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숙해진 기시감,
    무상보육과 누리과정 논란
    [기고] 누리과정 갈등의 쟁점과 해법 ①
        2016년 02월 16일 0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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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김진석 교수가 누리과정을 둘러싼 갈등의 배경과 쟁점, 해법에 대한 글을 기고해왔다. 2회에 나누어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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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해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편성할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갈등’과 이를 따라오는 ‘파동’이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무상보육과 누리과정을 둘러싸고 경험하는 심지어 익숙해져버린 기시감이다. 기시감을 불러오는 대부분의 사건들이 그렇듯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무상보육과 누리과정을 둘러싼 이들 사건들도 매년 비슷하지만 사실상 조금씩 다른 양상으로 반복되고 있다.

    무상보육과 누리과정, 길지 않은 논란의 역사

    무상보육과 누리과정의 역사는 생각만큼 길지 않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의 대표 공약 가운데 하나였던 0-5세 무상보육은 당선 후 첫 해인 2013년 비로소 현실화되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누리과정과 관련 예산의 문제도 결국 0-5세 무상보육 정책의 큰 틀에 포함되는 특정 제도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큰 기대와 함께 우리나라 도입된 무상보육 정책은 그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2013년 3월 0-5세 아동에 대한 보편적 무상보육이 전격 시행되었지만, 그 해 하반기에 이미 무상보육 재정분담률 조정의 문제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무상보육이 전면화되기 전에 책정된 보육예산 관련 재정분담률(서울: 20%; 지방: 50% 국고 지원)을 무상보육이라는 제도적 환경변화에 맞게 현실화하기 위해 당시 이미 여야 합의로 국회에 제출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서울: 50%; 지방 80% 국고 지원)이 통과되지 않으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 반영된 갈등이었다.

    재정상황이 타 지자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낫다고 하지만 무상보육 관련 재정에 있어서도 가장 큰 규모의 부담을 안고 있던 서울시가 앞장서서 벌어졌던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장 사이의 갈등은 결국 무상보육 관련 중앙정부의 재정 분담률을 서울시 35%, 지방 65%로 상향조정하는 선에서 ‘절충’되었다.

    그 와중에 서울시는 약 2,000억 원에 달하는 지방채를 발행하여 임박한 ‘보육대란’을 모면하였고, 이 과정에서 현 세대의 보육 비용을 다음 세대로 떠넘긴 결과라는 비난과 우려가 제기되었다(관련 기사 링크)

    한 고비를 넘기는가 싶던 무상보육제도 관련 예산 논쟁은 2014년 말 교육부가 신청한 누리과정 관련 예산 2조 2,000여 억 원을 기획재정부가 2015년부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포함하여 편성하도록 결정하면서 다시 시작된다.

    다시 말해 2015년부터 무상보육 정책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3-5세 누리과정 지원 예산 전액을 유·초·중등교육정책 운용을 위해 시도교육청에 지원하는 교육재정교부금에 포함하여 운용하도록 한 것이다. 무상보육 관련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전쟁 2라운드의 시작이다. 같은 무대 위에서의 싸움이었지만 중앙정부를 상대할 선수가 2013년의 시도지사에서 2014년에 시도교육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와 같은 결정은 결과적으로 0-2세 어린이집 무상보육은 지방자치단체와 시도지사가, 3-5세 누리과정은 시도교육청과 교육감이 책임지는 모양새를 만들어 냈다. 이와 같은 결정은 무상보육 정책과 제도를 다시 한 번 뜨거운 논란의 한 복판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낳았고, 이 과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피로감은 가중되어 갔다.

    이 와중에 무상‘보육’ 예산 부족분을 이미 전 국민적 동의절차를 거쳐 수년 째 시행되어오고 있는 무상‘급식’ 예산으로 충당할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여권 일부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고, 급기야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015년부터 경남지역에 무상급식 정책의 폐기를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랜 갈등과 논란 끝에 당시 누리과정 예산 부족분으로 추정된 1조 8,000억 원 가운데 1조 원은 지방채 추가 발행으로 메우고, 중앙정부에서 예비비 5천 억 원 정도를 추가 지원하여 해결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또 한 해를 넘겼다. 이번에도 여전히 근본적 해결안은 제시되지 않았고 교체된 선수들 사이에 ‘절충’안이 도출하였고, 이는 역설적으로 다음 라운드가 이미 임박해 있음을 예고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다시 3라운드 … 갈등의 악순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2014년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문제로 3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선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중앙정부가 새로운 무기를 들고 나왔다. 2015년 10월에 누리과정 재정을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지출 범위에 포함하는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입법하여 시행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가 저항하지 못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나온 것이다.

    2016년 예산안이 발표되면서 진행되고 있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갈등은 현재 목격하고 있는 바와 같다. 갈등의 양상은 지난해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무엇보다도 논의의 구조와 쟁점이 달라지지 않았고, 거론되는 해법도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도 지난해와 비슷하다. 어느덧 기시감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과 국민들은 이렇게 반복되는 ‘갈등’과 예고된 ‘파국’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무상보육 정책과 누리과정 제도 전반에 대한 피로감이 가중되고 있다. 잔치상을 차려서 사람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맘껏 먹고, 마시고, 즐기라고 큰소리치더니 막 숟가락 들려 하니 먹은 만큼 돈을 내라고 하는 꼴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으니 어찌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

    심지어 “이럴 거면 애초에 시작하지나 말지. 별로 도움도 안 되면서 시끄럽기만 하고…”라는 다소 감정적인 반응조차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도입 초기부터 딴지를 걸고, 편 가르기를 통해 갈등을 유발하고, 사실상 별로 떳떳할 것도 없는데도 연일 남탓을 해대는 현 정부의 의도가 만약 지금과 같이 국민적 피로감을 유발시키고,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무상보육 무용론의 자연스런 여론 형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면 이는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하다. 국민들은 지금과 같은 익숙해진 기시감이 불편하고 기분 나쁘다.

    무상보육 무용론 위한 진 빼기 작전?

    이와 같은 부모들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와 같은 반응은 ‘감정적’이다. 누리과정이 포함되어 있는 무상보육 정책은 좋은 정책이고, 저출산 고령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서 꼭 필요한 정책이기도 하다.

    경제활동을 포함한 각종 사회활동 참여에 대한 내적 욕구와 사회적 압력을 받으면서도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을 거의 배타적으로 지고 있는 우리나라 여성에게 무상보육 정책은 더욱 중요하다. 무상보육 정책이 돌봄의 공적 책임성 실현과 등치될 수는 없겠지만, 영유아 돌봄의 사회화를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되는 정책이며, 이를 통해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를 촉진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초대받은 것으로 알고 찾아간 잔치 끝에 밥값을 내라하니 기분이야 좋을 수 없겠지만, 그로 인해 밥상 자체를 엎어버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계속해서 우리를 자극하고 불편하게 하고 있지만, 무상보육 정책의 의의에 대해 의심할 필요는 없다. 교묘하게 의도된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되, 그 불편함을 조장하는 각색된 자극의 연원을 파헤치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화가 치밀어 오르고 짜증이 밀려오는 것을 잘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리과정의 재정 책임을 둘러싸고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는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 찬찬히 들어다보는 노력도 필요한 때이다.

    쟁점 1 누리과정, 보육인가? 교육인가?

    정부가 무상보육 정책의 일부인 누리과정에 대한 예산을 지방교육청에 대한 예산 지원에 해당하는 지방교육재정분담금에 편성하도록 한 주요한 논리적 근거 중 하나가 누리과정은 유아교육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교육청의 예산으로 집행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논리의 적정성에 대한 판단을 잠시 보류하더라도, 이와 같은 논리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우리나라 취학전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돌봄정책의 체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동들을 가정 밖에서 돌보기 위한 기관으로는 만 나이로 0-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집과 3-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유치원이 있다. 결국 0-2세 아동의 경우 어린이집이라 불리우는 보육기관이 사회적 돌봄을 책임지고 있는 반면, 3-5세 아동의 경우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한 보육체계와 유치원을 중심으로 한 유아교육 체계로 이분화 되어있는 상황이다.

    이들 두 개의 시설에 대해서는 지원체계(어린이집-보건복지부; 유치원-교육부)와 관련 법(어린이집-영유아보육법; 유치원-유아교육법) 등의 측면에서 이분화되어 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누리과정은 취학직전 연령이라 할 수 있는 3-5세 아동에 대한 교육프로그램 차원의 통합적 운영을 위해 유아의 보육·교육 과정을 ‘국가 표준교육과정’으로 일원화하려는 정책적 노력의 일환이다. 이와 같은 누리과정은 2012년에 만 5세 아동에 대한 도입을 시작으로 0-5세 전면 무상보육이 도입된 2013년 3-5세 아동으로까지 확대 시행되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든, 유치원에 다니든 상관없이 3-5세 아동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보육·교육 통합과정이라 할 수 있는 누리과정은 신체활동·건강,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 등 5개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 그림(보건복지부(2015). 2015년 보육사업 안내)에 보인 바와 같이 누리과정 도입 전에도 어린이집에 적용되는 표준보육과정과 유치원에 적용되는 유치원 교육과정이 각각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를 중심으로 운용되어 왔으며, 이 두 개의 과정이 통합조정된 것이 누리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내용적으로 볼 때 돌봄 위주의 어린이집에서도 누리과정 도입이전부터 운영하던 표준보육과정(신체운동, 기본생활, 사회관계, 예술경험, 의사소통, 자연탐구)에 모두 포함된 내용들이 상당부분 누리과정에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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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표준보육과정 및 유치원교육과정과 누리과정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내용과 구성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누리과정이 과연 보육의 영역에 해당하는지, 유아교육의 영역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특히 누리과정이 어린이집과 유치원 모두에 적용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3-5세 아동을 키우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보육과 교육의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무상보육 정책의 수혜자에 해당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중요한 점은 누리과정이 보육프로그램이냐 교육프로그램이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 정부가 애초에 공표한 대로 0-5세 아동에 대한 국가책임 무상보육이 흔들림 없이 운용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애초에 약속하고 주장하던 ‘중앙정부 책임’의 무상보육이 누리과정의 도입과 더불어 (설령 누리과정이 교육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중앙정부의 책임이 사라진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쟁점 2 교육청의 누리과정 재정 부담, 안 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금년도 교육교부금이 지난해에 비해 1.8조 원 증가할 것이므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여력이 충분하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의 책임 소재를 놓고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 사이에 공방이 한창이던 지난 1월 2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한 것으로 알려진 내용이다.(관련 기사 링크)

    위 발언 내용에 언급된 1조 8천 억 원의 증가분은 지난 2015년 누리과정 예산 관련 갈등 시기에 시도교육감이 예산 부족액이라고 주장한 1조 8천 억 원과 정확히 일치한다. 위의 내용이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작년의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한 중앙정부의 기획된 예산 조정인지는 알 수 없다.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중앙정부는 적어도 작년 기준으로 누리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을 시도교육청에 고스란히 내려준 셈이고, 지금의 누리과정 파행은 내려준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이 집행하지 않은 모양새가 된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교육부가 제시한 2016년 지방교육재정 전망자료(관련 링크)에 포함된 아래 표를 보자. 아래 표에 따르면 2016년 누리과정 운영에 필요한 4조 원의 예산을 포함한 총 60.1조 원의 세출액이 표 왼편의 세입에 전액 반영되어 있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왼편의 세입 전망에 보면 전체 지방교육재정 세입의 70%에 이르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이 작년에 비해 1조 8천 억 원 가량 증액되어 반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이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발언에서 언급된 1조 8천 억 원 증액설의 근원지다.

    이 부분까지 사실로 확인된 이상 최근 언론에 회자되고 있는 새누리당의 “교육감님, 정부에서 보내준 누리과정 예산 어디에 쓰셨나요?”라는 현수막 문구가 설득력을 얻는 것으로 봐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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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2016년 지방교육재정 세입 및 세출 전망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세입구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60.1조 원에 달하는 지방교육재정 예산은 1조 8천 억 원의 교부금 증가액뿐만 아니라 약 3조 9천 억 원의 지방채 발행을 전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1조 8천 억 원의 증가분으로 누리과정 예산이 고스란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누리과정 예산 4조 원에 거의 맞먹는 3조 9천 억 원의 지방채를 발행해야 비로소 2016년 지방교육재정의 퍼즐이 완성된다는 얘기다. 지금의 그림대로라면 2016년 지방교육재정구조는 결론적으로 세출 대비 약 7% 정도의 적자예산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뒤집어서 보면 누리과정을 전액 중앙정부 예산으로 운용한다고 하더라도 시·도 교육청이 적자예산을 면하기 위해서는 작년 대비 1조 7천 억 원의 교부금이 증액되었어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쯤해서 다시 현수막 얘기로 돌아와 보자. 아까 언급한 빨간색 바탕의 새누리당 현수막에 적힌 질문보다는 노란색 바탕에 “대통령님 약속하신 누리과정 예산 안 줬다 전해라~”고 비꼰 정의당의 현수막이 더 설득력을 가지지 않는가?

    현수막

    이와 같은 지방채 발행은 작년의 6.1조 원 지방채 발행에 이어 2년 연속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시·도 교육청의 재정구조를 부실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시·도 교육청의 채무가 누리과정 3-5세 전면도입 전인 2012년 9.3조원, 2013년 10.0조, 2014년 11.4조 원이던 것이 2015년 17.1조 원까지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3-5세 누리과정 전면 도입과 작년과 올해 지방교육재정 운용을 위한 대규모 지방채 발행은 시·도 교육청 재무구조 악화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계속)

    필자소개
    서울여대 교수.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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