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시대의 민낯은 어떤 모습일까?
    [책소개]『철학이 있는 도시』(우석영/ 궁리)
        2016년 02월 20일 01: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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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견딘다는 것, 삶을 지나간다는 것, 삶이 그럭저럭 살아진다는 것. 이것과 삶을 살아간다는 것, 순간순간 풍요로운 지금, 자신의 온전성을 느끼며 삶을 즐겁게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쪽인가요? 여기 이 땅,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우리는 위기의 시대, 새로운 가치의 모색기에 도달해 있습니다.” – 저자의 말 중에서

    고대와 현대,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미술작품 읽기로 휴전 후 한국사, 우리 시대, 도시, 집단과 개인의 문제를 논의하는 이 책 『철학이 있는 도시』는 한국인의 당대 이해, 자기 분석을 돕고자 쓰였다.

    저자는 개개인의 인간적 삶이 처참히 무너져 내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주목하면서, 대다수의 한국인이 오늘날 도시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왜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는지, 이 시대의 집합적 삶을 그 근원에서 네비게이팅하는 정신성과 그 뿌리는 무엇인지 등을 탐구해나가는 일이 시급함에도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일상에 밀려 경도되고 있는 현실에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껴왔고, 이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획이 가능했던 것에는 꽤 특별한 사정이 있다. 이 나라의 대도시가, 해외(호주)에서 10년의 외유를 하고 돌아온 저자의 눈에 돌연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논의되는 도시는 반절은 이방인인 젊은 사회학자에게 발각된 도시다.

    “국가가 언제나 강조되며 국민 위에 군림해왔지만,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국가는 빈곤한, 그보다는 사기업이 피고용자-개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국가 없는 국가주의라는) 모순적인 사태는, …… 사실상 독점재벌이 전 국민을 고객으로 환원해 그 삶과 정신의 세세한 구석까지 지배하고 있는데도, 그 피지배의 당사자들은 재벌을 지배자로 인식하기는커녕 명예로운 한국의 대명사로 호출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데, …… 특정 영화를 1,000만 명이나 보고, 베스트셀러가 쉽게 조작 가능하며, ‘인터넷 검색어 1위’ 따위로 전 국민적 화제를 통일하는 집단주의 도시 문화는, 전 세계에서 그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특이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당연시할 뿐 자기이해나 분석, 자성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 이러이러한 삶이 바람직한 삶이라는 표준적인 삶의 모델, 행복의 모델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이를 의식하며 사는데, 이런 모델화된 삶의 추구 또한 다른 사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고층 아파트살이를 당연시하고, 고속과 테크놀로지를 탐닉하는 정신 역시 지구상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그 예를 찾기 어렵다. …… 이 책은,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를 당연시하는 태도에 제동을 걸며, 한국인의 당대 이해, 자기 이해를 돕고자 쓰였다. 대다수의 한국인이 오늘날 도시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왜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는지, 이 시대의 집합적 삶을 그 근원에서 네비게이팅하는 정신성과 그 뿌리는 무엇인지, 우리 자신에게 비추어주는 책이 되려 한다.” – 본문 중에서

    50여 장의 미술작품 읽기를 통해 현대와 도시 문제를 탐색

    저자 우석영은 철학, 사회학 분야 연구자이자 집필가로 연세 대학교, 시드니 대학교 대학원,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 대학원을 유랑하며 예술사회학, 문학, 철학 분야의 내공을 쌓았다. 예술사회학, 그중에서도 저자의 전공은 미술사회학이었고, 대학을 졸업한 뒤로도 미술에 대한 관심과 공부는 중단해본 일이 없다.

    그는 ‘파인 아트(Fine Arts)’라 불리는 장르에 줄곧 매료되어왔는데, 이러한 사정이 이 책의 주제를 풀어나가는 데 미술작품 읽기를 사용하게 된 바탕이 되었다. 시대를 비추는 그림들을 통해 “지금 이 도시에서 우리가 어떻게, 왜 그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화두에 독자들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서고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미술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사를 더 잘 기억하게 하고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 알랭 드 보통과 존 암스트롱, 『영혼의 미술관(Art as Therapy)』

    본문에는 강세황, 김수철, 이인문, 정선에서 민정기, 임옥상, 반 고흐, 클로드 모네, 라울 뒤피, 칸지두 포르치나리, 베르나르 간트너, 알프레도 마르티네스, 딘호 벤토에 이르기까지 고대와 현대,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예술가들이 남긴 50여 장의 다채로운 미술작품이 등장한다. 각각의 그림들은 오늘날 한국과 한국인, 도시의 문제를 탐색하는 도움을 주는 한편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독자로 하여금 사색과 철학의 길을 열어주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철학이 있는 도시

    – 책 속 미술작품들 –

    강세황 <초옥한담도> / 게오르게 그로스 <로우어 맨해튼>, <메트로폴리스>, <실직 상태> / 김수철 <송계한담도> / 김정헌 <아파트에 한 뼘의 땅을 선사함>, <흙산> /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프롤레타리안 마더> / 도화서 <동궐도> / 디에고 리베라 <무어 박사의 손> / 딘호 벤토 <인간 동물 II> / 라울 뒤피 <볼로뉴 거리>, <아름다운 여름>, <전기 요정> / 로베르 들로네 <행진의 현장-붉은 타워> / 민정기 <양평 여름> / 바실리 칸딘스키 <운동 I> / 박용빈 <학교 야경> / 베르나르 간트너 <석양 쪽으로 향하는 증기기관차> / 빈센트 반 고흐 <몽마르트의 밭>, <아니에르의 공장> / 샤임 수틴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하교> / 스튜어트 데이비스 <멜로우 패드> / 시그마 폴케 <슈퍼마켓> / 심사정 <임간서옥> / 알베르트 앙커 <선데이 스쿨 워크>, <건초더미에서 자는 아이> / 알프레도 마르티네스 <과일 든 여인들> / 오윤 <마케팅 2-발라라> / 윌리엄 터너 <눈 폭풍: 어느 항구 초입의 증기선>, <비, 증기, 속도-위대한 서부철도> / 이경현 <컨센트레이트> / 이난영 <우리가 꽃이 되고 나무가 되리> / 이인문 <송계한담도> / 임옥상 <이사 가는 사람> / 임옥상 <행복의 모습> / 정선 <삼승조망> / 정재호 <청운동 기념비> / 조지 투커 <웨이팅 룸>, <점심> / 최동열 <서커스 독> / 칸지두 포르치나리 <커피 수확>, <커피 농부> / 클로드 모네 <눈 속의 산드비켄 마을>, <부기발의 센> / 키비인 <인바이런-멘털: 기후 혼돈과 오염> / 탕인 <동음청몽도> / 폴 세잔 <굽어 들어가는 숲길> / 폴 시냑 <베생 항, 칼바도스> / 피에르 보나르 <베르농의 테라스> / 현혜명 <숲 1201>

    철학이 깨어 있는 도시를 위해 물어야 할 질문들

    총 14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각기 다른 꼴을 합성하여 새로운 전체를 만드는 콜라주(Collage) 기법으로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즉 도시와 도시살이의 여러 다른 풍경(예술작품)들을 조합하여 한국 대도시의 전체 풍경을 펼쳐보이는 동시에, 우리네 민낯을 고스란히 마주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진정 ‘살고 있다’라고 표명할 수 있는 삶, 개개인의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살뜰히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국의 대도시에서 성장하는 일, 곧 교육받는 일이란 무엇일까?

    1장 ‘공포의 대물림이라는 악순환의 회로’의 주제는 한국의 대도시에서 성장하는 일, 곧 교육받는 일이다. 대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해 뜨면 학교로, 해 지면 학원으로 시계추처럼 오가며 하루하루 견디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삶을 으레 그런 것이려니, 하며 당연시하는 동안, 우리가 상실하는 것은 없을까? 우리는 지금 제대로 된 미래 도시민을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

    한국의 대도시 거주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2장 ‘거류민국의 아파트’와 3장 ‘장소정체성과 평화’는 한국의 대도시 거주, 특히 아파트살이 위주의 거류(居流)와 장소 정체성의 문제에 주목한다. 아파트 자산 운용이 서민과 중산층에게 가정 경제 운용의 중심으로 자리하면서, 아파트살이는 한국의 대다수 호모 이코노미쿠스들의 표준적 삶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는 최첨단 설비와 인테리어, 자산이라는 혜택을 얻는 대신에 땅과 진정으로 관계 맺는 삶을 포기하는 선택이다. 더욱이 2년마다 또는 더 자주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전월세 세입자라면 장소정체성 상실이라는 질병을 앓게 되어 있다. 21세기는 유목의 시대라는 수사로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온 대로 살아가면 그만인가? 집과 거주, 정주의 의미를 새로이 생각해야 하지는 않나?

    현대 도시인에게 음식과 식사란 무엇일까?

    4장 ‘레시피 시대의 식사 철학’과 5장 ‘음식, 도시인의 자기 이해 관문’은 이 시대의 첨예한 사안이기도 한 음식과 식사의 문제를 파고든다. 미식의 쾌감을 제공하는 한 문제될 것 없는 음식. 나는 이런 음식을 단기성 음식이라 부른다. 10~20분의 짧은 식사 시간, 다음 끼니 전까지 몇 시간 동안 유지되는 열량원으로써 단기 효과를 낼 뿐이므로 적당한 용어이리라. 화학농법, 공장식 농법으로 생산되고 장거리 수송으로 공급되어 식탁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은 이런 유의 음식은 장기적으로는 인체에, 나아가 생태계에 위해를 가하기 쉽다. 그런 점에서 폭력의 음식이지만, 오늘날 이 도시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들 가운데 음식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이는 소수자인 듯하다.

    도시 소비자와 도시 노동자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

    6장 ‘인간에서 고객님으로, 인격 마케팅 시대를 애도함’과 7장 ‘프레카리아트의 탄생’에서는 각기 도시 소비자와 도시 노동자의 존재론적 지위를 다루며, 한국 극자본주의의 단면을 논한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대도시 소비자들은 고객님들이 되었다. 인간 존중의 감각, 윤리의 감각마저도 마케팅 수단으로 만들어버리는 기업 정신의 결과물이다. 이 고객님들 중 상당수는 비정규직, 기간제, 파트타임 노동자들, 즉 프레카리아트 계급인데, 이들의 문제는 단지 임금과 노동시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은 사회적 정체성의 문제, 인생 비전 만들기의 문제 같은 보다 심각한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한국 사회의 고속 문명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

    8장 ‘고속 문명,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의 주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속도의 시대로, 한국에서 고속이 최고선이 되어버린 사태의 역사적 뿌리와 그 발전 과정을 추적한다. 18세기 중엽 이래의 산업혁명의 시작과 발전, 19세기 전기혁명, 에펠타워의 건립 등을 탐사하며, 고속의 지향이 어떻게 현대 세계를 형성했는지 살펴본다. 그러나 이 장에서 제기하는 문제의 대상은 전 세계적 맥락의 고속이라기보다는 한국의 고속이며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정신성인 하이테크 지상주의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모바일링’의 시대, 단순과 평화는 가능할까?

    9장 ‘모바일링의 시대, 단순과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에서는 모바일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초래한 ‘모바일링’이라는 새로운 사회 현상과 대안을 이야기한다. 온라인에 접속한 이들은 쇄도하는 정보(뉴스, 상품, 광고, 관계)를 미끄러지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모바일링의 삶을 산다. 이는 체험의 깊이를, 어쩌면 체험 자체를 우리의 삶에서 지워내고 있다. 그러나 체험의 깊이라니? 우리 시대에 가당한 이야기일까?

    한국의 대도시에서 참된 휴식이란 무엇이며, 지금의 여건에서 어떻게 가능할까?

    10장 ‘휴식이 능력이 된 시대’와 11장 ‘걷기 예찬’의 화두는 참된 휴식과 그 방법이다. 우리 시대의 한 가지 결정적인 특징은 휴식이 어렵다는 것이다. 초고속인터넷망이 열어주는 끝 모를 정보와 상품의 쾌락계, 24시간?주7일 무휴라는 구조적 조건, 저임금 비정규직의 장기화 속에서 현대 도시인들은 휴식의 권리뿐만 아니라 능력마저 상실하고 있다. 이에 저자는 걷기에 대한 명상, 도시와 자연의 관계(12장 ‘도시엔 숨 붙은 것들이 많다’), 당대 한국인의 이중적 자연관(13장 ‘생명의 침몰, 신이 된 손’) 등을 통해 그 해결법을 발견해보고자 청한다.

    지금 우리는 영혼과 이성이 살아 있는 존엄한 삶,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가?

    14장 ‘야만과 야만 사이에서, 또는 문명의 이상’은 마무리 장으로, 휴전 후 지금까지의 한국 전후사(戰後史)를 거시적으로 다루며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당면 과제와 문명의 이상을 사색한다. 지금 우리는 60여 년 전의 전쟁 상황, 야만 상황에서 정녕 멀리 벗어나 있는가? 문명인다운 삶, 영적 생명과 이성이 살아 있는 존엄한 삶,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가? 답변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14장으로 직진해도 좋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 ‘철학이 있는 도시’를 ‘철학이 필요한 도시’에 대한 이야기라고 읽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강조했듯 “여기 도시의 낙원 또는 지옥에서 철학 없이, 혹은 영혼 없이 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 이 책의 주된 화두이기 때문이다. 철학이 없는 도시에서 철학이 있는 도시로 가자는 말의 함축도 품고 있음을 거듭 기억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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