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의 '적'과 '악마들'
    '북한의 악마화'에 반대하는 이유
        2016년 01월 12일 10: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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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주의 시대가 끝나고 개인주의 시대가 왔다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국가 내지 국가와 유착돼 있는 사회의 주류가 “적”으로 규정한 대상에 대해서 주류에 역류해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기란 지난한 일입니다. 늘 그래왔으며 오늘날도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꼭 개개인의 순응주의만도 아닙니다.

    내부적 문제와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는 나라들

    첫째 이유는, 대개 자본주의 국가가 문제가 적은 대상국들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거죠. 자본주의 세계 국가들이 “적”으로 호명하는 대상들을 보면, 다 자기 나름의 “문제”들을 물론 안고 있습니다.

    예컨대 20세기 “자유세계”의 악마화 대상 “1호”라고 할 쏘련을 보죠. 문제는 없었습니까? 천만의 말씀, 아주 많았죠. 러시아 제국의 판도를 계승한 나라인 만큼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복잡했으며, 그 관철 방법 중의 하나는 가끔가다 전혀 민주적이지도 않는 동구에 대한 군사적 통제였으며, “사회주의”를 표방해도 민주성이 결여되고, 보기 안 좋게 군사화돼 있고… 외부에서 누가 봐도 문제 투성이었고, 아프간 침공과 같은 군사적 액션을 취할 때마다 미국 중심의 그 세계적 악마화 켐페인에 힘이 보태지곤 했습니다.

    쏘련이 망국한 뒤로는 그 전과 같은 대대적이고 절대적인 세계적 악마화 운동은 종결됐지만, 그 대신에 “그때그때”의 상황적인 적의 악마화와 희화화가 뒤섞인 악마화, 그리고 이용과 악마화의 동시적 이중주 등 여러 가지 신형 악마화 운동들이 일어났습니다.

    첫째, 즉 상황적 악마화는 미 제국 침공의 대상이 될 나라의 지도자, 예컨대 이라크의 후세인에 해당됐습니다. 인젠 다 잊혔지만,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그는 히틀러와 자주 비교되곤 했습니다.

    둘째, 즉 희화화와 악마화의 병행은 북조선의 경우에 해당되죠. 김정일 위원장을 “난쟁이”라고 부른 부시의 망언을 기억하시죠? 그런 망언들이나, <인터뷰> 같은 영화들은 악마화의 이 형태를 잘 보여줍니다.

    셋째, 즉 이용과 악마화의 병존은, 예컨대 중국의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냥” 악마화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대상국이지만, 동시에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면서도 계속해서 “중국 위협론”을 들먹이고 있죠.

    그런데 이 모든 대상국들 – 이라크, 북조선, 중국 등등 – 을 봐도, 또 악마화에 이용될 만한 약점들은 당연히 다 있는 거죠. 인권문제나 민주성 부족부터 시작해서요. 그래서 이런 악마화에 자신을 “진보”라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동참해왔습니다.

    반대할 때 따르는 제한과 규제들

    둘째 이유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악마화 동참 거부에 따를 각종 “제재”들입니다. 우리 위대한 대한민국 같으면 그냥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아주 훤히 보입니다. 국보법도 엄존하지만, “종북”으로 찍히기만 하면 사실 사회적 발언권 박탈이 바로 뒤따르죠. “주사파”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라고는, 다양성 존중과 민주화운동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컨대 미국이나 유럽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별로 없습니다. 촘스키 선생이라고 해서 쏘련이나 이라크 악마화에 저항하셨나요? 레닌에 대해 “혁명을 악용한 독재자”라고 보고, “사담 후세인 없이 세상이 좋아졌다”고 본 사람이 바로 미국의 양심이라고 할 촘스키인데, 주류에 대한 촘스키라는 거인의 이런 편승, 굴복을 보면 악마화 운동의 “힘”을 실감합니다. 중국이 아닌 미국이야말로 동북아에서의 전쟁 위협을 높이는 행위자라고 한 번이라도 발언하면 그다음에 과연 <뉴욕타임즈>지 등 자유주의 매체에서의 발언권은 주어질 리가 있겠습니까?

    대중적 지식인이 아니고 특정 분야 전문가라면, 예컨대 브루스 커밍스선생처럼 북조선에 대해 객관적으로, 사실대로 이야기해도 안 될 게 없지만, 그런 경우에는 커밍스 선생의 경우와 같이 연구비 못 받을 것과 정규직 찾기가 매우 힘들 것부터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때는 말해야

    셋째 이유는, 아마도 특히 “진보”의 대중성에 대한 – 필연적인 – 집착일 것입니다. 악마화 대상국에 대해서 기본적 팩트를 알 리가 없는 대다수를 상대로 글 쓸 때에, 악마화를 거역하는 경우 독자의 반발을 각오해야 하니까요. 일반의 독자들에게 역사를 사실대로 아무도 가르치지 않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한국에서는 과연 북조선이 이미 1960년에 이르러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그리고 기본적 식량 자급자족을 이룩했다는 사실이나, 박정희가 공화당을 만들었을 때에 그가 은근히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북조선 노동당의 모델을 벤치마킹해서 사무국 중심의 당 구조를 잡았다는 사실 등을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요?

    아니면 서방의 독자들이라고 해서,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 사담 후세인” 하에서 이라크는 국민총생산의 6%를 교육에 지출하여 중동에서 가장 우수한 교육체제를 만들었다든가, 1990년에 97%의 이라크 도시민들이 무료 의료 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든가 등등의 사실을 과연 알까요? 우리들의 “공식적 적들”에 대한 대중적인 무지는 끔찍한 수준에 이르니 무지에 기반하는 “통념”들을 거스르기란 정말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런 용기는, 상당수 “진보” 논객에게도 없죠…

    그런데도, 우리가 정말 평화와 상생을 원한다면, 자본주의 국가들의 특정 대상국 악마화 정책을 반대해야 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반대해야 합니다. 어차피 그 특정 대상국과의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나면 진실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예컨대 쏘련이 냉전을 원하지 않으며 빨리 종식되기를 갈망했다는 사실이라든가, 민주성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그 공민들의 사회적 권리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지금도 강해 “쏘련 향수”가 지금도 러시아 등 그 일부 계승국들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지 않습니까? 즉 쏘련 같으면 “문제 많은 대상”임에도 분명 “악마”가 아니었다는 거죠.

    미국이 불법 침략해서 망가뜨린 바트당/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도 문제 많은 사회이었지만, 지금 영구적 전쟁터가 된 침공 이후의 이라크에서는 사담 후세인 시대를 많은 이들이 “황금기”로 기억하기도 합니다. 역시 그 만큼 사회적 권리 확립이나 현대 아랍 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거죠.

    만약에 “진보” 논자들이 쏘련이나 바트당/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아직 존재했을 때에 이 두 공식적 악마화 대상국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군비로 낭비되어버린 엄청난 돈을 보다 좋은 목적을 위해 쓰고, 이라크의 경우 엄청난 살육을 피할 가능성이 조금 더 크지 않았을까요?

    저는 바로 위와 같은 역사의 교훈을 참고하여 북조선에 대한 악마화를 결연히 반대합니다. 이런 악마화의 마술에 우리가 덜 걸리면 덜 걸릴수록 군비로 버려질 돈들이 더 적을 것이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전장화의 위험도가 낮아질 것입니다.

    일부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북조선은 “일제시대의 제도를 사실상 계승한” 전체주의적 “암흑”과 거리가 멉니다. 물론 남한과 마찬가지로 일제 유제들의 영향도 안 받은 게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북조선은 그냥 일종의 “적색 개발주의” 노선을 따라온 하나의 좌파적인 조합주의 (corporatism) 국가일 뿐입니다. 지금은, 즉 2000년대의 개혁 이후에는 사실상 이미 혼합경제 체제로 돌입했지만 말이죠.

    북조선이 지옥도 천국도 아니고, 많은 장점들과 함께 상당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보통의 사회일 뿐이죠. 그리고 북핵 문제를 북조선의 탓으로만 돌리는 게 그야말로 아전인수죠. 1990년대 초, 북조선이 쏘련의 핵우산을 상실했을 때에 미국과 일본이 대북 수교를 했다면 북핵 문제 자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북조선은 당연히 문제 많은 타자입니다. 문제 많은 만큼 악마화도 쉽죠. 그런데도 그 악마화에 끝까지 반대하는 게 진보의 임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필자소개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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