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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미치광이, 루저, 찌질이 그러나 철학자》(저부제/ 시대의창)
        2016년 01월 23일 12: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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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을 공부해보고 싶지만 너무 어려워 이해할 수 없다.” 한 친구의 푸념을 듣고,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펜을 들었다.

    ‘철학은 이해하기 어려워’라는 뜻의 저부제哲不解라는 필명으로 쓰기 시작한 <12인의 철학자>는 중국의 도우반(www.douban.com, 주로 20대 대학생들이 책, 영화, 음악에 관한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교류하는 사이트)과 런런왕(www.renren.com, 중국판 ‘페이스북’) 게시판을 순식간에 뜨겁게 달구었고 그녀는 칭화대학교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이렇게 쓴 글들이 책으로 묶였고, 2016년 시대의창에서 《미치광이, 루저, 찌질이 그러나 철학자》로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은 철학에 관심 있지만 심오하고 난삽한 철학서들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한 이들을 위한 철학 에세이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철학자지만 그들의 책은 두껍거나 난해해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사람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철학자들과 그들의 철학을 알고 싶은 사람들, 좀 더 재미난 방법으로 즐겁게 철학을 알아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차례는 다소 주관적으로 저자의 선호에 따라 뽑혔으나 철학 하면 떠오를 철학자들을 한 편씩, 본편과 번외편으로 나누어 총 스물네 편에 소개한다. 각 사상이 철학사 전체에서 어떤 순서로 제기되어 발전되었는지 볼 수 있도록 ‘편년체’ 차례를 함께 실었다. 이 책은 철학자와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해줄 것이다. 물론 철학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철학책이다. 그런데 진짜 재미있다.

    미치광이

    미쳤거나 천재이거나, 괴짜이거나 찌질하거나, 혼자이거나 바람둥이거나

    철학 공부로 돈을 벌고 승진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많은 철학자가 철학을 하다 우울증을 앓았다. 루소는 철학을 하기 위해 자식 다섯 명을 모두 고아원에 보냈다(164~165쪽). 심지어 마르크스는 자식 일곱 중 넷이 어려서 죽었는데 모두 병원에 가보지도 못했고, 돈이 없어 장례조차 치러주지 못했다(40쪽).

    플라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볼테르, 칸트, 파스칼, 키르케고르, 스펜서, 니체, 쇼펜하우어 등은 독신주의를 고집하며 평생 외롭게 살았다(197쪽). 물론 애정주의자 러셀은 일생 네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했으며 애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188쪽). 사르트르와 동거한 보부아르는 ‘성욕 장애 환자’라는 비난을 달고 살았고(95쪽), 평생 작은 스캔들 하나 없이 가정에 충실했던 프로이트는 ‘저질’, ‘색마’, ‘카사노바’ 등 온갖 수식어로 비난받았다(109쪽).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아테네의 신을 부정했다”라는 이유로 사형을 당했고(243쪽), 베이컨은 어느 추운 날 밖에서 냉동법을 실험하다 몸져 누워 결국 세상을 떠났으며(233쪽), 스피노자는 “육체의 호흡이 정지되면 영혼도 함께 사라진다”고 했다가 유대 교회에서 보낸 킬러에게 암살당할 뻔했다(77쪽).

    이들을 이토록 미치게 한 철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저자는 “철학은 인류의 안식처이며, 인간의 존엄성은 바로 인간의 사상에서 나온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각종 상품을 생산해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 훗날 인간마저 도구와 상품의 노예로 전락하는, 인류의 몰락을 피하기 위해 철학은 지칠 줄 모르는 비판 정신으로 인류에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어느 날 유토피아처럼 인류 사회가 완벽해진다 해도 “철학자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찾고 비판할 것이다. 철학은 초월이다. 시대의 단점과 부족함을 초월하고 인류의 고통과 고독을 초월하며, 인간이 쉼 없는 열정으로 극한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도록 이끌어준다”(본문 7쪽).

    고독한 천재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한복판으로 걸어오다

    이 책은 서양철학자 26인과 견유학파를 다루고 있지만, 《논어》, 《홍루몽》 등 중국 고전이나 공자, 노자의 어록에 빗대어 설명하는 구절은 매우 인상적이다. 거침없는 상상력과 뛰어난 글재주를 녹여낸 볼테르의 공상과학소설 《미크로메가스》를 소개하는 부분이나,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로맨스 소설 《보보경심》, 우리나라에 ‘황제의 딸’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알려진 대만 소설가 충야요의 《환주격격》뿐만 아니라 최근의 인터넷 소설까지, 저자는 문학 작품을 인용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이 밖에도 <인셉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타이타닉>,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까지 SF에서 코미디에 이르는 영화 속에서도 철학의 줄기를 찾아내고 있다.

    또 저자는 중국의 현실도 돌아보는데,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실 벽에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한 베이컨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228쪽)고 한다. 또 고등학교 정치 교과서에는 멋대로 ‘꼬리표’를 붙여 철학자들을 정의했는데, 이는 단편적이고 폭력적인 만행(132~133쪽)이라고 비난한다. 요즘의 중국 아이들은 스펙 쌓기의 시작으로 영어 유치원에 들어가고(245쪽), 혼인 신고만 하는 경우, 결혼하고도 미혼인 척하는 경우 등 결혼 풍속도도 변하였다.

    이처럼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영화와 문학과 드라마 등을 오가면서, 적재적소에 놓인 인용과 비유, 비교 등 저자의 기지 넘치고 발랄한 글이 책장을 자꾸 넘기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책은 철학에 관한 책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현실로 돌아와도 머릿속에, 마음속에 여러 철학자들이 살아 숨 쉬며 활보할 것이다.

    “철학자들은 모두 세계를 해석하고 자신의 지식과 견해를 체계화시키려 하며 다른 철학자들을 배척한다. 철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모두 제각각이어서 칸트는 ‘스스로 존재하는 세계’, 헤겔은 ‘이성적인 세계’,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세계’,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세계’, 사르트르는 ‘황당한 세계’라고 했다. 플라톤은 세상을 ‘이상의 세계’로 바라보았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올 때 이런 기분이 든 적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 은막 속 인물과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 현실 세계의 빛과 소음에 순간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은막 속 세상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는 그런 기분 말이다.”(247~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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