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어린 현실을 시로 받아 적다
    [책소개]『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송경동/ 창비)
        2016년 02월 20일 01: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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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픔이며 고통이며 투쟁이며 연대다

    자본과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맨몸으로 저항하는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뜨거운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해온 송경동 시인의 신작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가 출간되었다. 2016년 ‘창비시선’의 문을 여는 첫번째 시집이자 시인의 세번째 시집이다.

    지난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 2009)에서 노동하는 삶의 핵심을 꿰찌르는 “사유의 깊이와 깨달음”으로 “한국 노동시의 새로운 지평을 예시하며”(염무웅) “빛나는 시의 한 정점을 보여주었”(정희성, 추천사)던 시인은 7년이라는 오랜 시간 뒤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어떤 빼어난 은유와 상징’ 혹은 ‘어떤 아름다운 수사’로도 형상화할 수 없는 삶의 밑바닥에서 길어올린 ‘피어린 시’들을 선보인다.

    “역사의 어둠에 빠져들지 않으려는 한 정직한 인간의 몸부림”이면서 “한 노동자 시인이 한국의 1990년대와 2000년대를 통과하며 제 몸속에 아로새긴 고통스러운 기억”(송종원, 해설)들이 선득한 공감 속에서 가슴을 울린다.

    내가 죽어서라도 세상이 바뀌면 좋겠다며/내어줄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노동자들이 목숨을 놓을 때마다//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보수언론들이 이야기한다//(…)//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사회가 우리의 삶을 이용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면/누군가의 죽음을 특별히 애도할 일도 없을 것이다//우리가 스스로 선택해 내릴 수 있는/생의 정거장은 의외로 많지 않다(「고귀한 유산」 부분)

    송경동의 시는 “피눈물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시절들”과 삶의 근거지를 빼앗기고 세상의 그늘진 곳으로 내몰린 채 “지상에선 존재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사람들”(「허공클럽」)의 처절한 삶의 기록이다.

    그의 시는 평화로운 서정의 세계가 아니라 “희망이 사라진 고립된 장소”(송종원, 해설), “내어줄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노동자들이 목숨을 내놓”(「고귀한 유산」)는 처참한 삶의 투쟁 현장으로 우리를 이끈다.

    화려한 건축물을 지나치는 순간에도 시인은 “오늘도 끊임없이 무한증식해가는/이윤이라는 자본이라는 권력이라는/저 거대한 욕망의 덩어리”(「아직은 말을 할 수 있는 나에게」)에서 “H빔에 발가락 물린 최씨/그라인더에 눈을 간 안씨/제 손을 타공한 김씨/(…)/장비에 깔려 탕탕탕 세번 바닥을 치다 간 박씨/비 오는 날 용접선에 달라붙은 황씨”(「MRI를 찍으며」) 들의 삶을 끄집어내며 우리가 애써 못 본 척하거나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그러나 결코 외면할 수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되는 현실의 참모습을 보게 하고 알게 한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피어린 현실을 시로 받아 적다

    “계획된 학살”과 “자본의 테러”가 판치는 ‘더럽고 추악한 세상’의 진실을 낱낱이 드러내며 시인은 “더이상 죽지 말고/일어나 싸우자”(「너희는 참 좋겠구나」)고, “세상이 한번은 뒤집어져야 한다고”(「뒷마당」)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 지난 시절 ‘여섯 명이 죽고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던’ 저 용산 참사의 현장에서 비장한 목소리로 “이 냉동고를 열어라” 부르짖던 시인은 오늘, 304명의 목숨을 차가운 바닷속에 생매장한 세월호 참살의 현장에서 “신고만 받고 AS는 단 한번도 안하는 저 국가”(「국가, 결격사유서」)의 무책임에 ‘결격사유서’를 내밀며, “함께 살자는 노동자들의 구조신호”는 외면한 채 “자본만이 무한히 안전하고 배부른 세상”(「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을 향해 다시 한번 분연히 외친다.

    아울러 시인의 시선은 더 나아가 다국적 자본의 세계로까지 뻗어나간다.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한국 자본의 폭력에 분노하던 시인은 급기야 국적을 부정하기에 이르고, “전세계 부자 85명이/세계 인구 절반과 동일한 부를 소유한 이 지구별에서”(「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자신의 정체성을 뜨겁게 되묻는다.

    나는 한국인이다/아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나는 송경동이다/아니 나는 송경동이 아니다/나는 피룬이며 파비며 폭이며 세론이며/파르빈 악타르다/수없이 많은 이름이며/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치욕이며 구경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다시 쓰러짐이며 다시 일어섬이며/국경을 넘어선 폭동이며 연대이며/투쟁이며 항쟁이다(「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부분)

    그런데 세상은 여전히 ‘밤’이다. “밤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밤’이고, “이 밤에도 도는 라인이 있”는 ‘밤’이고, “이 밤에도 끌려가는 사람들이 있”(「바다 취조실」)는 ‘밤’이다. 세상엔 아직도 “말하지 못한 슬픔들”과 “아직 말할 수 없는 아픔들”(「말더듬이」)이 있다.

    “일을 할수록 더 빈곤해지”고 “나이도 먹기 전에 쓸모없어지는”(「공장은 무덤을 생산한다」) 노동자들은 “고공엘 기어올라봐도/머리를 깎고 수천 배를 해봐도/변하지 않는 비정규직 굴레(「기륭과 보낸 십년」)에 얽매여 삶의 벼랑 끝에서 허덕인다. 도대체 “대법원 판결도 소용없”고 “국회에서 맺은 사회적 합의서도 무용지물인” 이 “희한한 세상”에서 더는 물러설 곳도 없이 “목숨을 반납하고서야 벗어날 수 있는 법외 인생들의 천국”(「법외 인간들을 찬양함」)은 어디에 있는지 시인은 다시 묻는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직통으로 가는 길도 있나요/저 담쟁이넝쿨 붉은 성당으로 가면 표를 얻을 수 있나요/성처럼 웅장한 저 교회로 가서 기다리면 되나요//천만 비정규직 가족도 정규로 갈 수 있나요/공장에서 쫓겨난 해고자도 출입증 없이 갈 수 있나요/ 시시때때로 끌려가는 저 철거민도 노점상도/이주노동자도 차별 없이 온전히 들어갈 수 있나요//(…)//그 길에도 차벽이 가로막혀 있나요/그 길에도 공권력이 지키고 서 있나요/그 길에도 용역깡패들이 진을 치고 있나요//도대체 목매달지 않고/기름 끼얹지 않고 연탄불 지피지 않고/망루와 철탑에 오르지 않고 뛰어내리지 않고/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우리들의 크리스마스」 부분)

    주먹을 오래 쥐고 있던 손처럼 다사로운 시

    종로2가 공구상가 골목 안/여인숙 건물 지하 목욕탕을 개조해 쓰던/일용잡부 소개소에서 날일 다니며/한달 십만원짜리 달방을 얻어 썼지/같은 방 친구의 부업은 타짜/한번에 오만원 이상은 따지 말 것/한달에 보름은 일을 다녀야 의심받지 않음/한곳에 석달 넘게 머물지 말 것/원칙 있던 그가 가끔 사주는/오천원짜리 반계탕이 참 맛있었지/밤새워 때 전 이불 속에서/책을 읽고 시를 쓰는 내게/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꼭 성공하라고/떠나는 날에야/자신이 결핵 환자라 고백했지/그가 떠난 날 처음으로/축축하고 무거운 이불을/햇볕 쬐는 여인숙 옥상 빨랫줄에 널었지/내게는/결핵보다 더 무서운/외로움이라는 병이 있다는 것을/차마 말하지 못했으니, 쌤쌤/괜찮다고 괜찮다고/어디에 가든 들키지 말고/잘 지내라고 빌어주었어(「결핵보다 무서운 병」 전문)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배관공으로, 목수로, 용접공으로 하루 벌어 하루 살던 자신의 과거 모습을 서정적인 어조로 담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방 한칸 없이 평생을 월세로 전세로 쫓겨다니”던 그 시절 시인이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는 것. 아니, 그보다 더한 “정리해고자 실업자 비정규직 노숙자로 길거리를 헤매는”(「그 고양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현실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아픈 굴레 안에서 “늘 목마른 생을 살아”온 시인은 때로 절망과 패배의식에 젖기도 하지만 비단 “이기고 지는 것만이/무엇을 이루고 못 이루고만이/인생의 전부가 아님을”(「사적 유물론」) 깨달으며, 언젠가는 기어코 노동자의 ‘햇새벽’이 오리라는 오래된 믿음을 간직한다.

    몇번이나 세월에게 속아보니/요령이 생긴다/내가 너무 오래 산 계절이라 생각될 때/그때가 가장 여린 초록/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 보인다고/포기하고 싶을 때, 매번 등 뒤에/다른 광야의 세계가 다가와 있었다//두번 다시는 속지 말자/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사랑은 한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전문)

    저 평택 대추리에서부터 기륭전자, 콜트-콜텍, 쌍용자동차, 용산, 강정, 밀양, 진도 팽목항에 이르기까지 거대 자본에 맞서 싸우는 고통의 현장에서 늘 ‘거리의 시인’으로서 함께해왔던 시인은 “너무 많은 죽음에 눈물도 아픔도 다 말라”(「노동자들의 국기」)버렸다. 그럼에도 시인은 “이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적 죽음의 시대”(「아직은 말을 할 수 있는 나에게」)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지피며 “악독하고 비참한 일들도 많은 세상이지만 그보다 더 존엄하고 아름다운 일들로 가득 찬 게 이 생명의 별이라는 사실을 잊지”(「시인의 말」)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살아가며 배우지 말아야 할 말 중 하나는 ‘절망’일 것이다”라는 시인의 말, 그리고 이 야만의 시대에 “어떤 위대한 시보다/더 넓고 큰 죄 짓기를 마다하지 않기를”(「시인과 죄수」) 다짐하는 “송경동 같은 시인이 하나도 없는 세상은 너무 적막하다”는 정희성 시인의 말(추천사)이 오래도록 가슴에 여울진다.

    천상병시문학상을 받는 날/오전엔 또 벌 받을 일 있어/서울중앙법원 재판정에 서 있었다//한편에서는 정의인 게/한편에서는 불법, 다행히/벌금 삼백만원에 상금 오백만원/정의가 일부 승소했다//신동엽문학상 받게 됐다는/소식을 들은 날 오후엔/드디어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벅찬 소식을 전해 들었다//상 받는 자리는/내 자리가 아닌 듯 종일 부끄러운데/벌 받는 자리는 혼자여도/한없이 뿌듯하고 떳떳해지니//부디 내가 더 많은 소환장과/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의 주인이 되기를/어떤 위대한 시보다/더 넓고 큰 죄 짓기를 마다하지 않기를(「시인과 죄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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