서 필리버스터는 47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 최초의 필리버스터는 지난 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여당이던 민주공화당이 김준연 자유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 동의안을 상정하자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 본회의장에서 5시간 19분에 걸친 연설을 한 바 있다.

    최장기록은 1969년 8월29일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3선 개헌을 막으려 10시간 15분 동안 발언한 적이 있다.

    김대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필리버스터(김대중평화센터 제공)

    필리버스터의 취지에는 어긋나지만 옛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사례도 있다.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당시 이정희 대표는 필리버스터를 통해 이틀 동안 전국위원회를 진행시켰다. 다만 필리버스터가 다수파의 횡포를 막기 위한 소수파의 합법적 수단이라는 점에서 이정희 대표의 사례는 조금 다르다. 당시 이 대표 쪽은 통합진보당 내 당권파, 즉 다수파에 속한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필리버스터는 1973년 국회법을 개정하면서 폐지됐다가 2012년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하면서 재적의원 3분의 1이상이 요구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면 의장은 해당 안건에 대해 무제한 토론을 실시한다는 조항을 신설해 필리버스터를 허용하도록 했다.

    외국의 필리버스터 사례들,
    샌더스 9시간 가까이 ‘부자감세 반대’ 연설

    최초의 필리버스터는 로마 시대 소(小)카토(BC 95~46)라는 한 변호사가 해가 질 때까지 법안 통과에 반대 연설을 해서 투표를 진행할 수 없었던 사례다. 영국에서 가장 길었던 연설은 1828년 헨리 의원의 법률 개혁에 대한 것이었으나, 필리버스터는 아니었다. 그러다 1880년대부터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인 찰스 스튜어트 파넬 의원이 주도해 의회 내에 필리버스터 규칙을 관습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57년 미 의회에 상정된 민권법안을 반대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스트롬 서먼드 상원의원이 무려 24시간 8분 동안 연설한 사례는 최장시간 필리버스터를 이어간 기록으로 남아있다.

    2013년 미국 텍사스주의 민주당 웬디 데이비스 텍사스주 상원의원은 무려 11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통해 낙태 관련 법안을 저지해낸 것도 유명한 일화다. 의회 특별회기 마지막 날 공화당은 임신 20주 이후 낙태 금지, 낙태 유도제 제한, 외과 병원에서만 낙태수술, 병원시설 개선 의무화 등의 법안을 처리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기 위해 11시간 동안 연설을 진행한 것이다.

    미국 민주당 예비 대선후보 주자인 버니 샌더스도 지난 2012년 부자 감세에 반대하기 위해 8시간 37분간 필리버스터를 이어간 적이 있다. 당시 샌더스의 나이는 69세였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와 공화당이 합의한 ‘부시의 부자감세 연장법’을 반대한다고 밝힌 후 “모두가 알다시피 미국은 중산층이 붕괴하고 빈곤층이 증가하고 있으며 동시에 13조 8000억 달러에 달하는 기록적인 국가부채를 떠안고 있다”며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들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세금 혜택을 주어 이미 심각한 지경인 국가부채를 더욱 악화시키는 일이 제게는 너무도 비양심적인 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샌더스

    버니 샌더스 미국 민주당 대선 예비 후보

    부자감세에 대한 반대의견을 9시간 가까이 연설한 샌더스는 연단에서 내려와 주저앉았다고 한다. 당시 회의장엔 보좌관, 속기사, 방청객 몇 명 등이 전부였으나, 샌더스의 필리버스터는 그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트위터링된 사건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의 필리버스터는 부자감세법을 폐지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된다.

    더민주에서 필리버스터를 요구하면서 SNS 상에는 “내 눈으로 필리버스터를 보다니“ 등 신기하다는 반응이 많다.

    이처럼 필리버스터는 유럽이나 미국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필리핀 세나토 상원의원은 1963년 마르코스 상원 의장 선거를 저지하기 위해 18시간 동안 연설을 하다가 결국 들 것에 실려나간 사례도 있다.

    분열된 야당, 합심해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이유

    더민주는 새누리당과의 대화 창구는 열어두되 국정원의 권력 남용이 우려되는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데에 새누리당이 합의하지 않을 경우 2월 국회 회기 마지막 날인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갈 계획이다. 그간 쟁점법안 협상에 있어 속절없이 ‘내주기 협상’만 해왔던 더민주가 47년 만에 처음으로 필리버스터까지 감행했다는 것은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이후 부작용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테러방지법이 국정원에 무소불위 권력을 쥐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테러위험 인물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고 정보수집의 권한은 지나치게 넓다는 데에 있다. 즉 국정원은 법 규정이 아닌 자의적으로 테러위험인물을 판단할 수 있고 어떤 기관의 통제도 없이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수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집회에서 경찰과의 약간의 충돌만이 있었다할지라도 국정원은 얼마든지 집회 참가자들을 ‘예비, 음모, 선전, 선동’을 활동을 하는 테러단체로 지목할 수 있다.

    참여연대는 “‘기타 공공위해 예비, 음모, 선전, 선동’이 포괄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기타 공공위해’가 앞에서 말한 위해단체 조직원이나 위해단체의 ‘예비, 음모, 선전, 선동’ 활동을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외의 공공위해 행위들에 해당하는 것인지에 대해 해석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테러위험 인물을 지정하고 해제하는 절차와 주체도 없어서 결국 국정원의 판단만으로 테러위험 인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테러위험 인물에 대한 정보수집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수집,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지 모호해 국정원은 얼마든지 포괄적 해석이 가능하다.

    참여연대는 “정보 수집, 제재, 프라이버시 침해, 기타 추적 등에 대한 국정원의 권한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영장주의의 예외인 독소조항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며 개인정보와 위치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해서는 “어떠한 절차적 통제를 가하고 있지 않다. 단순히 ‘요구할 수 있다’고만 규정함으로써 영장주의 혹은 그에 준하는 절차통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방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민주는 테러방지법에서 국정원에 정보수집을 근거로 정보수집권 외에 추적권과 조사권까지 행사할 수 있도록 한 테러방지법 9조 4항을 문제로 삼고 있다. 이 조항으로 국정원의 권한이 너무 넓어지고 그로 인해 인권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 등이 더민주가 말하는 국정원의 권력남용으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다.

    이춘석 더민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새누리당이 제출한 원래 법안에도 국정원에 이러한 권한(추적권, 조사권)을 주지 않았다”며 “그런데 이번에 제출된 법안에는 국정원에 지금 새누리당이 주장하고 있는 정보수집권 이외에도 추적권과 조사권까지를 주어서 지금 남용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내수석은 “예를 들자면 지금 간첩사건 같은 경우는 국정원에 수사권을 주지 않았나”라며 “그걸 남용해서 간첩조작사건 등이 행해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 저희가 국정원에 이 정보에 대한 수집권을 주는 것 자체도 저희는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정보의 수집권을 넘어서 추적권과 조사권까지 주는 것은 원래 취지에서 완전히 권한 밖의 권한을 주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국가테러대책위 소속 대테러 인권보호관을 두겠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인권보호관 한 명을 두도록 하고 있는 규정은 맞다. 그런데 이 인권보호관은 대책위 소속의 보호관이다. 대책위 소속의 인권보호관 한 명이 이러한 인권침해를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며 “우리 당에서는 국회가 선출해서 신분이 보장되는 복수의 상설감독관을 신설하자는 주장을 했으나 여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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