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틈에 파고 든 자본,
그 틈에 버려진 사람들
[기고-1] SKT-CJ헬로비전 인수합병
    2016년 01월 15일 06: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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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원인이 과거에 있어 그 여파가 지금 여기를 뒤흔들 때, 우리는 진상 규명과 책임 소재, 그리고 해결 방안 등을 요구한다. 그러나 바로 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을 방지할 대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요구를 전달할 대상과 절차조차 분명하지 않다. 어렵게 다가올 미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 ‘지나친 우려’ 라거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 또는 ‘사후 규제로 해결하겠다’는 답변만이 돌아온다.

지금의 노동법 개악이 대표적인 사례다. 쉬운 해고요건, 회사가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취업규칙,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 연장, 파견업종의 확대 등이 가져올 문제를 우려하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그 답변은 섣부른 예단이라거나 ‘귀족노조의 이기주의’라는 딱지 뿐이다.

미디어 운동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종편 도입을 가능케 할 방송법 개정안이 나왔을 때를 돌아 보자. 보수신문의 방송 진출에 따른 여론 다양성의 훼손, 지상파 방송에 필적할 콘텐츠 제작 역량의 여부, 방송 광고 시장의 혼란 등 다양한 ‘우려’와 반대 의견이 쏟아졌다. 여기에 종편 승인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여론 다양성 지수, 미디어 다양성 위원회 도입 등의 사후 규제로 충분하다는 대응으로 맞섰다. 지금 그 결과가 어땠는가? 사후 규제의 효과는 누구도 느끼지 못하지만, 규제 공백과 특혜의 효과는 모두가 느끼고 있다.

최근 에스케이텔레콤(SKT)과 씨제이헬로비전(CJHV) 간의 인수합병(이하 SKT 인수합병)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와 관련 업종의 노동조합들이 ‘방송통신실천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닥쳐올 문제점과 요구안을 준비 중이다.

이 과정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실무진들을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들을 수 있던 답변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요구와 반대가 늘 부딪혀 온 그런 ‘벽’이었다.

아직 뚜렷한 심사 일정과 계획, 그리고 인수 및 합병허가의 최종 결정 시한을 정하지 않았다는 답변은 문제가 아니었다. 이용자들의 의견을 전달할 시민사회단체와 고용 및 노동조건을 우려하는 노동조합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관례적인 답변에 실망한 것도 아니었다. 더 큰 벽은 면담에 응한 두 기관의 실무진들조차 당연히 생각하는 분리의 간극이었다.

독립적인 전문 영역들, 그 사이

SKT 인수합병 관련 심사는 세 기관이 나누어 진행한다. 높은 시장 점유율이 예상되는 기업의 인수합병이 시장 경쟁을 저해하는지의 여부를 공정거래위원회가, 통신과 방송에 관련된 인수 및 합병의 적정성은 미래창조과학부가 담당한다. 별도의 자체 검토를 거치는 방통위는 미래부의 심사 결과에 대해 ‘동의’를 해야 하는데, 이 동의의 범위는 방송의 공정성과 지역성 등에 맞추어진 일부 항목에 국한된다.

이렇게 분리된 심사는 각 기관들이 각자의 전문 영역을 담당하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므로 어느 한 기관의 일방적인 결정을 막을 수 있다는 합리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심사가 전문적으로 독립되어 수행되어도 현실에서의 효과는 총체적이다. 가격 인상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방송통신 서비스 가입자들의 편익을 저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비스의 공익성을 보장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현실은 그렇게 간단히 심사 분야별로 나뉠수 있는 조립품이 아니다. 설령 심사에서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해도 기업의 인수합병 하나가 갖는 사회적 의미와 효과에 대한 판단은 총체적이고 포괄적이어야 한다. 이미 벌어진 현실에 대한 평가도 분리되어 이뤄질 수 없는데,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측의 분리는 벌어질 문제의 책임을 기관끼리 서로 떠넘기는 핑계가 되고 만다.

그래서 심사 영역의 분리와 획정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심사의 대상이다. 시장 경쟁, 사업자간 인수합병의 적합성, 공익성과 이용자 편익 등 어떤 영역으로 구분을 하건 영역과 영역 사이의 틈이 바로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이번 SKT 인수합병 심사 또한 마찬가지다. IPTV·통신 자본의 가입자 경쟁에서 희생될 노동자, VOD와 인터넷 플랫폼의 확장에 따라 더욱 약화될 지역 방송. 일방적인 유료 채널들의 편성과 복잡한 결합상품 약관을 그저 받기만 해야 하는 이용자. 이들이 바로 전문적인 검토를 거쳐 독립적으로 수행될 심사 영역의 ‘사이’에 존재하는 현실이다.

빈 틈을 파고드는 자본

전문성과 독립성으로 무장한 심사 기관들에게 미래에 대한 ‘우려’를 던지면 돌아오는 답변은 모두가 동일하다. “법이 정한 절차와 기준”이 그것이다. 공정위, 미래부, 방통위라는 현실의 기관들과 업무 영역은 법이 구분하고 그 한계를 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은 언어이기에 현실의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법은 언어로 현실의 기관과 범주를 만들고, 다시 그로부터 소외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구분짓는다. 그러나 이러한 법의 권위와 권력은 자신이 만들어 낸 빈 틈의 현실로 인해 흔들린다.

지금 심사를 앞둔 SKT 인수합병이 그 증거다. 방송법과 IPTV법의 빈 틈, 두 법이 어디에서도 정하지 못한 공백을 노리고 자본이 욕망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게다가 자본이 법이라는 언어의 권력을 비집고 들어온 이번 인수합병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통합방송법의 선례가 될 것이다. 이후 KT, LGU+와 같은 자본들이 또 다른 인수합병에 나설 때 적용될 ‘엄격한 심사 절차와 기준’은 바로 이렇게 법의 공백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똑같이 법이 정한 영역의 사이와 빈틈에 있는 노동자, 이용자, 시민들은 자본처럼 그것을 이용할 수 없다. 전문성을 내세우는 독립된 기관들을 뛰어 다니며 법이 정한 영역에 걸맞는 요구와 ‘우려’를 잘라내고 다듬어야 한다. 법이라는 언어가 정한 기관의 영역을 지키려는 관료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하여 이윤 창출에 나서는 자본 간의 협상만이 중요한 셈이다.

누가 빈 틈을 메울 것인가?

그러나 이들이 판을 벌이고 있는 법의 영역과 빈틈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지금의 미래부는 어떻게 탄생한 것인가. 방통위의 권한과 영역을 축소하고 미래부를 신설한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 선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그 선거의 결과를 만들어 낸 이들은 다름아닌 노동자, 소비자, 이용자, 바로 우리 시민들이었다. 법과 기관의 권한과 영역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바로 그 결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근래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미디어 이슈는 단연 종편채널의 출범이었다. 방송법 개정에서 사업자 승인 결정까지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반대와 개입의 요청이 있었다. 보수 신문사 소유의 종편 출범이 한국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담론을 좌우할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예정된 SKT의 인수합병은 담론의 수준이 아니라 담론을 좌우할 물적 토대에 대한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의 문제는 인수합병이 성사될 것인가 아닌가에 있지 않다. 미래를 좌우할 정부기관 심사 영역 사이의 틈, 법의 공백. 이 모두를 메울 사람들은 바로 노동자와 이용자들 밖에 없다는 것을 정부와 자본에 명확히 하는 것이다. 미래부, 방통위, 공정위 모두 이번 인수합병건에 대한 의견 수렴을 관례적인 서면 접수로 끝내서는 안될 것이다.

필자소개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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