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견된 참상, 지카 바이러스 사태
    "질병 원인은 세균이나 확산은 사회적 요인이 결정"
        2016년 02월 18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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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볼라와 메르스의 악몽이 잊히기도 전에 또 다른 전염병이 찾아왔다. 태아의 선천성 뇌 기형인 소두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지카 바이러스가 지난해 5월부터 대규모로 확산되고 있다. 브라질에서만 150만 명 넘게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30개국에서 감염이 보고되었다(2월 16일 기준).

    감염이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자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월 1일 ‘국제 공중보건위기상황(PHEIC)’을 선포하며 비상사태에 돌입하였다. 각국 정부는 모기 예방법 마련, 여행 자제 권고 등 대응에 나섰다.

    해를 거르지 않고 쉴 틈 없이 유행하는 전염병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활보하고 있다. 대규모 전염병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며 예상치 못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전염병 유행은 사회적인 요인이 중요하며, 전염병이 창궐할 만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로 생긴 필연적인 결과다.

    의1

    공포의 지카 바이러스

    지카 바이러스는 1947년 아프리카 우간다 숲의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됐다. 지난 반세기 동안 아프리카,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14건의 감염만 보고된 이 바이러스는 2007년부터 태평양의 섬 일대에 발생하기 시작해 두 차례 유행을 일으켰다. 브라질에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는 수일의 잠복기 후에 발열, 발진, 눈 충혈, 관절통 등의 증상을 보이나 대개 경미하며, 환자의 대부분은 일주일 이내에 증세가 회복된다. 감염자의 80%는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하고 넘어간다. 지카 바이러스는 열대지역에 서식하는 이집트숲모기를 통해 전파되며, 흰줄숲모기도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의2

    감염 시 증상이 경미한데도 지카 바이러스가 주목 받는 이유는 이 바이러스와 소두증 환자 발생과의 관련성 때문이다. 소두증은 신생아의 두뇌가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채 작은 머리를 갖고 태어나는 선천성 기형이다. 브라질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소두증으로 의심되어 신고된 5,079명 중 1,227명이 조사되어, 462명이 확진된 상황이다(2월 12일 기준). 이는 예년의 150~200명보다 급격히 늘어난 수치이다.

    아직까지 지카 바이러스 감염과 소두증과의 명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근 발표되는 연구결과들은 계속해서 그 가능성을 더욱 뒷받침하고 있다. 둘 사이의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입증되기까지는 6~9개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이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백신이 없는 점, 또 지카 바이러스의 매개체인 이집트숲모기와 흰줄숲모기의 서식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다는 점은 이 바이러스의 광범위 유행 가능성을 시사한다.

    도시화와 기후변화가 초래한 모기의 증가

    지카 바이러스는 숲모기 없이 전파가 힘들며, 따라서 숲모기는 이 바이러스의 매우 중요한 매개체다. 숲모기의 서식 범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인간과 숲모기의 접촉 기회 역시 증가하고 있다. 지카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경제적 배경이 존재한다.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환경파괴와 관련돼 있다고 지적한다. 지나친 벌목으로 인해 숲에 살던 모기들이 인간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또한 숲이 사라진 자리에 급격한 도시화 과정이 이루어지면서 숲모기가 서식하기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도 그 배경이다.

    여기에는 빈곤도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퍼진 근원지인 브라질의 북동부지역은 빈곤이 만연한 지역이다. 처리되지 못하고 산재한 쓰레기들에 빗물이 항상 고여 있다. 수도 시설이 부족해 많은 사람들이 탱크에 물을 모아두어 숲모기들이 알을 낳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이런 상황을 계속 방치하며 숲모기의 증가를 더욱 부채질 해왔다.

    기후변화도 숲모기의 증가에 기여했다. 숲모기는 주로 열대지역에 서식한다. 매년 지구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숲모기의 서식 가능 범위는 더욱 확장되고 있다. 북부지방의 겨울이 점차 따뜻해짐에 따라 숲모기는 새로운 영역으로 계속 퍼져 나가고 있다.

    의3

    문제는 지카 바이러스가 이러한 모기 서식지 변화와 개체 수 증가에 따라 확산되고 있는 모기 매개 감염병들 중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해마다 수억 명을 감염시키고 20,000명 이상의 목숨을 가져가는 뎅기 바이러스가 가장 대표적이며, 치쿤구니야 바이러스도 지카 바이러스처럼 비교적 최근에 발생이 증가했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황열병 바이러스를 포함해 언급된 바이러스 모두 지카 바이러스와 동일하게 숲모기를 통해 전파된다.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역시 최근에 발생이 증가한 모기 매개 감염 바이러스다.

    브라질 정부의 방치와, 국제사회의 자국 중심 대응

    오는 8월 올림픽 관광 특수를 기대하던 브라질은 지카 바이러스 사태를 “통제할 수 있다”며 무마시키기에 급급하다. 브라질 정부는 숲모기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공무원과 군인 등 22만 명을 동원해 방역작업과 예방교육을 하고, 임신부 40만 명에게 모기예방약을 배포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는 이집트숲모기 박멸작전의 성공 여부는 의문이다.

    소두증 피해가 가장 심한 북동부 페르남부쿠 주의 헤시피(Recife) 시에서 진행되는 방역작업은 고작 방역요원들이 주택가를 찾아다니며 고인 물을 버리는 정도다. 이 지역은 비위생적인 환경이 널려 있어 모기의 번식을 막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또한 지난 수십 년간 이런 상황을 방치해두었던 정부가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의지가 있을 지도 미지수다. 지난해 11월 소두증과 지카 바이러스의 관련성이 대두되면서 헤시피 시에서 모기 박멸을 위해 700만 달러를 연방 정부에 요청하였으나 1월이 되어서야 겨우 30만 달러가 지급되었을 뿐이다.

    당면한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그저 자국의 방역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여행자제, 임신지연 권고 등이 고작이다. 그러면서 유전자조작 모기 등을 통한 신종 모기 퇴치 기술에 초점이 맞춰져 모기가 번식하는 구조적 원인은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모기의 증가는 한 국가 홀로 대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이다.

    환경파괴, 빈곤 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도외시한 채 방역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동안 기후변화에 따라 모기 매개 감염병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는 끊이지 않았고, 여러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국제사회에 새로운 열대지방질환의 유행을 초래할 수 있다고 꾸준히 경고해왔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말뿐인 협상과 현상유지를 위한 수단들만 내놓을 뿐이었다.

    한편으로 국제사회는 백신 개발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시급히 공적 재원을 투자해 이 바이러스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생 원인에 대한 접근은 부재한 채 약물의 개발에 힘을 쏟는 것은 질병에 대해 사후적인 처방을 내리는 것이며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언제든 새로운 전염병이 유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당장 급한 불만 끄자는 식의 국제사회의 태도는 과거 다른 전염병 유행시기에도 일관되게 나타났다.

    메르스 이후 한국은 지카 바이러스에 안전한가

    한국도 지카 바이러스 안전지대는 아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바이러스를 옮기는 흰줄숲모기는 한국에서도 서식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29일 지카 바이러스를 제4군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했다. 보건복지부는 국민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행동수칙을 알리고, 방역 및 입국자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올해 중 전국적인 모기 분포조사도 실시할 예정이다.

    지카 바이러스의 전세계 확산으로,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로 초토화되었던 보건당국은 다시 시험대 위에 오르게 되었다. 질병관리본부는 국가방역체계 개선 대책의 일환으로 지난달 1일 차관급 조직으로 격상·개편되었다. 그러나 직원 8명이 감사원의 메르스 감사에서 중징계 대상자 명단에 오른 데다 질병관리본부장도 뒤늦게 임명되는 등 아직 조직이 어수선한 상황이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 이후 응급환자 분류체계 도입, 진료 의뢰‧회송 수가 마련 등 응급실 감염관리 강화와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위한 방안을 내놓았고,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후속대책을 마련했다.

    사태의 주요한 원인으로 제기되었던 공공의료의 공백과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한 근본적 대책의 부재에 대해서도 반드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2016년에도 원격의료 도입, 제약·의료기기 규제 완화 등 전면적인 의료산업화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정부와 보건당국의 모습을 볼 때, 과연 이들이 국민의 건강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감염병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울지 의문이다.

    반복되는 전염병의 고통 – 인간이 자초한 결과

    광범위한 모기의 분포로 볼 때, 그리고 확산된 감염의 규모로 볼 때, 이번 사태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는 엘니뇨 현상으로 모기 수가 더욱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백신 개발도 3~10년은 필요하다고 한다.

    지카 바이러스와 소두증과의 관련성이 없기만을 기대해야 할까? 만약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혀지더라도 앞으로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남미에도 지카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지자 에콰도르,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등에서는 여성들에게 당분간 임신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에는 성폭력이 만연해있으며, 대다수 국가에서 낙태가 불법이거나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또한 지카 바이러스가 주로 확산된 곳은 빈곤·저개발 지역이면서, 피임에 대한 접근이 제한될 뿐 아니라 성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임신을 하지말라’는 방식의 대응은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정책일 뿐이다.

    남미언론 라티노헬스는 “지카 바이러스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은 모든 산모들이 마찬가지이지만 경제력에 따라 대응방법도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가난할수록, 사회적 약자일수록 전염병에도 더 취약하다는 뜻이다. 지카 바이러스의 문제가 일부 후진국들의 질환으로 국한될 가능성도 있다.

    같은 이집트숲모기를 매개로 감염병인 뎅기열에서 이는 명확히 드러난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미국의 러레이도(Laredo)와 멕시코의 누에보라레도(Nuevo Laredo)는 최근 뎅기열 감염률이 1.3%와 16%로 큰 차이를 보였다. 미국의 실내 에어콘 사용이 모기로부터의 접촉을 감소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다른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브라질 보건 당국은 지카 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뎅기열병과 치쿤구니아열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는 상파울루 주내 전체 도시 가운데 95%에서 뎅기열병 환자가 보고됐다.

    전염병 유행에 대한 사회생태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 곤충감염병균전문가는 “지카 바이러스와 같은 질병들은 동물과 모기 사이의 폐쇄적인 구조에서만 발병됐는데 (벌목 등 환경파괴로) 모기가 번성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인간까지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2014년 에볼라사태 역시 삼림벌채로 숲이 파괴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더욱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서, 인간과 에볼라 바이러스의 숙주인 과일박쥐와의 접촉이 증가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2009년 전 세계를 휩쓴 신종플루는 대규모 공장식 축산업을 통해 돼지들을 좁은 공간 안에서 사육하다보니, 독감의 변이가 더욱 왕성하게 되고, 그에 따라 대규모 독감 유행이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마주하는 전염병들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윤의 관점으로 인간이 환경과 다른 종을 파괴하고, 약자와 빈곤층 문제를 유발하거나 방치한 결과이다. 그로 인해 발생한 전염병들은 다시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사회의학의 아버지인 루돌프 비르효는 발진티푸스 유행에 대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인위적 질병은 사회적 책임이 있으며, 그릇된 문명으로 인한 것이거나 특정한 계급만이 문명의 혜택을 누림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그는 질병의 원인은 세균에 있지만, 그 확산과 개인의 감수성은 사회적 요인이 결정한다고 지적했다. 증가하는 전염병 유행의 사회적 원인을 무시한 채 예측 불가능한 감염균에 대한 개별적인 의학적 개입(백신, 치료제)만으로는 계속해서 나타날 전염병들과의 사투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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