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의 기술
[박노자] 북한이 극우? 이스라엘은?
    2016년 02월 04일 10: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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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서방에서 북조선에 대한 가장 유명한 해석가 중의 한 명으로 국내의 동서대 교수이기도 한 브라이언 마요즈씨라는 분이 통합니다.

제 학생들도 가끔 과제물 작성 시에 그의 책들, 가령 <최순의 인종: 북조선인들의 자아관과 그 자아관이 왜 중요한가?> (링크)를 인용하곤 하는데, 저는 그럴 때마다 곤경에 빠집니다.

일단 명색이 “교수” 분인지라 그의 저서를 인용하는 학습자들을 탓할 수도 없지만, 그 저서의 내용은, 그의 성향 따위를 떠나 하도 역사의 사실들의 균형적 기술과 무관해서 그걸 인용하다보면 미로에 빠져 버릴 수 있어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일각의 “뉴라이트”와 상통되기도 하는 마요즈씨의 “학설”의 핵심은, 북한이 나름 변모를 겪은 좌파 정권이 아닌, 사실 극우정권이며 일제 말기 파시즘의 계승자, 즉 “파시스트 정권”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주체사상도 단순히 “잡다한 궤변”이며, 북조선의 진짜 이데올로기는 조선을 본위로 하는 인종주의이며, 북조선의 반미 선전도 사실 백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혐오감을 바탕으로 삼는 일종의 “헤이트 스피치”(증오 발언)라는 거죠.

중국 공산당과 쏘련 붉은 군대를 거친 김일성은 도대체 “백인 혐오”와 “인종주의”를 어디에서 배웠을까 라는 질문에는, 마요즈씨는 거침없이 한설야 등 일제 말기에 일어로 창작하는 등 약간이라도 타협적 성향을 보였다가 나중에 북조선에서 한 벼슬을 한 지식인들에게 돌을 던집니다. 그들이 일제 파시즘의 씨를 북조선에서 뿌렸다고 하면서요.

이런 이야기들이 구미권에서 “학술”로 통한다는 것 자체는 구미권 한국학도인 저로서는 좀 부끄럽기만 합니다. 해외 한국학의 학술적 엄격함이 조금 더 높았다면 이게 학술이 아닌, <제국의 위안부>와 같은 다소 아마추어적인 역사 수정주의적 시도로 분명하게 자리매김됐을 터인데 말씀입니다.

학술적으로 따져보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지금도 북조선의 이공계 전공자나 의사 등을 만나보면 대개 동구권 유학파 출신들이 많고 대부분은 (동독에서 배운) 독어나 러어를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데, 굳이 개인적 여행 경험이 없어도 대부분의 북한인들이 쏘련 영화들에 대한 애호나 쏘련 문학에 대한 풍부한 독서 경험을 가지고 있고, 특히 <강철이 어떻게 단련됐는가>나 <젊은 친위대>를 외우다시피 지금도 잘 기억하는데, 이게 무슨 “인종주의적 국가”인가요?

물론 중-쏘로부터 거리를 두고 일종의 등거리 외교를 취하려는 김일성이 “주체사상”이라는 좌파 민족주의적 사상으로 전환한 뒤로는, “무산계급 국제주의”보다 “애국”이 훨씬 더 강조된 것도 사실이고, 이런 탈식민적 좌파 민족주의는 안보 불안, 외세 개입에 대한 불안 등과 겹쳐가면서 엄청난 반인권적 무리를 범한 것도 동구권-북조선 관계의 자명한 사실이죠.

예컨대 동구권 출신들과의 국제결혼을 방해하고, 그런 결혼을 한 커플들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못살게 굴면서 이혼을 종용하는 등의 1960년대 중반의 행태는, 잘못하면 정말 “인종주의”로 비춰질 만도 했는데, 실은 무엇보다 동구권 국가 주북한 대사관들의 정보수집 능력을 떨어뜨리는 방도였습니다 (결혼해서 북조선에 정주한 동구권 국적자들은 해당 대사관들의 1등 정보원이었죠).

물론 국가의 이해를 위해 이렇게 개개인의 인권을 침범하는 것은 태심한 정치적 오류며 비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식민화와 전쟁 겪은 사회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쉽게 먹혀들겠어요? 또, 물론 “민족”이 “혈통”으로 규정되는 이상, 북한 민족주의에 인종론적 요소가 일단 있다고 보는 게 현실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북한만이 그런가 라는 부분과, 북한 이데올로기에 “혈통” 말고 아무것도 다른 대외관이 없는가, 라는 문제들은 분명 남아 있죠.

사실, 뉴라이트적 역사왜곡의 기술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그런 거죠:

1. 근현대의 일반적 문제들을 부정당해야 할 한 상대에게만 전체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덮어씌우는 것입니다. “혈통”이니 “순혈”이니 “단일민족”이니 등등의 인종론적 문구들을 남한, 일본의 보수파에게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마요즈씨는 북조선의 “인종주의”만 문제 삼습니다.

거참, 북조선의 “국제결혼 불가” 등의 문제를 전형화하는 그는, 그 참에 예컨대 이스라엘에서 아랍인/회회교 신도와 결혼했을 때에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는지 한번 봤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한데 “북조선 비판”과 달리 이스라엘 비판으로는 미국에서 아무래도 장사하기가 뭐할 것입니다.

2. 상대방에게는 그 어떤 긍정성도 부정합니다. 북한이 90년대 초반까지 짐바브웨부터 팔레스타인 해방운동까지, 온갖 제3세계 반제 운동 세력들을 다 지원해왔는데, 이런 국제주의적 실천, 나아가서 보편적인인 제3세계적 반제사상으로서의 주체사상의 면모 따위는 마요즈씨에게는 전혀 관심 대상은 안 됩니다.

3. 지극히 복잡한 문제를 시장에서 그 저서가 “딱 잘 팔” 만큼 단순화시킵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전후의 일본도 남한도 대만도 많은 면에서 일제 말기의 총동원 경험을 계승했죠. 이 경험은 어떻게 보면 동아시아적 전후의 “출발점”이 됐고, 그 부분은 많은 면에서 많이 불행한 거죠.

정말 일제 말기식의 “애국조회” 등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겠지만. 북한에도 있는 문제지만, 북한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또 북한의 정치, 문화적 현실을 “일제와의 계승성”만으로 절대 다 해석할 수 없죠. 1950년대 이후부터의 “비판”에 대한 강조는 과연 일제 말기식인가요? 그런데 북조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구미권 독자들에게는 “북한은 일제의 적자”와 같은 문구들은, 단순 명쾌(?)한 만큼 아마도 아주 머리에 잘 들어가 남을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마요즈식의 역사 수정주의라는 이름의 역사왜곡은 위험합니다. 아주 위험합니다. 인용했다가 가닥 못 잡은 몇 명의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고, 이렇게 북한 문제에 대해 오도했다가 미 제국이 정말 북조선에 대한 제노사이드(대학살)적 공격을 퍼붓는 경우 “인종주의적 국가인데, 뭐 좀 때려 부수면 어때”와 같은 식으로 반응할지도 모를 수십만 명의 구미권 “교양인 대중”의 문제입니다.

위험한 만큼 이런 가짜 학술에 대해서는 분명한 규명은 시급히 필요합니다. 학술의 목적이 전쟁의 방지, 그리고 국제평화의 수립에 있다면, 대화의 한 쪽을 “인종주의적 국가”로 낙인찍고 악마화하는, 그야말로 인종주의적인 유사 “학술”은 분명히 정확히 자리매김되어서 마땅한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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