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평등이 가장 큰 특징인 F1
    [왼쪽에서 본 F1]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자’
        2016년 01월 15일 09: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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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뜬금없지만 스타워즈의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스타워즈의 창시자인 조지 루카스가 F1의 열렬한 팬이란 사실이 널리 알려졌긴 합니다만, 일단 오늘 얘기는 그것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스타워즈의 얘기 가운데 이 칼럼에서 살짝 인용할 부분은 바로 ‘포스의 균형’에 대한 얘기입니다. 포스는 직역하자면 ‘힘’을 가리키고, 스타워즈의 세계관에서는 동양의 ‘기’와 비슷한 (그러나 같지는 않은)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스타워즈의 기본 설정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은 바로 이 포스의 양면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마치 동양 철학의 음양과 같이 포스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포스의 밝은 편은 선, 어두운 편은 악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스타워즈의 설정에서는 빛이 어둠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포스의 두 가지 면이 ‘균형’을 이루는 것을 궁극적인 결말로 예언한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자’를 찾거나 기다리는 것이 영화의 큰 흐름을 이끌어 갑니다.

    스타워즈에서 악을 상징하는 ‘다크 포스’는 제국이라는 거대한 권력이자 강자로 나타납니다. 클래식 시리즈에서 반란군은 영화마다 단편적인 승리를 거두기는 하지만, 전략적으로는 계속 열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최근 개봉한 에피소드 7에서도 저항군은 분명한 약자로 묘사됩니다. 가끔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헐리우드식 설정이라면 기적적으로 포스의 밝은 면 또는 빛이 어둠을 이기고 승리한다고 결론을 내릴 것 같은데, 적어도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설정은 승리보다는 ‘균형’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타워즈에서도 결국은 마찬가지지만, 권력, 강자, 이기는 편은 인기가 많습니다. 이기는 편을 응원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싸우지 않고 모든 것이 잘 풀린다면야 싸우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만약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지는 쪽보다는 이기는 쪽에 서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겁니다. 때로는 패배를 통해 여러 가지를 깨닫고 배우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번번이, 늘, 언제나 패배가 반복되는 상황을 반길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F1도 마찬가지입니다. F1이 출범한 직후부터 65년 동안 빠짐없이 경쟁에 참가하면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뒀던 최고의 인기팀 페라리는 단순한 F1 팀 이상의 인기를 누립니다. 모국인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지 최고의 인기를 누립니다. 전통의 강팀으로 꼽히는 맥라렌, 윌리암스 역시 많은 인기를 얻고 있고, 100년 전부터 최강의 전력을 과시했던 메르세데스 역시 최근 성적이 좋아 인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레드불의 경우를 보면 사람들의 팬심이 성적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지난 2010년 코리아 그랑프리가 처음 개최됐을 때 영암에서 한국인 레드불 팬을 찾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어려웠습니다. 그랑프리 주말 5일 동안 발견한 한국인 레드불 팬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심지어 레드불 팀의 상품을 파는 공식 상점의 위치를 물으면 대회 관계자들조차 레드불이 뭐냐고 물을 정도였으니 긴 얘기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2010시즌 레드불과 베텔이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직후인 2011시즌부터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전에 F1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우리나라에서는 첫 F1 그랑프리 개최 직후 챔피언에 오른 레드불의 인기가 급상승했고, 두 번째 그랑프리부터는 많은 한국인 팬들이 레드불의 옷을 입거나 응원 도구를 들고 영암을 찾았습니다. 이후 레드불이 4년 연속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자 레드불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한때 페라리의 팬보다도 많은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돌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약자, 소형 팀, 가난한 팀은 상대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지 못합니다. 팀 운영비를 마련하기도 벅찬 팀이 마케팅과 팬 모집에 많은 돈을 쓸 수 없고, 성적이 나오지 않으니 팬덤의 크기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강팀들이 우승을 나눠 갖는 사이, 중형 팀들은 포인트 피니시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고, 몇몇 소형 팀들은 단 1포인트를 얻기조차 어렵습니다. 성적과 인기 면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죠.

    F1에서 인기라는 애매한 지표는 생각보다 더 중요합니다. 여러 차례 강조했던 것처럼 F1은 극단적으로 자본주의적인, 자본주의의 (주로 좋지 않은) 특성이 가득한 스포츠입니다. 돈으로 승부하고 장사를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F1 팀에겐 팬은 곧 고객이고 돈이 나오는 물주가 됩니다. F1 팀이 팬에게 직접 물건을 파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팬의 숫자가 팀의 운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1960년대 말 처음으로 스폰서십 리버리, 즉 돈을 지원해주는 물주의 브랜드나 광고로 차의 겉모습을 꾸미기 시작 이후, 스폰서십은 F1 팀의 생명줄이 되었습니다. 사업을 하는 스폰서들의 지원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F1 팀의 존폐가 결정되기도 하죠. 스폰서는 당연히 팬이 많고 팬덤의 충성도가 높은 팀에 광고를 싣거나 브랜드를 노출하고 싶어 합니다. 팬들이 어느 팀을 지지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조금 비약해서 얘기하면 F1 팀의 생사를 건 인기투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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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년 최하위 팀 마루시아를 응원하기 위해 코리아 그랑프리를 찾은 F1 팬

    매정하기 그지없는 인기 경쟁과 그 뿌리가 되는 성적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F1에는 스타워즈의 대사처럼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균형이 무너진다는 것은 단지 인기가 일부 팀에 쏠린다거나, 몇몇 팀과 몇몇 회사만 기분이 좋다는 수준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모터스포츠의 특성상 일부 팀에게만 인기가 쏠리거나 한 두 팀만 성적이 좋다면, 전체적인 스포츠의 균형이 무너져버립니다. 그런 균형이 무너져 사라져버린 모터스포츠 대회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팀의 성적이 너무 좋지 않거나 이미지가 나빠져 상품성이 떨어진다면 스폰서가 떨어져 나갑니다. 한두 팀만 잘 나간다는 것은 다른 팀의 돈줄이 마른다는 의미죠. 그렇게 경쟁력 있는 몇몇 팀만 남기고 많은 팀이 스포츠에서 철수하는 상황은 생각보다 자주 나타납니다. F1 역시 비슷한 위기를 여러 차례 겪었습니다. 2014시즌 두 팀이 좌초했고, 2015시즌을 기준으로는 열 개 팀이 경쟁했지만, 시즌 내내 팀의 운영 자금 문제와 재정 위기가 물심양면으로 여러 팀을 괴롭혔습니다. 2013시즌 초만 해도 위닝 팀 중 하나였던 로터스가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시즌 내내 빚 독촉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다행인 점은 F1에서 포스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시스템을 준비하는 위에서의 노력도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 버팀목이 돼주는 것은 뜻밖에(!) 꾸준히 중하위권 팀을 지지하는 팬덤입니다.

    글 앞부분에 당연히 강팀을 응원하는 팬이 많다고 했지만, 중하위권 팀을 응원하는 팬들도 생각보다는 적지 않습니다. 쏠림 현상이 심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중하위권 팀의 팬을 찾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 실감이 잘 나지 않는 얘기긴 한데, 적어도 해외에서는 중하위권 팀의 팬이 우리나라보다는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팬의 수가 많지 않더라도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면 생존 가능성도 커집니다.

    따지고 보면 F1에는’이길 수 있는 팀’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규모 독립 팀과, 1년 예산이 대형 팀의 1/10에도 못 미치는 가난한 소형 팀이 많습니다. 중규모 독립 팀에게 레이스에서 우승은 언감생심이고 10위 안에 들어 포인트만 딸 수 있어도 크게 만족합니다. 가난한 소형 팀에겐 그나마 포인트조차도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습니다. 상위권 팀이 몇백 포인트를 가져가는 사이 단 1포인트를 얻지 못하고 문을 닫는 팀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 2014년 신생 소형 팀 중 하나였던 마루시아의 쥴스 비앙키가 팀 창단 후 다섯 시즌 만에 첫 포인트를 얻었을 때 사람들이 열광한 것도, 1포인트를 얻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대 F1의 화두는 이런 팀들을 어떻게 지켜줄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승리를 나눠 갖곤 하는 대형 팀들은 사실 중소형 팀의 안위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F1 전체를 이끄는 버니 에클스톤과 FOM도 비슷하죠. 불공정 계약으로 각 팀과 서로 조건이 다른 계약이 맺어져 있어, 중하위권 팀이 대형 팀을 넘어서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지난해에는 중규모 독립 팀을 대표하는 자우버와 포스인디아가 EU에 FOM의 불공정을 제소하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이 법정 싸움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름만 바꿔서 다시 쓰면 마치 현실 세계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경쟁과 관련된 분쟁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팬들의 지지 기반은 이런 문제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시장 전반의 눈치를 봐야 하는 스폰서는 물론 F1을 주관하는 FOM도 여론의 추이에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는 내심 잘 나가는 대형 팀들만 밀어주고 싶겠지만, 팬들의 반발이 자칫 시장을 자극하면 안 되니 생색내기로라도 균형을 맞추는 노력을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껏해야 취미고,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에 불과하다고 무시할 수 있는 분야지만, 은근 현실 정치의 모양과 꽤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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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규모 독립 팀 자우버를 응원하기 위해 코리아 그랑프리를 찾은 팬과 필자

    이처럼 불평등을 가장 큰 특징으로 삼는 F1에서도 ‘균형’은 중요합니다. 무슨 아름다운 사상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균형을 지켜야 합니다. 내버려두면 독과점이 심화되고, 권력을 쥔 사람들의 입맛대로 한다면 강자만 혜택을 보는 구조가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선 ‘승자독식’을 원하는 강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균형을 맞추는 데 동의하는 셈이죠.

    그런데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힘 있는 강자들은 자신들의 균형을 맞추는 데만 급급한 경우가 많습니다. 강자와 또 다른 강자, 1등과 2등의 균형은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약자와 꼴찌까지 균형을 맞추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똑같게 만들자는 것도 아니고, 약자가 죽지 않을 정도만 균형을 맞춰달라는 요구도 무시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으니, 결국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강력한 여론밖에는 없습니다. 팬은 그저 팬일 뿐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열정적으로 응원할 뿐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시장의 움직임’에 민감한 가진 자들에겐 상당한 압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현실 정치는 아마 F1보다 조금 사정이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힘이 충분히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팬덤보다는 조직적인 견제 세력이 존재하고, 견제를 위한 법적 제도가 준비돼 있습니다. ‘잘만 운용된다면’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여건은 잘 갖춰져 있습니다. F1 팀의 팬덤보다는 현실 정치에서 일반 시민의 정치 참여는 훨씬 더 강력하고 직접적인 힘을 갖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조직화하고 여러 색깔을 가진 ‘중소 규모’ 정당이나 조직, 결사를 만드는 것도 현실 세계에선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적어도 제도상으로는요.

    그러나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면, 분명히 달라야 하는 F1과 현실 세계의 상황이 어쩐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약자와 중소 규모의 세력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소수의 강자와 다수의 약자 사이에 균형을 찾는 것은 요원해 보입니다. 심지어는 균형을 부르짖는 사람들조차 두 번째로 강한 세력을 밀어줘서 가장 강한 세력을 견제해야 한다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압박하기도 합니다. 균형을 잡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주장을 당연하다는 듯 내뱉는 것이죠. 균형을 잡을만한 시스템과 제도 역시 조금 더 잘 갖춰진 것 같은데, 그 시스템과 제도가 실제로 균형을 잡는데 활용되지는 않습니다.

    F1에서 포스의 균형이 이뤄질 날이 곧 다가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제대로 된 균형을 가져오는 게 가능할지부터 의문입니다. 말 많은 스타워즈 시리즈가 아홉 번째 이야기를 다 마무리해서 ‘포스에 균형을 가져올 자’가 드러나고 맡은 바 임무를 달성할 즈음에도, F1에서 포스의 균형은 이뤄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대세’에 굴하지 않고 중소 규모의 독립 팀과 소형 팀을 지지하는 적지 않은 팬덤이 갖춰진 것에 희망을 가져야겠죠. ‘내가 이기는 것’이 중요했으면 애당초 악의 제국에 투항했을 테니, 조금만 더 고난을 버텨내면 ‘좋은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만년 중위권 팀이었던 자우버의 얘기를 하나 남겨볼까 합니다.

    2006년 자우버는 새로운 대형 팀으로 F1에 합류한 BMW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독립 팀의 색깔을 버리고 대형 팀으로 환생한 셈이었죠. BMW 자우버는 바로 강팀의 반열에 올랐고, 2008년에는 처음으로 우승도 차지했습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렵게 싸우는 독립 팀의 대표자에서, 이제는 대형 팀의 입장이 되어 영화를 누리는 시대가 온 것 같았죠.

    그러나 좋은 날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BMW는 미국발 경제 위기에 영향을 받아 갑작스럽게 F1에서 발을 뺐고, 덩치가 커질 대로 커진 자우버는 독립 팀으로 복귀했습니다. 그것도 가장 부실한 건강 상태를 가진 중규모 독립 팀이었죠. 이후 자우버가 겪은 고난은 이전 십수 년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최악의 것이었습니다.

    잠깐의 성공과 승리를 위해 쉽게 타협해 승리로 가는 빠른 길을 달리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꼭 진지하게 고민해볼 만한 얘기가 아닐까 합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기억한다면,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자를 찾거나 기다리는데 쉬운 답’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필자소개
    윤재수
    2010년부터 지금까지 MBC SPORTS, SBS SPORTS, JTBC3 FOXSPORTS에서 F1 해설위원으로 활동. 조금은 왼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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