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네디가 총 맞은 곳
    [텍사스일기] 1917년생 두 남자
        2016년 02월 23일 09: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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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암트랙 역 앞에서 다시 차를 내린 다음부터 시작되었다. 매표구로 가서 차표 확인을 하고 깜짝 놀랐다. 오스틴 떠나기 전에 저녁 6시 돌아가는 기차를 확인했… 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스틴 도착하는 시간을 댈러스 출발시간으로 착각했던 게다.

    오스틴행 기차는 하루에 달랑 한편, 매일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것 밖에 없다는 (안타까워하는 표정의) 역무원 설명이다. 구입한 차 몰고 돌아올 계획이었으니 귀환 열차표는 제대로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이게 세계 제일의 교통 선진국이라는 미국 맞아? 대도시 간 기차 편이 하루에 달랑 하나뿐이라니…. 시간 꼼꼼히 확인 못한 내 잘못을 애꿎은 미국 교통부 장관에게 돌리려 애를 써본다. 그런 노력을 비웃듯, 쌩하니 겨울바람만이 거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망연자실한 채 털썩, 역사 앞 벤치에 주저앉는다.

    일요일 오후다. 사무실이 밀집된 댈러스 다운타운은 개미새끼 한 마리 찾아볼 수 없… 지는 않고 관광객 풍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열 분 남짓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신다. 사이사이 푸르륵 푸륵 콧김 내뿜으며 관람 마차가 지나간다

    사

    해는 기울어지지요, 먼지 가득한 바람은 휭휭 불어대지요. 천지간에 길 잃은 나그네 심정이 이런 것이리라. 으슬으슬 뼈를 스미는 추위에 이제 이빨까지 딱딱 부딪힐 지경이다. 체온을 올리는 데는 걷는 것 이상 없다. 터덜터덜 길을 나선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드니 도로 건너편에 건물 하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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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꾼 딜러가 차 몰고 역을 빠져나가며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저 곳이 바로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J. F. Kennedy) 암살 현장이라고.

    1963년 11월 22일, 중부 표준시각으로 오후 12시 30분. 영부인 재키와 함께 무개차 타고 퍼레이드를 벌이던 케네디 대통령이 저격을 당해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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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 지금 보시는 건물 6층에서 총탄이 발사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텍사스 교과서 보관창고(Texas School Book Depository)로 쓰이던 건물은 지금 댈러스 카운티 청사가 되었다. 이곳에 암살사건을 소재로 한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그 이름도 간명한 6층 박물관(Sixth Floor Museum)이다. 사건의 전후 맥락을 40가지 장면으로 영상화시켜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건물 앞 도로에는 케네디가 총 맞은 지점을 지금까지도 X자로 선명히 표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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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까지도 진범 여부를 의심받고 있는 리 오스왈드(Lee Harvey Oswald)가 소총 방아쇠를 당긴 역사적 현장이다. 오스왈드는 체포 이틀 만에 텍사스 경찰서 지하통로에서 마피아 연루 혐의가 있는 나이트클럽 경영자 잭 루비에게 총을 맞아 죽는다(아래 두번째 사진). 이를 통해 암살 사건의 전모가 완전히 미궁 속으로 빠져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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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 오스왈드는 우편 주문한 이탈리아제 제식소총 카르카노(carcano) M1938에 일본제 조준경을 부착하여 케네디를 쐈다고 전해진다(아래 사진. 사건 직후 텍사스 경찰이 소총을 공개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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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서 보듯 노리쇠를 손으로 잡아당겨 격발하는 볼트액션식 소총이다. 이 녀석을 조준경 사용해서 2초 만에 3발 연속 발사했다는 것이다. 가히 프로페셔널 킬러의 솜씨다. 그 냉철한 프로페서녈이 도주행각은 어찌 그리 엉성했던가.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길은 어떻게 그리도 미스테리했던가. 나는 어딘지 불쌍하게 생긴 이 남자가 당대 미국의 거대 기득권조직들이 꾸민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건물 옆으로 박물관 출입구가 보인다. 일요일은 오후 5시 15분이 마지막 티켓 판매시간이다. 우선 뜨거운 커피와 요기거리로 추위를 녹이는 게 급선무다. 입장을 포기하고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찾아 나섰다. 근데 열 곳 넘게 잠긴 문을 두들겼지만 한군데도 답이 없다. 심지어 간이 편의점까지 꽁꽁 열쇠로 채워놓았다. 이런 젠장!

    할 수 없다. 정처 없이 또 걷는다. 그렇게 한 블록을 지나니 붉은 색의 멋진 건물이 보인다. 텍사스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는 올드레드 뮤지엄(Old red museum). 모퉁이를 돌아가니 나무 사이로 한 눈에 주목을 끄는 대담한 디자인의 조형물이 서있다. 존 에프 케네디 메모리얼 플라자(J. F. Kennedy memorial Plaz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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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아홉 번째로 큰 대도시인데, 이건 뭐 볼거리라곤 케네디 유적지뿐인 것 같다. 어쨌든 나타났으니 봐줄 수밖에. 조형물의 구성이 심플하다. 언뜻 보면 시멘트로 세운 회색 방벽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힌 건물이 아니고 사이사이 출입구가 나 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커다란 검은색 흑요석으로 만든 기념석물이 놓여있다. 그 옆면에 케네디의 이름이 새겨져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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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이 디자인한 이 추모 기념비(cenotaph)는 케네디 정신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저 썰렁할 뿐. 동양에서 온 이방인은 케네디 정신이 뭔지를 모른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얼 해줄 건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라”는 연설(스피치라이터였던 테드 소렌센(Ted Sorensen)이 써줌)은 떠오른다. 하지만 더 이상 깊은 정치철학은 알 수 없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내 관점에서 존 에프 케네디는 그저 전형적인 아메리카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에 있어서는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개혁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내막을 열고 보면 완전히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월남전 확전을 주도했다. 쿠바사태를 통해 소련과의 전쟁을 불사하며 냉전의 최선봉에 섰다. 결혼 내내 재키 케네디의 속을 썩인 난봉꾼이었다. 심지어 동생 로버트 케네디와 함께 섹시 스타 마릴린 몬로의 공동애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케네디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내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 한국 대통령의 아버지와 관련된 사진이다. 1961년 11월, 5.16을 성공시킨 박정희 소장이 거사 반 년 만에 미국을 찾았다. 상전 국가에 스스로 일으킨 쿠데타 행위의 재가를 얻으러 온 것이다. 케네디를 만난 박정희의 표정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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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게 깍은 상고머리에 어색한 미소. 대체 건물 안에서 썬그라스는 왜 썼을꼬, 차마 비굴한 눈빛을 보여주기 싫어서였겠지. 악수를 하며 쿠데타 주모자를 내려다보는 케네디의 표정은 또 어떤가. 마치 소작 마름을 대하듯 오만하게 보이는 건 그저 내 기분 탓인가.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1917년생 동갑이다. 사진이 찍힌 시점 기준으로 마흔 네 살의 연부역강한 나이. 한 사람은 세계 최강국의 선출직 대통령으로, 한 사람은 만주군과 일본군을 거쳐 쿠데타를 일으킨 정치군인으로 만났다. 그리고 한 사람은 2년 후에, 다른 한 사람은 18년 후에 똑같이 총을 맞아 죽는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면서도 남는 건 사진 뿐, 이라 되뇌이며 계속 셔터를 눌러댄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석유재벌들이 벌이는 초호화 드라마 배경이 되었던 상업도시 댈러스. 그 거대한 비즈니스 빌딩들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휙휙 뛰어다니는 것이 보인 것이다. 지금 처지가 불현 듯 실감된 것이다. 미국 도착 고작 일주일, 집도 절도 차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이제 어쩌나. 절래절래 고개 흔들며 고픈 배 움켜쥔 채 애써 허리를 세워본다. (계속)

    추신 : 사기꾼 딜러 후일담이 궁금하시다고? 그 친구와 관련된 더 이상 깊은 스토리는 없다. 다만 헤어진 며칠 후 뜬금없는 전화가 왔을 뿐이다. 들뜬 목소리로 하는 말이 “핸들이 떨리는 이유를 찾았어요!“ 조금 모자라는 자인가, 아니면 정말 엄청난 사기꾼인가? 문제 있는 차 팔려 했던 사람이 뒤늦게 자기 차 문제점을 알게 된 것이 그리도 기쁜 일인가. 이제 와서 어쩌라는 거니? 황당해서 ”예 알겠습니다“ 한 마디만 하고 후다닥 끊어버렸다.^^

    필자소개
    김동규
    동명대 교수. 언론광고학. 저서로 ‘카피라이팅론’, ‘10명의 천재 카피라이터’, ‘미디어 사회(공저)’, ‘ 계획행동이론, 미디어와 수용자의 이해(공저)’, ‘여성 이야기주머니(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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