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미로, 도시 뒷골목
    가락동 목도리 할머니는 지금?
    [책소개] ⟪그곳에 사람이 있다⟫( 최인기/ 나름북스)
        2016년 01월 30일 11: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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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식민 지배와 분단 그리고 30여 년간의 군부 독재와 산업화. 한국의 20세기 후반부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돌아볼 틈 없이 변해왔다. 서구에선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된 근대화와 산업화를 한국인들은 수십 년 만에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한국은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부러워하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됐다. 하지만, 100미터 달리기하듯 달려온 자본주의 산업화와 경제 성장 과정에서 상처 또한 컸다.

    농촌 공동체는 해체됐고,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농민들은 도시로 쏟아져 들어왔다. 밑천도 의탁할 곳도 없이, 맨몸뚱이로 도시에 뿌려진 사람들은 때론 버려진 땅에, 때론 개천가에 판잣집을 짓고 힘겨운 삶을 이어왔다.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도시가 형성됐으나, 경제가 성장해 도시가 개발될 때마다 이들은 다시 다른 곳으로 밀려났다. 이미 철 지난 이야기 같지만, 현재진행형인 곳도 있고 한국의 도시 곳곳엔 그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

    그곳에 사람이 있다

    과거와 공존하는 도시 속 현재 

    빈민 운동가 최인기가 쓴 《그곳에 사람이 있다》는 이런 역사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거침없이 진행됐지만, 과거의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이 주말이면 자가용을 타고 나가 대형 마트에서 쇼핑을 즐기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엔 전통 시장도 존재한다. 또 청계천 복원 공사가 끝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청계천 주변 황학동과 을지로엔 현재의 상인들이 과거의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에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과거를 지워내는 작업은 진행 중이다. 전통 시장을 ‘현대화’하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까지 덩달아 풍요로워지진 않았다.

    저자는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공간을 찾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 저자는 재개발로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철거 지역, 현대화 사업이 진행되는 전통 시장, 한때 잘나가던 부산의 점집촌, 산꼭대기 달동네 등을 누비며 사람들을 만난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늘 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담담하게 풀어낸다.

    저자가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만난 일명 ‘목도리 할머니’는 여전히 그곳에서 배추 경매가 끝나고 남은 시래기를 파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목도리 할머니’ 박부자 씨는 2008년 가락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목도리를 받는 장면이 방송에 나가 한때 유명세를 탔다. “개코나 하나도 바뀐 게 없어. 방송과 신문에도 나왔지만 변한 건 없고 오히려 살기만 더 팍팍해졌다”고 역정을 내는 박부자 씨를 통해 정권이 바뀐다 해서 쉬이 달라지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오래된 미로, 도시 뒷골목’
    사라져 가는 도시 뒷골목과 마을, 그립고 아름답기만 할까?

    ‘오래된 미로, 도시 뒷골목’이란 부제를 단 이 책에서 저자는 사라져 가는 도시 뒷골목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제는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불리는 부산 영선동의 골목길, 벽화 마을로 유명한 서울의 이화동과 창신동, 철거민의 저항이 담긴 안양의 덕천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 복고 열풍이 불며 오래된 골목길이나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달동네를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 정비나 개발 사업의 대상이 되어 온 골목이나 오래된 마을이 새롭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골목길이나 마을 만들기 등을 낭만화하는 경향에 대해선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저자는 다양한 도시 공간의 사례를 통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도심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개발이 가속되고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바깥으로 내몰리는 현상)’ 문제를 제기한다. 외지인들이 찾는 명소가 되면 개발이 진행되고, 이로 인해 주변 가치가 상승하면 월세 등이 오르며 원주민들이 살기 어렵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역과 그 안에 실제로 사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개발이나 발전이 오히려 사람을 내쫓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책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원주민의 삶과 배치되지 않는 개발과 마을 만들기 사업을 실험하고 있는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등의 사례도 다룬다.

    “삶의 현장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의 대안으로 공공토지임대제, 토지협동조합, 마을협약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마을을 만들자는 취지의 마을 만들기 사업이 자칫 자족적인 생활 공동체 형성에 머물거나 지역 거버넌스에 지나치게 기댄 관 주도 사업으로 진행될 여지 또한 분명히 있습니다. 이는 경계해야 할 문제입니다. 결국, 토지와 주택의 소유에 따른 불로소득이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전제할 때 올바른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곳에 사람이 있다》는 20년 넘게 빈민 운동을 해온 최인기의 세 번째 저작이다. 전작들이 빈민의 역사와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도시 빈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저작은 공간 문제와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삶에 좀 더 파고든다. 사진 에세이 형식의 이번 책은 공간을 매개로 그곳의 가난한 사람들, 그들이 이어가는 관계 그리고 기억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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