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의 먹거리,
    그 결핍과 과잉의 진실
    [책소개] ⟪지구의 밥상⟫(구정은 외/ 글항아리)
        2016년 01월 17일 02: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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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더 넓어지는 식탁을 마주하며

    인간의 기본 3대 욕구는 수면욕과 식욕·성욕이고, 최소 생존 조건은 의衣·식食·주住다. 이 여섯 가지 조건 가운데 중복되는 항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식, 먹는 행위다.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기본 욕구는 식욕인 셈이다.

    먹는 행위는 생명이 있었던 무언가를 즉각적으로 섭취해 자신의 신체를 보전한다는 점에서 가장 원초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이 원초적 행동은 거대 자본의 물결에 휩쓸린 지 오래다. 이제 먹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섰다. 우리는 살면서 지나치게 많은 먹거리를 접한다. 먹거리는 정치·경제·사회 구조의 반영물이자 집합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해당 사회에서 무엇이 결핍되어 있으며 또 무엇이 과도하게 넘치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먹거리가 지표로 작용하는 것으로는 ‘엥겔 계수’가 있다. 한 가계의 총지출에서 식료품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로, 고소득 가계일수록 낮고 저소득 가계일수록 높다. 그렇다면 ‘지구의 밥상’은 어떨까? 엥겔 계수의 기준 단위를 한 가정에서 한 국가로 확대한다면 어떤 의미가 드러날 것인가?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의 식사 방식을 살펴보면 현재 세계에서 결핍되어 있는 것은 무엇이고 과한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지구의 밥상』은 경향신문 기획취재팀이 10개국을 탐사 취재하며 그 나라의 밥상을 들여다본 것이다. 이 책에는 남태평양의 낯선 섬 나우루와 라틴아메리카의 쿠바에서부터 미국, 프랑스, 영국뿐 아니라 우리와 가까운 중국과 일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라의 밥상이 모두 담겨 있다.

    70억 인구의 식탁은 점점 비슷해지는 듯하지만, 계급 간의 격차와 국가 간 격차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먹거리는 점점 더 상업화(자본주의화)될 것이다. 이에 맞서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움직임도 점차 세를 불려갈 것이다.

    먼 미래의 인류는 어떤 식탁에 앉게 될까? 자본의 결과물인 인스턴트식품으로 뒤덮인 식탁일까, 아니면 직접 기른 농산물로 이루어진 건강한 식탁일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그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지금부터 만들어 나갈 수는 있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포함한 전 세계인들에게 남겨진 목표이자 과제다.

    지구의 밥상

    정크푸드의 섬-나우루의 경우

    나우루는 총면적이 21제곱킬로미터이며 총인구는 9500명에 조금 못 미치는 작은 섬나라다. 19세기에서 20세기를 지나오면서 이곳은 독일과 호주, 일본의 통치를 받았다. 이렇게 다사다난한 현대사를 거치게 된 이유는 이곳에 매장되어 있는 엄청난 양의 인산염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인산염은 100년 가까이 계속된 채굴 끝에 고갈되었다. 이로 인해 나우루의 국가 경제는 붕괴되었고, 지금은 해외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나우루가 정크푸드의 섬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산 인스턴트식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전통 먹거리 시장은 몰락했다. 사방이 바다로 에워싸여 있으나 어업은 무너졌다. 이곳 사람들은 더 이상 고기를 잡지도, 채소를 키우지도 않는다. 국민 중 90퍼센트는 비만과 과체중에 시달리고 있으며, 성인의 대부분이 당뇨병을 앓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나우루의 현재 상황이 지구의 미래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초콜릿과 사탕으로 끼니를 때우며, 어른들은 눈을 뜨자마자 비스킷과 햄으로 식사를 한다. 나우루의 슈퍼마켓에는 통조림만 즐비하다. 가공하지 않은 야채와 과일도 팔고 있지만, 전부 외국에서 수입해온 것이다. 주민인 라나는 “예전엔 다들 고기를 잡았는데 지금은 고기를 잡을 줄도 몰라. 외국 물건이 들어오지 않으면 아마 우린 먹을 게 아무것도 없을 거야”라며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현실을 털어놓는다. 주민들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통해 삶을 지속하고 있다.

    ‘식품사막’의 한가운데서-미국의 경우

    미국 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식품사막은 “도시의 주거지역과 농촌 마을 중 신선하며 건강에 좋고 호감 가는 음식을 구하기 힘든 지역”을 일컫는다. 미국 볼티모어 시 식품정책국과 존스홉킨스대의 ‘살 만한 미래 연구소’는 볼티모어 인구 62만 명 가운데 4분의 1이 식품사막에 살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식품사막은 주로 흑인 거주지역과 겹친다. 아만다 부진스키 존스홉킨스대 연구원은 “식품사막은 미국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면서, “인종적으로는 흑인들이, 세대별로는 어린이와 노인 등 취약 계층이 식품사막에 더 많이 놓여 있다”고 밝혔다.

    그중에서 특히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식품사막의 영향은 치명적이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학교 급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볼티모어 시는 방학 동안 여름 급식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반경 3~4킬로미터 안에 스무 곳 가까이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굶주리는 아이의 수를 알려주는 일종의 지표다. 이 아이들은 무료 점심 배급에 나오는 스트링치즈 하나를 두고 주먹다짐을 벌인다.

    이런 식품사막에 미국은 텃밭으로 대항하고 있다. 대통령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는 백악관 앞마당에서 6년간 텃밭을 가꾸고 있으며, 이에 대한 책 『미국에서 기른American Grown』을 출간하기도 했다. 2014년 전국가드닝협회 집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세 가구 중 한 가구가 작물을 직접 길러 먹는다. 지금 미국은 식품사막에 종자를 심어 텃밭으로 변화시키는 중이다.

    백만 명이 ‘푸드 뱅크’를 이용하는 나라-영국의 경우

    영국 웨스트서식스의 이스트그린스테드는 백인 중산층 밀집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무료 급식소인 푸드 뱅크에서 2년 반 동안 2000명의 주민이 도움을 받을 정도로 빈곤 문제가 곪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원래 작은 창고에 자리를 잡았던 급식소는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주민센터로 옮겨갔다. 푸드 뱅크는 매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문을 열고 바우처를 가져온 주민들에게 사흘 치 긴급구호식품을 조달해준다. 여기에 들어가는 식품들은 교회나 학교, 슈퍼마켓이나 주민들이 기부한 것들이다. 쉽게 부패하지 않으며 오븐이 없는 이들도 조리할 수 있는 통조림 식품이 대부분이다.

    푸드 뱅크를 설립한 트루셀 트러스트에 따르면, 2014년 사흘 이상 푸드 뱅크를 이용했던 이들은 모두 110만 명이다. 이는 곧 푸드 뱅크가 없으면 당장 배를 곯는 사람이 100만 명이라는 소리다. 이 중 3분의 1 이상이 어린이다.

    영국의 빈부 격차는 마거릿 대처가 총리로 재임했던 1979년부터 심해졌으며, 2009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정점에 다다랐다. 옥스퍼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10년 사이 런던의 중산층은 43퍼센트가 줄어든 대신 빈곤층과 부유층은 각각 80퍼센트 늘었다고 한다.

    이런 양극화 현상의 형태를 시각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곳이 슈퍼마켓이다. 몇 년 전부터 영국에서는 저가형 슈퍼마켓과 고급형 슈퍼마켓이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종류의 슈퍼마켓에서 구비해놓는 상품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저가형 슈퍼마켓은 싸고 양 많은 ‘벌크 상품’을 대량으로 갖춘 대신 신선식품은 거의 없다. 반면 고급형 슈퍼마켓은 고가의 신선식품을 다양한 종류로 구비해두고 있었다. 고급형 슈퍼마켓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유기농 열풍은 음식의 질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지만, 사실상 유기농은 계급과 계층을 가르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 말았다.

    유기농의 유토피아-쿠바의 경우

    산업화된 유기농 시장의 돌파구는 의외로 쿠바에서 찾을 수 있다. 쿠바의 경제 상황은 좋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농민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는 대부분 유기농 작물이다. 쿠바에서 전체적으로 소비되는 식재료 가운데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30퍼센트다. 나머지 70~80퍼센트는 자체 생산되는 유기농 제품이다. 쿠바는 모든 식재료를 수입하는 나우루의 반대편에 서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 등의 유기농 열풍이 건강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과 달리, 쿠바의 유기농 정책은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겨났다. 쿠바는 1959년부터 30여 년간 소련의 원조를 받았다. 쿠바 경제에서 소련과의 교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85퍼센트나 되었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미국이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농업 시장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이때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이 바로 유기농과 협동농장이었다.

    탈냉전의 끝에서 시작된 쿠바의 유기농업은 ‘쿠바 모델’이라는, 먹거리 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쿠바 사람들은 “우리는 풍족하진 않지만 굶어 죽는 사람도 없다”며 자신 있게 말한다. 현재 쿠바에서는 배급제와 협동조합이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지방분권화와 탈산업화가 완벽하게 이뤄져 있는 농업 구조가 결합하여, 결론적으로 먹거리의 완벽한 자급을 이뤄낸 것이다.

    2015년 7월 1일,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노력 끝에 미국과 쿠바는 국교를 정상화했다. 자본주의 식품의 대표 국가인 미국, 그리고 유기농의 미래를 쥐고 있는 쿠바. 이 두 국가의 만남은 세계의 밥상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인가? 지금 세계는 쿠바의 행보를, 그리고 자급적 유기농업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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