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났다 해서?
[기고] 각고의 노력과 '사회적 공헌'
    2016년 01월 15일 01: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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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영입 인사 중 고졸 출신의 삼성전자 상무인 양향자씨가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기업집단에서, 그리고 학벌이 여전히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 임원으로 고졸 출신의 여성이 올랐다는 입지전적 스토리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그이의 분투와 노력, 한국 사회에서 고졸이 갖는 각종 차별의 장벽이 극복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과잉되고 있는 양향자 현상에 대해 임미리씨가 자신의 페북에 소감 글을 올렸다. 정치인으로 출발하는 양 상무가 과거 삶의 궤적이 아니라 정견과 이념과 정책으로 평가받기를 바란다는 취지이다. 본인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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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민주당에서 영입한 양향자씨가 구설에 오르고 있다. 나와 동갑이고 같은 해 삼성에 입사한 경우라 흥미가 갔다. 1985년 고3 말 전국의 상고 출신 다수가 삼성그룹 공채 시험을 봤고 그 중 200명 정도가 합격해 용인연수원에서 함께 연수받은 기억이 났다. 나는 삼성물산을 1년 다니다 대입 준비를 하려고 관뒀다. 일이 적은 씨티뱅크로 옮겨 임시직으로 7개월 일하고 그해 말 입시를 치른 뒤 88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상고 출신으로 대학을 가거나 “출세”를 하면 연민을 갖고 보는데 선입견에 불과하다. 대학을 몇 해 늦게 간다거나 대졸에 비해 낮은 직급에서 출발한다는 것 빼고는 삶이 생각처럼 그렇게 팍팍하지는 않다. 그룹연수 받을 때 공장에서 1주일, SS패션 매장에서 1주일 일했는데 여공이나 매장 직원들에 비해 엘리트 대접 받은 기억이 있다.

입지전적으로 보기도 하는데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일은 아니다. 서울여상의 경우 시중은행 지점장만 해도 여럿 되고 부지점장을 하고 있는 내 친구는 얼마 뒤 지점장을 할 것 같다. 삼성물산 출신 중에는 회사 업무를 아웃소싱 받는 조건으로 창업한 경우도 더러 있다. 상고 중에는 서울여상이 특별하게 많기는 하지만 양향자씨가 나온 광주여상도 지방 명문인 만큼 그이와 같은 경우가 드물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더 열악한 조건에서 더 크게 출세한 사람도 많다.

그렇다고 양향자씨의 경우가 일반적이라든지 각고의 노력이 없었을 거라는 건 아니다. 광주에서 온 여학생이 “선생님이 서울 애들한테 절대 지지 말라고 했다.”는 말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때는 뭐 저리 악착일까 싶었는데 살면서 호남 차별을 알고는 이해가 갔다.

고졸 차별에도 오해가 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여상 출신들이 차 심부름하고 허드렛일만 하지는 않는다. 나는 비료 수출업무를 했는데 텔렉스로 1미터가 넘는 몇백만불 짜리 영문 신용장를 읽고 선박서류를 작성해 은행 네고를 하고 로이드나 체이스맨하탄 같은 리네고뱅크를 들락거렸다. 그러나 고졸 차별은 업무에서가 아니라 직급이나 승진에 분명히 있었다.

씨티뱅크 다닐 때 학교 선배들이 많았다. 씨티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서울여상의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대학 보내주는 조건으로 데려갔다고 들었다. 씨티는 약속을 지켰고 그래서 은행 다니며 야간이 있는 성균관대나 외대를 나온 선배들이 파마넌트(정규직)로 있었다. 그런데 시중은행 다니다 온 한 선배가 컨트랙트(계약직)였다.

그 선배는 씨티가 당좌를 개설하면서 ‘스카웃’ 돼온 경우였는데 당좌 개설자 3,000명의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 등 인적 사항을 모두 외웠다. 전산이 요즘 같지 않은 때라 그 선배 한 명에 의지해 당좌계가 돌아갔다. 그런데도 그 선배가 계약직인 이유는 순전히 고졸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계약직이라 해도 지금과는 달랐고 월급이 시중은행보다 훨씬 많아 계약직이라 해도 스카웃이긴 했다.

양향자씨 이력을 보니 30대 후반에 디지털대학을 나와 성균관대에서 전자공학 석사를 한 것으로 나온다. 대학을 일찍 안 간 것으로 보아 업무에 그만큼 매진했을 것 같다. 그래서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임원이 된 것일 테고. 기사에 나오는 대로 여러 차별을 이기고 각고의 노력으로 출세한 경우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래서 어쨌다고? 그는 이제 출마를 앞둔 정치인이다. 정치인은 정책과 이념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이의 고단했던 삶과 그 결과로서의 출세가 그것을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그럴 거라고 믿는다면 그 또한 ‘출세주의’에 다름 아니다. ‘각고의 노력’에 ‘출세’가 아니라 ‘사회적 공헌’이 더해진 인물의 영입을 보고 싶다.

개천에서 용 났으면 박수를 보내면 그뿐이지 이미 대기업 상무라는 지위로 보답 받는 노력에 자리 하나 더 보태줄 이유는 없다. 그 자리가 국민의 정치적 견해를 대의하는 자리라면 더욱더 그렇다. 과거가 그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류의 인물을, 과거의 고단했던 이력을 정치인의 징표로 내세우는 이들을 너무 많이 봤다. 양향자씨가 국민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그런 정치인으로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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