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도짓 난무하니
    강도 허용하자는 얘기"
    파견노동자 "박근혜 파견법 반대"
        2016년 01월 18일 05: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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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여당의 노동4법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파견법 개정안에 대해 파견 노동자 당사자들이 직접 반대하고 나섰다. 여당은 파견법 개정안을 통해 뿌리산업 중소·중견기업 인력난 해소와 도급이나 용역 노동자를 파견 노동자로 끌어올릴 수 있는 ‘친노동 법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파견-도급-용역 노동자들의 처우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환기하면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논리라는 것이 노동계의 비판이다.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진후 정의당 원내대표 등은 1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대 노동법과 2대 지침 폐기를 촉구했다. 특히 이날 회견에는 파견 해고노동자, 재벌 대기업의 불법파견 당사자인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등이 참석해 파견노동자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정부의 파견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제조업 불법 파견 ‘무법지대’… 고용불안으로 노동자 권리 사라져
    파견노동자 “하루 전날 명단에 내 이름 없으면 해고된 것”

    파견노동이 밀집한 안산지역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지난 8월 중순 해고된 파견노동자 이영숙 씨는 증언을 통해 회사가 일주일 전에만 해고 통보를 해도 감사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파견노동자가 얼마나 하루하루 고용불안에 떨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신세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근로기준법은 해당사항이 없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싶다’, ‘4대 보험에 가입해달라’는 말 한마디 했다가 해고당한 동료들도 숱하게 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굳이 불법이라도 파견직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런 일’밖엔 없고 ‘그런 일’이라도 해서 생계를 이어가야 해서다.

    이 씨는 정부의 파견법 개정안에 대해 “강도짓이 난무하니까 강도 허용하자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며 “안산에서 파견노동자로 근무해보면 뿌리산업 전면 파견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제조업의 파견직은 현행법상 불법이지만 벼룩시장이나 가로수 같은 구인구직 신문을 보면 파견직이 아니면 취업할 곳이 없다”이라며 “때문에 청년이나 취업 취약계층이 파견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씨는 “불법적 파견직이 만연하다보니 안산은 무법지대”라며 “근로계약서 작성이나 4대보험 가입을 원하면 회사에서 나가라고 한다. 법조차 지켜지지 않으니 파견 노동자들의 처우는 말할 것도 없다”고 했다.

    파견노동자들은 불법, 합법과 관계없이 상시적 해고로 인한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사용자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진짜 사장’은 하청업체와 계약을 끊어버리는 것으로 언제든, 거리낄 것 없이 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 부당해고니, 해고수당이니 하는 책임에서도 자유롭다.

    이 씨는 “일주일 전에만 해고한다고 얘기 해줘도 감사할 정도”라며 “하루 전날 명단 보고 내 이름이 없으면 해고라고 생각해야 한다. 해고가 쉽다보니 당장 코앞의 생활이나 미래를 계획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굳이 파견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유는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씨는 “그것(파견직 임금)만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4대보험 가입 안하고 회사에 따지지 않는다”며 “취업 취약계층이나 청년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파견

    파견법 반대 기자회견(사진=유하라)

    뿌리산업 ‘안전’ 위해서라도 파견 허용 막아야

    홍종인 씨는 주물제조 등 뿌리산업에 종사하는 유성기업 노동자다. 뿌리산업은 고위험도 작업이라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이나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숙련된 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해야 한다는 것이 홍 씨의 말이다.

    실제로 2013년 8월 중순 경남 창원 진해구 소재 주물제조업체인 태영특수금속 용해작업장에서 쇳물(용탕)이 날리면서(비산) 작업장에 있던 4명이 화상을 입어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다.

    이에 앞서 2012년 10월에도 전북 정읍의 주물제조업체 캐스코에서 야간작업을 하던 2명의 20대 노동자들이 래들(용광로에 쇳물을 옮기는 기구)에 쇳물을 붓다 뒤집혀 1천2백도의 쇳물을 뒤집어쓴 채 사망했었다.

    홍 씨는 “뿌리산업은 고위험도 해당되는 작업 장소가 많다. 유성기업의 주물공장은 쇳물 온도가 2천도까지 올라가는 상황에서 작년에 냉각수 물이 터지면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며 “주물작업 할 때 고철 등 습기가 조금만 포함돼도 쇳물에 의해 폭발하는 사고가 다반수”라고 전했다.

    그는 “오히려 뿌리산업에 해당하는 부분을 정규직 확실히 해야 한다”면서 “일용직이든 기간제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고위험도 작업을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도금부서도 발암물질 1등급 크롬 등 위험물질에 노출돼 있어 질병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 부서다. 그럼에도 숙련되지 않은 파견자 도입하면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하청 납품 단가를 인상해 작업의 안정성 도모하고 뿌리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정부의 파견법 개정안에 반대했다.

    정부가 나서 대기업 불법파견 면죄부 주려하나
    장하나 “파견법 통과 운운 전에 현존한 불법파견이나 해결해라”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날로 222일째 살을 에는 추위에 맞서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전광판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사법부는 이미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 파견을 인정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했으나 회사는 요지부동이다.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종원 씨는 “법원의 정규직 전환 판결에 기초해서 정규직 전환된 사람 한 사람도 없다”며 “그런데도 소위 돈 있는 재벌 대기업은 어떤 처벌도 받고 있지 않다. 법을 지키라고 외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22째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정부의 파견법 개정안에 대해선 “법을 지키지 않는 재벌 대기업들을 처벌하지 않고 최후의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뿌리산업을 포함한 모든 제조업에 불법파견을 무한대로 확대하고 파견업종 확대하고 그 기간을 맘대로 주무르겠다는 정부의 노동개악”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절대 정부의 노동개악을 허락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영국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공동본부장도 “근로기준법 제4조에 따르면 노동력 제공에 있어 제3자가 개입해선 안 된다. 노동자를 인신매매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것이 헌법과 근로기준법의 정신”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대국민 담화에서 파견법을 촉구한 것에 대해 “어떻게 대통령이 나서서 인신매매를 활성화해달라고 할 수 있나”라고 질타했다.

    권 본부장은 “파견법 통과가 왜 강조되고 있나 했더니 재벌들의 사내하청 하도급에 대해 법원이 계속 불법파업 판정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며 “재벌들에 대한 면죄부 주기 위한, 이른바 정몽구 보호법을 통과시켜달라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장하나 더민주 의원은 중소기업 구인난을 핑계로 판견법 개정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중소기업이 구인난에 시달린다면 우리 정부가 파견 인력 구인할 수 있는 공공역할을 해야 한다”며 “안산 등 불법파견이 만연한 상황을 지금까지 방관해놓고 이제와서 파견법을 통과하자고 하니 많은 노동자들이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 의원은 “파견법 통과를 원한다면 우선 현재 불법파견 문제 먼저 다 해결하고 그 다음에 파견 허용 업종을 확대하든지 말든지 해야 한다”며 “전경련 민원처리는 그 다음”이라고 질타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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