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성과 해고 판례, 극소수
    정부 지침이 '쉬운 해고' 양산 유도
        2016년 01월 26일 06: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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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양대 지침을 발표하면서 이른바 ‘쉬운 해고’로 규정되는 일반해고 지침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인력 운영과 관련한 법제도의 불확실성의 근거로 노동위원회에 해고 등 구제신청사건이 증가하고 있다며, 해고와 관련해 축적된 판례에 따라 정당한 해고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설명에도 저성과를 이유로 해고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인지, 저성과의 기준은 공정할 수 있는 것인지, 저성과자 해고가 도입되면 일자리는 정말 늘어나는 것인지 등의 논란은 여전하다.

    고용노동부의 일반해고 관련 ‘가이드북’은 “업무능력의 결여, 근무성적 부진 등은 업무명령 위반, 비위행위 등 별도의 징계사유가 없더라도 통상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면서 그 사유가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일 경우 저성과자가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22일 양대 지침 발표 기자회견에서도 “기업의 인사운영을 능력과 성과 중심으로 바꾸고 1년에 13천 건 이상의 해고를 둘러싼 갈등을 줄이기 위해 근로계약 관계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하자는 것”이라며 “대다수 성실한 근로자는 통상해고 대상이 될 수 없고, 이를 통해 기업들이 더 투자를 하게 하고 특히 우리 아들, 딸들을 위해 앞으로 직접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새로운 고용 문화를 형성하려는 목적”이라고도 했다.

    노동부 지침 발표

    고용노동부의 양대 지침 발표 모습

    ‘저성과자 해고 정당하다’는 판례…정말 있기는 있나?
    노동위원회, 15년간 저성과자 해고 인정 고작 11건

    고용부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남는다. 우선 이미 수차례 지적돼 온 저성과자 해고에 관한 기존 판례에 대한 문제다. 판례 해석에 왜곡이 많다는 지적이다. 저성과만을 이유로 해고를 정당하다고 보는 판례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25일자 이슈페이퍼에 따르면, 해고와 관련한 판례들은 대부분 징계해고를 중심으로 축적됐다. 이 판례들을 종합해보면 업무능력 결여, 근무성적 부진을 징계의 사유로 삼을 수 있지만 그 경우에도 실적 부진만을 이유로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징계해고가 인정된 판례의 경우에도 구체적으로 ‘저성과자’라는 이유만으로 징계해고의 정당성이 인정된 것이 아니라 이와 무관한 노동자의 비위행위가 존재하는 특수한 경우에 법원은 해고를 인정했다.

    노동위원회의 판정례를 봐도 정부가 일반해고 지침을 도입하기 위해 판례를 상당히 왜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노총이 24일자의 다른 이슈페이퍼에서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지난 15년간 노동위원회가 판정한 결과를 분석한 결과 정부가 ‘일반해고지침’에서 주장한 것과 상반된 결과가 나타났다.

    이 분석에 따르면 15년간 노동위원회가 판정한 해고 등 구제신청 사건 35,335건을 검토한 결과,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경영상 이유를 망라한 업무 저성과 해고 사건은 전체 사건 대비 4.7%로 전체 사건 중에서 매우 적은 비중을 차지했다. 정규직 저성과자에 한해 저성과자 해고를 정당하다고 본 경우도 15년간 11건에 불과했다.

    다른 징계사유가 없이 ‘업무 능력 부족’이나 ‘평가결과 최하위’ 등 저성과 문제만을 이유로 해고한 사건은 노동위원회에서 대부분 부당해고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업무능력 부진만을 이유로 해고(면직, 퇴직)처분을 한 경우 노동위원회는 대부분 부당해고로 판단했으며 11건의 사건에 대해서만 기각 처리했다. ‘저성과’만을 이유로 정규직을 해고한 것을 정당하다고 본 판정은 한 해 한 건도 안 되는 수치라는 것이다. 특히 2015년 한 해에 기각된 4건을 제외한다면 2001년부터 2014년까지 2년에 한 번 꼴로만 ‘저성과자 해고’ 구제신청을 기각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저성과가 명확한 해고사유가 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과 완전히 배치되는 대목이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단적으로 업무능력 결여나 근무성적 부진이 ‘해고사유’라고 밝힌 것과 달리, 업무능력이 부족하다는 것만으로는 해고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일부 해고사유로 인정된다 해도 근로계약관계를 단절할 정도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노동위원회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했다.

    특히 2001년부터 2014년까지 14년간은 두 해에 한 건 정도였다가 2015년 한 해에만 4건에 달한 점은 정부 정책에 따라 쉬운 해고 여부가 갈릴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부가 일반해고 지침 도입을 공식화한 2015년에는 업무저성과를 이유로 한 해고 등 구제신청 사건이 급증(2011년 114건 → 2015년 183건)했다. 민주노총은 2015년에 판정은 했으나 사건 처리가 완료되지 않은 사건까지 더할 경우 2015년 ‘저성과자’해고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과 그에 따른 혼란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해고

    쉬운 해고 반대 민주노총 집회 모습사진=노동자연대)

    객관적이고 공정한 ‘해고’는 가능할까

    정부는 일반해고 지침을 두고 ‘공정해고’라며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통해 저성과자를 가려내겠다는 입장이다.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대표 단체가 사용자와 함께 평가 기준을 마련해 공정 평가에 기여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기권 장관은 ‘성실한 노동자’라는 대상도 분명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단어를 꺼내어 ‘노동개악’에 의구심을 품는 여론을 달랬다.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이 없는 대부분의 현장에서 노사협의회나 근로자대표가 사실상 사용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유명무실한 기구라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노사협의회나 근로자대표와의 협의는 다분히 외형상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는 요식행위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며, 노사가 함께 저성과 평가 기준을 만들면 된다는 정부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노동계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미 인사 평가 등에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대표가 관여해 기업 운영에 비효율성을 초래한다며 인사권을 사용자의 고유 권한으로 지정한 바 있다. 공정해고에 적용되지 않는 ‘성실한 노동자’의 기준을 사용자가 독단적으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도 동의하는 공정한 해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민주노총은 “기준 자체가 사용자의 주관에 따른 것이고 그에 따른 평가도 사용자의 주관에 달려있을 수밖에 없기에 점수 부여의 적정성을 입증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사용자가 공정한 평가를 했는지 여부를 그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법원은 인사고과 평가는 사용자의 고유권한으로 광범위한 재량이 있다고 보고 있어, 사용자의 자의적인 평가에 대해 부당해고를 제기해도 노동자 개인이 그 부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전환배치, 노동자 능력개발일까? 해고의 연기 일까?

    정부는 해고의 안전장치 중 하나로 배치전환을 들었다. 근무하던 부서에서 성과가 낮으면 교육훈련을 통해 능력 개발의 기회를 가진 후, 적성에 맞는 다른 부서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해고 안전장치라고 제시한 배치전환이나 교육훈련은 사용자들이 기존에 노동자가 자진해서 회사를 나가게끔 하는 해고 유도장치로 악용돼왔다.

    민주노총은 “애초 사용자가 일정 인원의 구조조정, 특정 노동자의 해고를 의도한다면 이러한 배치전환이나 교육훈련은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며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재평가에서 다시 저성과자로 평가되는 것을 막을 수 없어 결국 해고의 연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최근 두산 희망퇴직 사태만 봐도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들에게 해고를 압박하고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는 폭력적 행태가 만연하고 자기소개서를 쓰게 하는 등 능력개발과는 전혀 무관한 교육훈련을 시켜 논란이 된 바 있다. 저성과를 이유로 한 ‘노동자 학대’가 ‘기회’로 둔갑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스스로 사직하게 하려고 생소한 업무를 부여하거나 무의미한 교육을 지속하거나, 몇 개월 단위로 전보시키면서 노동자를 괴롭혀 왔던 ‘학대 해고’를 합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객관적·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저성과를 명목으로 형식적인 교정 기회 제공만으로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하려는 것이 고용노동부가 마련하려는 지침의 실질”이라고 질타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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