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살해의 사회적 배경
    그들은 왜 자신의 유전자를 공격할까?
    [범죄사회 브리핑] 치안정책 아니라 가족정책 필요
        2016년 02월 19일 09: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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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 가족과 역사를 전공한 범죄 프로파일러의 대한민국 <범죄사회 브리핑>을 시작한다. 이전부터 칼럼을 쓴 배상훈 박사가 담당한다. 매일 접하는 우리 사회의 범죄 속에서 우리 자신의 자화상, 그리고 그 사회적 배경과 의미를 짚어본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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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자녀들을 학대, 살해하는 사건이 지속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어린이, 아동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정작 부모가 자식을 학대, 살해하는 범죄는 더 많이 언론에 노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회자되는 인식과는 달리 아동학대의 87% 가량은 친부모에 의한 가해행위이고 더군다나 가해행위 중 보다 잔혹한 가해행위의 대부분이 친부모에 의해 자행된다.

    물론 요즘에 들어서 과거에 비해 특별히 아동학대의 빈도가 더 많아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전에는 감춰졌던 것들이 외부에 드러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특히 2015년 12월 20일, 30대 남성과 그 동거녀가 11살 딸을 2년간 감금, 학대해 구속된 사건이 그 기점일 것이다.

    이 사건이후, 정부에서는 부랴부랴 취학연령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전수조사하는 과정에서 숨겨져 있던 잔혹한 사건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후 1달 약간 넘는 기간 동안, ‘부천 초등생 아들 시신훼손 사건’, ‘부천 13살 딸 시신방치사건’, ‘용인/광주 큰딸학대살해 암매장사건’ 등이 연달아 세상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사건들 이전에도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들은 꾸준히 있어왔다. 2015년 1월 발생한 서초동 세 모녀 살해사건의 가장이 저지른 이른바 동반자살(자녀살해 후 자살)이 있었는데, 범인인 가장은, ‘남은 처자식이 불쌍한 삶을 살 것 같아 같이 가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월에는 경남 거제시에서 30대 남성이 비슷한 이유로 아내와 어린 자식 3명을 살해한 뒤 스스로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고, 3월에는 사채를 감당하기 어려워 7세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30대 여성도, 생활고로 두 자녀 죽인 뒤 암매장했던 30대 여성도, 6월에는 어린이집에서 자신을 따라나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30개월 친딸을 밀대로 폭행해 살해한 30대 부부도 있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왜 자신의 자녀들을 잔혹하게 학대 살해하는 것일까? 흔히 많은 전문가들이 내놓는 얘기로는, 가정 불화, 사업 실패,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 우울증 및 불안감 등을 주된 원인이라고 하고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한국 사회의 자녀관에도 책임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자본주의화에 따른 생명경시 풍조,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분노 조절 문제 등도 언급된다.

    물론 다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까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없으니까 가장 만만한 주변인들, 특히 가장 가깝지만 자기보다 약한 존재들인 여성과 아이를 공격하는 기제(매커니즘)인 것이다. 거기에 대중매체(게임물 등)의 영향에 따라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약해졌고 마땅히 스트레스를 자연스럽게 해소하게 해줄 사회적 장치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자녀1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본질적으로 약간 부족한 느낌이다. 그래도 자기 자식인데! 좀 더 정교한 기제는 없을까? 필자는 ‘투영’, ‘투사’, ‘동일시’ 정도의 기제를 추가하고 싶다. 자녀는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받은 존재이다. 적어도 반은 자신과 다르지 않다. 거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 전적으로 투영된다. 많은 부분에서 그 자녀의 얼굴이나 행동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자기 처지가 좋을 때는 그런 모습이 보여도 인지하지 못한다. 자기가 잘나서 잘된 것이니까. 그런데 자기 처지가 나빠지면 그 나빠진 모습을 누구에게서 인가 찾고 싶어진다. 바로 거울을 보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 왜 책임을 전가하고 싶으니까! 그래서 못난 자신을 나무라고 질책하는 행위가 시작된다. 표현적으로는 아이에 대한 폭언과 방임, 방치, 폭력 등을 행사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표면적으로 아이를 때리고 학대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폭력은 그 자체의 생존력을 가진다. 한 번 시작되면 마치 습관이나 통과의례처럼 반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폭력의 속성상 ‘폭력의 에스컬레이팅 현상’이 진행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폭력의 역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그렇지만 학대했다고 해서 모두 죽이는 것은 아니다. 굳이 죽일 이유가 없다. 지속적으로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 상대가 되는 이른바 ‘폭력의 샌드백 효과’가 생기는데 굳이 죽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다만 다른 상대로 대치되거나 도망가거나 하는 등의 외부효과가 생기면 그때서야 해당 아이에 대한 폭력은 종료되는 것이다. 물론 그 기억은 가해자나 피해자에게 모두 트라우마로 남는다. 가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를 물색하게 되고 피해자는 폭력의 기억 속에서 고통을 받다가 대부분 무력한 사람을 살게 되고, 더러는 스스로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정리하자면 (특히 한국사회에서의) 아동학대는 혈연 중심 가족주의와 폭력문화가 결합한 범죄행위인 것이다. 혈연이 중심된 가족주의는 자녀를 자신에게 투영하고 동일시하게 되기 쉽다. 그게 확대되면 절대적인 소유의식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아동학대 사건에서 아이들을 꽁꽁 결박하거나 꼼짝 못하게 세워두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 폭력문화는 이른바 윗세대에 의한 훈육이나 가르침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정당화된다. 그렇지만 폭력은 속성상 자기 재생산을 한다. 즉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왜? 가장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쉽고 편하다. 그것을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효과라고까지 오해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2008년에서 2012년 사이를 기점으로 가족행동과 가족관념이 가족형태와 극단적인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가족형태는 바뀌어야 하는데 낡은 관념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거기에서 파생되는 폭력적인 가족행동이 현재의 혼란스런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 수많은 학교 밖의 아이들(청소년) 문제, 노인빈곤(자살) 문제, 가장 탈출문제, 아동학대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핵심적으로 손봐야 하는 가족문제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지극히 표면적인 문제들, 즉 아동학대 모니터링 제도와 아동 학대 관계자 신고제, 경찰에서의 아동학대 수사전담팀 창설 등과 같은 대증적인 요법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물론 당연히 그런 제도들은 즉각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매우 비본질적인 문제들이다. 본질은 우리 사회의 가족문제를 깊숙이 살펴봐야 하는 점인데,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단언컨대 아동학대로 인해 죽어가는 아이들은 거의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다만 더 교묘하게 은폐될 뿐, 이 문제는 감시하고 신고하고 수사하고 처벌하는 치안정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 아이들이 인격체이고 폭력의 대상이 아닌 정당한 사회의 구성원임을 명확히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필자소개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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