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을 위한,
    미래의 ‘좋은’ 일자리
    [학교야, 뭐하니?] 어떤 훈화
        2016년 02월 12일 10: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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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칼럼, 정현주 선생님의 ‘학교야 뭐하니?’를 시작한다. 정현주 선생님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23년간 국어 교사로 일했다. 국어 교과 모임에서 활동하며 동료교사들과 함께 <국어과 수업 사례집>을 펴내기도 했다. 재직 당시부터 지금까지 학생들과 소통을 위한 연구모임, 독서 모임을 계속해 왔다. 현재는 마을과 대안학교에서 청소년들과 책을 통해 만나는 다양한 모임을 하는 한편, 교육 관련 인터뷰와 칼럼을 쓰고 있다. 조금 지난 글이지만 이 글을 시작으로 한국의 교육 문제를 고민하는 글을 레디앙에 지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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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간 200만원이 조금 못되던 대학 등록금이, 10년 만에 천만 원 남짓까지 치솟은 2010년 봄, 고3 수업을 맡았다. 그리고 참 많이 고민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 중, 이미 상당한 좌절감에 빠져 있는 다수가 앞으로 가게 될 길이 어디인지 궁금했다.

    물가상승률을 훨씬 웃도는 대학 등록금 인상에도, 졸업생들이 전하는 대학 교육의 질은 별로 좋아진 것 같지 않았다.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이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제일 비싸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2008년,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했다. 대학들은 기업의 기부금을 받아 노골적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상아탑이란 말을 입에 담는 것이 바보스럽게 느껴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고민하는 것을 그냥 담고 있지 못하는 나의 가벼움 때문에, 학생들과 가끔 이런 얘기를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 낮은 교육의 질, 졸업 후 불투명한 미래… 우리는 대학을 보이콧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한 번은 동료 교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고등학교 교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 학생들이 졸업 후 종사하게 될 직업의 분포에 대해 연구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무작정 대학에 보내는 게 아니라.” 그때 그 동료가 해맑은 표정으로 던진 무심한 한 마디는 두고두고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우리가 그런 것까지 해야 해?” 인문계 고등학교 선생의 할 일은 그냥 열심히 가르쳐서 최대한 좋은 대학에 입학시켜 주는 것이란 뜻이었다.

    그때 어느 시민단체에서 기획한 ‘행복한 진로 학교’라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 대학 진학률 79%, 재수생까지 포함하면 거의 모든 고졸자가 대학을 가는 시대. 그러나 취업의 문은 좁았고, 석박사들이 환경미화원 시험에 응시하는 현실이 그래프와 통계자료로 제시됐다. 해답을 찾을 것 같았다.

    그런데, 몇 차례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다시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주최 측에서 자꾸만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거슬렸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생겨난 전문직들의 전망이 제시됐다.

    임대아파트 단지 속에 자리 잡은 우리 학교 학생들의 가정 형편은 좋지 않다.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 가운데 절반 정도에게는 그런 새로운 전문직에 대한 전망은 달나라 얘기일 뿐이다.

    꽤 오래 전 전국 도덕교사 모임에서 만들었던 소책자에, 인류 최후의 날에 대한 토론 수업 자료가 있었다. 인류 최후의 날, 지구를 탈출해야 하는 순간 최후의 생존자 가운데 누가 우주선을 타고 탈출해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이었다. 생존자는 12명, 우주선에 탑승할 수 있는 사람은 7명이었다. 생존자 12명의 신상을 제시하고 학생들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우주선에 탈 7명을 골라본 뒤 그 이유를 토론하게 된다. 나는 이 주제로 꽤 여러 차례 학생들과 수업을 했었다. 그때마다 많은 학생들이 빼놓지 않고 택한 직업인은 외교관이나 대학교수가 아닌 농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직업이란 소질과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인류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노동을 담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6%밖에 되지 않는다. 이 26%를 지켜온 사람들은 국민의 5.9%, 300만도 못 되는 농민들이다. 농산물 개방과 기후 악화 등으로 그 농민들마저 없어진다면,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파국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있다.

    농업뿐만이 아니라, 대중교통 운전자들, 배송업체 종사자들, 생산직 노동자들, 엔지니어들, 수리공, 배관공, 도시의 수많은 자영업과 서비스직 종사자들 없이 우리 삶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 직업들은 앞으로 우리 학생들 중 다수가 이어받아 담당해야 할 일들이기도 하다.

    공부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예전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의 첫 훈화를 잊을 수가 없다. 그분은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 할래?”, “5분 더 공부하면 네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와 같이 비교육적 급훈으로 지탄받았던 문구들을 진지하게 인용하며, 공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때 정말 부끄러웠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사회가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그런 인식에서 한 뼘도 더 자라지 못했다. 얼마 전 문구를 사러 갔다가 진열대에 놓여 있는 공책을 보고 나는 정말 울 뻔했다. 그 교장 선생님이 인용했던 문구가 새겨진 공책들이 차곡차곡 진열대에 쌓여 있었다.

    과연 우리 아이들을 위한 미래의 ‘좋은 일자리’를 찾아내고, 남보다 앞서 새롭게 등장해 각광받을 전문직을 찾아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것, 이게 선생과 부모의 일일까? 자꾸만 우리는 왜 우리의 광장, 우리의 대로에 놓인 오물들과 장애물들을 치우고, 좋은 길을 닦을 생각은 안하고, 우리 아이들을 샛길로 빼돌릴 생각만 하는 것일까?

    지금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직업들이 있다면, 그 직업들을 ‘좋은 일자리’로 바꾸어 주는 것, 이것이 우리 아이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사랑이어야 한다. 그렇게 못한다면, 그럴 수 있는 길을 함께 열어 보거나 그 길을 찾는 지도라도 제시해야 한다. 부모 입장에선 자기 아이가 안타까워서 하기 어려운 일, 교사라면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교육의 공공성 회복 없이 이 길이 열릴 리도 없다.

    * 2015년 2월 9일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등 4개 인권단체가 9일 위 공책을 판매한 업체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에 진정을 넣었고, 이에 해당 업체는 “오해를 불러 일으켜 죄송하다”며 “해당 공책들의 판매를 즉각 중단하겠다”고 밝혀 현재는 판매 중지되었다. 그러나 이런 공책이 생산되고, 별 문제의식 없이 학생들이 선호하며 소비했던 과정은 우리 사회의 의식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필자소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23년간 국어교사로 일했다. 현재는 마을과 대안학교에서 청소년들과 책을 통해 만나는 다양한 모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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