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만드는 건,
한국 정치를 바꾸는 것
[인터뷰-2] 나경채 정의당 공동대표
    2016년 01월 11일 01:19 오후

Print Friendly

나경채 인터뷰-1 링크

한민호(이하 한): 이제부터는 자연인 나경채의 운동 스토리를 물어보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청소년 운동을 처음 시작했다고 들었다. 청소년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뭔가?

나경채(이하 나):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 ‘광주지역 고등학생 대표자협의회’(이하 광고협)라는 조직이 있었다. 주로 89년도에 전교조 교사들이 대량 해직된 사태를 보고 부당하다고 느낀 고등학생들이 만든 단체다. 또한 이 단체는 입시 중심의 교육과 과도한 체벌, 두발규제와 같은 신체적 자유를 억압했던 분위기 속에서 이것에 반대하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런 것을 추구하는 단체 중 하나였던 ‘참사랑배움터’라는 단체에 회원으로 활동을 했다.

한: ‘참사랑배움터’는 지금도 있는 단체인가?

나: 내가 광주를 떠난 지 좀 됐는데 아마 지금은 없어진 것 같다. 거기에서 노래반, 독서토론반, 역사기행반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역사기행반에서 학교 수업시간에 잘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같이 공부했고 답사도 같이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사회의식을 갖게 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고3 때가 광주의 교육감이 교복을 도입하겠다고 한 시점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복장은 자유로웠지만, 과도한 체벌이나 입시 중심 교육 등에 대해 ‘자유롭게 살게 해 달라’는 문제의식이 컸다. 그런데 급기야 복장에 대한 자유까지 침범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내가 고2를 거치면서 ‘광고협’이 사실상 해산돼서, 고3이 되면서 다른 학교의 여러 친구들과 함께 ‘교복 반대, 두발 자율화, 체벌 금지를 위한 광주지역 고등학생 공동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이름이 너무 길었다.(웃음) 그 안에서 활동을 하다가 의장까지 하기도 했다.

한: 그 당시는 청소년들이 청소년 운동을 하기에 힘든 환경이었나?

나: 아무래도 전교조 운동이 일어났었고, 87년 민주화 운동 때는 나는 중학생이었지만, 내가 자랐던 광주에서는 조금만 집 밖에 나가면 시내에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또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시위를 한 적이 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우리 기수가 1회였다. 학교 측에서는 우리 학교를 소위 명문학교로 만들기 위해서 아침 7시까지 학교로 가서 10시까지 잡아놓고 공부를 시켰다. 1회 입학생이었기 때문에 1학년 때 2, 3학년 교실은 텅텅 비어있었다. 성적이 떨어지면 아무도 없는 위층 교실로 불려가서 굉장한 체벌을 받았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근데 어느 날 도저히 못 참겠다고 했던 반장들이 모였다. 4교시 끝나고 점심시간 이후에 5교시 때, 각 교실의 문을 잠그고 선생님을 못 들어오게 하고 때리지 말라는 단일한 요구를 외치자고 한 적이 있다. 그 시도는 문을 걸어 잠그는 것까지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선생님이 오셔서 “문 열어”라는 한 마디에 쉽게 무너져버렸다. 이건 내가 주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에게 굉장한 인상을 남긴 사건이었다. 그 뒤로 확실히 체벌이 줄기도 했다. 예를 들어, 시험이라는 것이 잘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는 건데, 시험을 못 봤다고 야단 정도가 아니라 신체 학대를 당하는 상황이나, 머리가 길다고 가위로 그냥 잘라버리는 행위 같은 비인격적인 대우 속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교실 문을 잠그는 시위는 나에게 그냥 지나가는 과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경험들 속에서 민주화라는 것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라는 생각이 체화됐다.

한: 그렇게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간 건가?

나: 92년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하고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 무크지를 기획해서 출판사 직원이 잠시 되기도 했다가, 흥사단 청년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청소년 아카데미 지도위원으로도 있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군대에 갔다가 96년도에 제대했다. 제대하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근데 이 사회는 너무 문제가 많고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조직도 만들어봤고 길거리에도 나가보긴 했지만, 그게 좋은 경험은 됐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더 젊은 시기에 바꾸지 못했던 세상을 책상 앞에서 바꿀 수 있을까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전남대 법학과에 입학을 했다. 좋은 인권변호사 또는 명판결을 남기는 판사가 되면 좋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거리에서 바꾸지 못했던 생각을 책상에서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참으로 건방지게 말이다.(웃음) 4년 동안 이런저런 고뇌는 했지만, 책상 앞을 떠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나2

노동자들에게 진보통합을 알리는 나경채 대표

한: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나: 졸업하고 2001년도에 서울에 왔다. 신림동에 와서 고시공부를 시작했고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니까 공부가 더 안됐다.(웃음) 그러고 있다가 서울에서 광주에서 청소년 운동을 함께했던 친구 세 명을 만났다. 근데 그 친구들이 다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다. 이 친구들이 나에게 했던 이야기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이런 원시인이 있나 아직도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니라니.”라고 한 거였다.(웃음) 도대체 그게 뭔가 싶어서 관심을 갖게 됐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홈페이지에도 가봤다. 관심을 가지니까 더 잘 알게 됐고 ‘쓸만하네?’, ‘관찮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의석도 없었지만, 당원들의 자세와 태도 그리고 말과 글에서, 제가 거리에서 세상을 바꿔보고자 했던 일들을 여전히 꿈꾸고,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한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전업활동가들만이 있는 게 아니고 나 같은 고시생, 학생, 직장인들이 한 당에 어우러져서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또 광주에 있을 때도 어느 정도 느꼈었던 선배들 간의 정파대립에도 불구하고 그때 대립했던 분들이 하나의 당에서 공통의 목표를 향해서 뛰고 있다는 것 또한 나름 감동적이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법대생이었다 보니까 이문옥 전 감사관 사건을 판례로 접해서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정부가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과다보유 문제를 자꾸 감추려고 하자 이문옥 감사관이 공무원 신분으로 그걸 폭로함으로서 고초를 겪었고, 그로 인해 다시 이문옥 감사관이 소송을 제기했던 사건이다. 판결문을 보고 ‘이런 훌륭한 공무원이 있나?’하고 생각했었는데, 그 분이 2002년 지방선거에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의 그 말과 이문옥 선생의 서울시장 후보 출마가 결정적으로 내가 진보정당의 당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다.

한: 최근에 진보진영 내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그동안 진보정당은 운동에 비해 정치를 도외시했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운동과 정치를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이제는 운동보다 정치에 무게를 둬야한다는 것이다. 나경채 대표는 청소년 운동에 있다가 정치 쪽으로 넘어왔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 현재 진보정치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의 관계를 오른손과 왼손의 관계로 비교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변화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 없이 정치만으로 이 사회의 변화가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다. 한 때 일정한 변화를 성공시킬 수는 있겠지만, 지속성이라는 관점에서 그렇다. 나는 오른손잡이다. 오른손을 잘 쓰기 때문에 정치를 오른손으로 하고 있다. 다만 권투를 하는데 왼손을 몸에 묶어둘 필요는 없다. 경우에 따라 왼손도 나가야 할 때가 있다. 나는 우리 오른손이 정치라면 사회운동은 왼손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은 훨씬 더 정교하게 오른손의 기술을 익혀야겠지만, 필요하면 강력한 왼손 펀치의 도움도 필요하다. 우리 안에 어떤 동료는 왼손잡이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동료들과 함께 연습을 해야 다른 왼손잡이를 잘 상대할 수 있게 된다. 오른손 왼손이 유기적으로 작동될 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진보정치가 사회운동에 더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진보정치는 이 사회의 작동원리를 좀 더 혁신적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런 문제에 무관심했던 정치적 우파들조차도 우파 사회운동을 육성하고 재정을 지원하고 정치권으로 들이고 있다. 그들 또한 이전까지는 한쪽 손만 쓰다가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다. 진보진영은 안 그래도 덩치가 작은데, 정치와 운동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해서 어느 하나를 경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1

왼쪽부터 김세균 양경규 심상정 나경채

한: 정의당에 집중한 질문을 하고 싶다. 정의당은 다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분들이 모여 있는 정당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사소한 갈등들이 존재한다. 사실 예전에는 다른 당에서 혹은 같은 당 내에서 많이 싸우기도 했다. 예전 민주노동당이나 통합진보당은 그런 갈등을 잘 조정하지 못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 쉽지 않은 문제다. 이렇게 말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정의당 구성원들은 이전 시기의 진보정당의 당원 구성하고 비교했을 때 좀 더 다양해지고, 정의당에서 만나기까지 과정과 역사가 각 개개인들마다 훨씬 더 다채로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생각의 차이나 행태의 차이가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이가 간혹 상대방의 행동과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일이 당연히 있을 수 있다.

내 생각은, 대중적 진보정당을 지향하는 한에서 가장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서 함께 우리 사회를 진보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본다. 또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당의 매력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뿐만 아니라,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당이라고 하는 울타리 안에서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지금 정의당은 그런 기술 혹은 그런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공통의 인식이 이전 시기의 진보정당보다 훨씬 많다. 함께 공존하는 방식에 대해서 정의당원들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고 느껴지는 요소들이 곳곳에 많다.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되는 요소도 많지만, 그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기 위해서 고심한 요소도 많다. 그 요소 중 하나가 함께 만든 리더십을 존중해야 한다고 여기는 생각이라든지 또는 여러 가지 의결기구에서 결정을 할 때, 결정 과정에서는 치열하게 토론하고 문제제기를 하지만 결정된 사항을 집행할 때는 단일한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협동이 이전 시기 진보정당들보다 훨씬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것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힘 있게 같은 목표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더 큰 틀에서 보자면, 그렇게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더 많은 힘을 합쳐야 될 만큼, 지금의 상황이 절박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 5년 전까지만 해도, 한때 열린우리당 당원이었던 사람들과 한때 개혁당이나 국민참여당 당원이었던 사람들과 한때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던 사람들과 또는 그 이전에 있었던 민중당 당원이었던 사람들이, 하나의 당에서 공동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겠냐는 질문에 대해서,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불가능한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상황과 조건에 대한 인식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박근혜 시기를 관통하는 지금이 우리 사회를 보수적으로 고착화 시키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나아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크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 안철수 의원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야권은 그야말로 소용돌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은 어떻게 총선 대비를 해야 하나?

나: 정치가 격랑 속으로 빠졌다. 정의당의 지지율이 약간은 빠지기도 했다. 안철수 의원이 신당 창당을 성공하면 우리 기호도 3번에서 4번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여러 가지 곤란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당이 진보 대표 정당으로서 정의당의 위상을 더욱 굳건히 하는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당은 지난 3년 동안에 진보정당이 우리사회에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승인 받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시도와 노력을 했다. 그 노력이 최근에 지지율의 상승이나 당원의 증가로 화답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어떤 사람들에게 지지기반을 형성할 것이냐는 문제에 있어서 좀 더 분명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노동의 희망, 시민의 꿈’을 정의당의 캐치프라이즈를 공식 명칭으로 정한 것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또 당의 노동기반을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시민의 권리를 수호하고 지키는 정당이라는 우리의 미션을 보다 분명히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분명해야 이런 역동적 상황에서 우리 당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전략과 전술을 영민하게 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안철수 신당이 어디까지 커갈지, 여당과 야당의 지지층을 각각 얼마나 흡수할지 등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하는 포인트가 있다. 정의당의 지지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상황이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디까지 위협받을 것인지에 대한 예상도 조심스럽게 하면서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역할은, 이 시대에서 가장 공격 받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당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보다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총선에서 어떤 슬로건과 정책 공약으로 무장할 것이냐 또 일상시기에 당원들이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 보다 치밀하게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정치적 경제적 권리 향상을 위해서 우리 당의 경제 정책과, 시민권 확보를 위한 우리 당의 전략과 전술이 무엇인지 보다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계속 얘기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 기반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최근에 통합 이후에 우리와 함께 합류하게 된 노동정치연대라고 하는 조직이 노동자 내부에서 정의당을 안내하고 입당운동을 펼치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당 차원의 관심과 지지가 강화되어야 한다. 꼭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노동자인 건 아니기 때문에 우리 당원들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당이 노동자 편에 약자 편에 서고자한다는 것을, 그걸 위해 함께하자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마지막 질문이다. 정의당에도 청년들이 많이 가입하고 있는데, 물론 아시겠지만 요즘 청년들이 굉장히 힘들다. 청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나: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최근에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19살 서울대 재학생이 투신해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수저 색깔이 생존을 결정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또 얼마 전에 사회복지사 한 명이 고독사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것 또한 우리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살고 있는 관악구는 서울에서 청년 인구가 가장 많은 동네이기도 하지만, 자살률도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고민해왔지만, 그냥 희망을 가지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함께 희망을 만들어보자고는 말하고 싶다. 지금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단지 청년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청년들로 대표되고는 있지만, 단지 청년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같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와 함께 이것은 청년들 탓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이건 개인적 혹은 세대의 잘못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원인은 정치권이 경제정책을 잘못 실행한 것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을 함께 만들어나가자는 생각을 공유했으면 좋겠다. 희망을 만드는 방법은 정치를 바꾸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를 바꾸기 위한 것을 사명으로 하는 진보정당, 우리 정의당에 좀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고 싶다. 최근에 정의당에 청년당원 비중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대체로 진보정당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지금 당장의 희망보다 앞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희망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다. 앞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희망이 청년들에게 훨씬 절박하기 때문에 우리 당 또한 당원 구성으로부터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정의당이 앞으로 만들어가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희망 만들기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함께해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끝)

필자소개
정의당 당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