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문제에 대한 삐딱한 시선
    [에정칼럼] 한국인 1인 자원소비 방글라데시 25배
        2016년 02월 12일 09: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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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전세계적으로도 인구는 늘고 있다. 1960년에 25억 명 수준이던 인구는 2015년 73억 명으로 늘어났다. 늘어난 인구만큼 지구가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도 사실이다. 1970년 언저리까지만 해도 지구의 생태적 수용력보다 낮았던 생태발자국(사람이 사는 동안 자연에 남긴 영향을 토지의 면적으로 환산한 수치)이 지금은 50% 가까이 넘어선 상황이다. 인류가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구 반 개 이상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1인당 생태발자국은 1961년 2.46ha에서 2010년 2.63ha로 늘어난 반면, 1인당 생태수용력은 3.19에서 1.74로 떨어졌다. 굳이 구체적인 수치를 들이밀지 않아도 우리가 체감하는 환경파괴란 더욱 극적이다. 하늘은 스모그로 가득하고, 주위에서는 나무보다 건물을 찾는 게 더 빠르다. 물은 이제 정수된 것이 아니면 먹지 않으며, 극한의 추위와 폭염 등 경험하지 못했던 기상이변이 일상기후처럼 속출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라는 말은 이제 도서관에서나 찾아봐야 할 정도다. 더 우울한 건 이 추세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쯤 되니 인간이 자연파괴의 주범이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만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인구를 줄여야만 지구가 살아날 것이란 극단적인 얘기까지 나온다. ‘인구쇼크’라는 책으로 유명한 앨런 와이즈먼은 인구과잉으로 인해 식량생산이 늘어났기 때문에 환경이 파괴됐다고 전제하고, 인구를 15~20억 명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 제임스 러브록은 한 술 더 떠 5억 명을 적정 인구수로 제시하고 있다. 지구를 위해선 68억 명이 사라져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인구문제에 기반을 둔근본적인 생태주의 시각에는 함정이 있다. 인류가 자연을 파괴하는 주범이라는 건 확실해보이지만, 더 중요한 건 누가, 얼마나 환경파괴를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냥 무턱대고 저 가난한 아프리카 어느 국가의 한 마을에서 다 떨어진 빗을 들고 머리를 빗고 있는 흑인 소녀에게 “니가 환경파괴의 주범이야.”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생태발자국으로 돌아가 보자. 생태발자국은 인간의 의식주, 에너지 사용, 물품 생산과 폐기 등 생활 전반에 소요되는 환경 부하를 다루고 있어 우리의 생활양식이 지구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생태발자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세계 생태발자국 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생태발자국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초기 식량생산을 위한 경작지 조성 등이 문제가 되긴 했어도 어디까지나 지구의 생태적 수용성 이내에 머물렀다. 정말로 문제가 된 것은 전세계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산업화를 시작한 1960년대 이후의 탄소배출, 즉 에너지 사용이었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경작지나 목초지 조성 등 식량생산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부문은 부하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현재는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부하가 50%를 상회하고 있다. 인류를 먹여 살리기 위해 지구가 파괴되고 있다는 인구문제 왜곡의 첫 번째 신화가 깨진다. 물론, ‘인구가 늘어나니까 에너지 사용량도 당연히 늘지 않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산술적으로 보면 그게 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술한 것보다 더 큰 함정이 있다.

    출처 : Global Footprint Network

    생태적 수용성과 부문별 생태발자국의 변화. 출처 : Global Footprint Network

    2012년까지의 5년간 주요국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면 미국인 한 명이 6,815kg을 배출했고, 호주가 5,644kg, 한국이 5,268kg, 독일 5,268kg, 독일이 3,886kg, 일본이 3,546kg 등이다. 세계 평균이 1,898kg에 비해 1.5~3.6배 정도 많이 배출하고 있다. 반면에 인구 대국인 중국은 세계 평균과 비슷한 1인당 2,143kg 배출에 그치고 있고, 곧 중국 인구를 초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도는 624kg, 또 다른 인구대국인 방글라데시는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214kg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인 한 명이 배출하는 양의 3%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방글라데시에서 30명이 태어나더라도 지구로서는 미국에서 태어난 1명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앞뒤 상황 보지 않고 단순히 인구수가 문제라고 얘기하는 건 지나치게 편협한 생각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방글라데시인 25명과 맞먹는 양의 에너지를 혼자 소비하고 있다. 한국인 1명이 쓰고 있는 지구자원 정도면 방글라데시에선 마을 하나가 쓸 수 있는 양이다.

     자료 : World Bank Database

    주요국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변화 추이(단위 : kgOE/person). 자료 : World Bank Database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비의 책임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에너지소비를 중심으로 생태발자국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반면, 개발도상국들의 생태발자국은 수년간 크게 달라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생태적 수용성은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낮아지고 있지만, 개도국의 생태수용성이 훨씬 빠르게 훼손되고 있다.

    선진국의 생태발자국은 증가하고 개도국의 생태발자국은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개도국의 생태 수용성이 더 거칠게 낮아진다는 것은 지구자원의 대부분의 이익을 선진국이 가져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개도국 인구문제와 직결되는 식량생산부문의 생태발자국은 줄어들고 있다. 전지구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편취하는 시스템은 식민지시대 이후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조건에서 개발도상국들의 인구 증가를 운운하는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에 불과하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기후변화협상에 반대하며 “미국인의 생활양식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은 아주 소소한 예일 뿐이다.

    중남

    중남미지역 1인당 생태발자국과 생태수용도 변화

    중남미

    북미지역 1인당 생태발자국과 생태수용도 변화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사회악의 원인이 인구과잉에 있다고 보고, 성욕의 억제로 인구 억제를 달성하자고 주장했다. 산아제한이 필요하다는 최근의 주장은 맬서스주의의 변형에 불과하다. 지구 부정의의 원인은 시스템에 있는데, 이것을 풀려는 태도가 무슨 금욕주의와 같은 개인 문제로 풀라는 건 문제의 원인보다 더 부정의하다. 폭발적인 인구증가도 문제지만, 그걸 지적하기 전에 자신의 생활양식 부터 돌아보는 게 우선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시민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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