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기에 사람이 있었다
    [서평]『후쿠시마에 산다』(신문아카하타/ 나름북스)
        2016년 02월 14일 12:31 오후

    Print Friendly

    기억으로서의 역사는 망각과 투쟁한다.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살아남지 못한다면, 비극과 참사는 다른 이들에게 그저 의미 없는 통계상의 수치로서만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사람들이 있었고,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가에 대한 생생한 증언들은 일단 기록으로 전해질 수 있다면, 사건을 겪지 않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후쿠시마에 산다 –원전제로를 향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증언의 모음집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피난 생활 중인 후쿠시마현 주민들은 현재 국가와 도쿄 전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으며, 이 책은 주민들이 상실한 삶에 대한 회고만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고통과 피해, 피해보상법 제정과 일본의 탈핵을 향한 다양한 노력들을 아우르고 있다.

    후쿠시마에 산다

    재난은 스펙터클이 아니다. 중요한 건 재난의 한 가운데, ‘거기에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후쿠시마에 산다」는 그 점을 놓치지 않는다. 이 르포르타주는 평생의 일터와 생업, 집을 잃은 후쿠시마현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뉴스나 신문 상에 오르내리는 기사거리로서 소비되던 원전 재난의 현실을 낱낱이 들추어냄으로서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불러올 수 있는 가공할 만한 결과와 그로 인해 초래되는 고통이 어떠한 것인가를 실감케 한다.

    기존의 원전이 수명이 다해 안전성이 불투명한 가운데 신규 원전이 추가로 건설 중이고, 납품비리가 끊이지 않는 등 원전 사고의 잠재적 위협을 안고 있는 한국에 있어 「후쿠시마에 산다」에 담긴 후쿠시마현 주민들의 상황은 언제든지 우리의 일이 될 수 있는 ‘오래된 미래’에 다름 아닐 것이다.

    “100년 후, 200년 후를 살아갈 세대를 위해 여생을 바쳐 투쟁하려 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부흥이 이뤄지는 날까지 말입니다”(하야카와 토쿠오),

    ”아이들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승리하고 싶다“(우지이에 마사요시),

    “이곳에는 일족의 세대를 뛰어넘은 노력과 토지에 대한 애착이 스며 있습니다. 선조와 자손들을 대신해 정부와 도쿄전력에 책임을 물을 거에요.”(스즈키 요코)“,

    “오직 국민들만 책임질 것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산과 강에 넘치는 자연의 은총을 양식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에 대한 배상은 아예 이야기조차 논하지 않고요.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에게 자신이 벌여놓은 일을 책임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완전한 원상회복이 필수에요”(스즈키 다쓰오)

    「후쿠시마에 산다」의 감동적이고도 아름다운 대목들은 피해자로서 지금의 고통을 감내해내면서도 무너진 고향에 대한 애착, 미래 세대의 사회와 사람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결들로부터 나온다. 이 목소리들은 일차원적인 증언을 넘어서 그 이상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시사한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비인격적 권력으로서의 기업,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당대만이 아니라 전 국민과 미래 세대를 염려하는 공동체 의식, 지역사회에 뿌리박은 강고한 소속감과 주민 간의 연대의식, 환경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생태주의적 감수성, 인본주의적 사유가 바탕이 되어야 함을, 후쿠시마현 주민들은 몸소 감내하고 실천함으로써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진보란 경제의 부흥이나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보다 인간적인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작은 사람들의 한 걸음으로부터 나온다. 지금 후쿠시마현 주민들은 역사의 최전선에 서서 원전이 불러올 또 다른 절멸과 싸우고 있다. 지역(local)을 넘어 국제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주민들을 응원하며, 그 분들의 바람대로 미래 세대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원전 제로’의 안전한 세상이 머잖아 오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

    필자소개
    영화평론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