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총회에서 만난
    프랑스 탈핵운동의 현재와 과거
    [에정칼럼] "탈핵은 내 운명"
        2016년 01월 08일 10: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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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21차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1)가 요란한 공치사들과 함께 지난해 12월 12일 막을 내렸지만, 이 결과가 지구를 구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기온 상승을 2도 훨씬 아래, 그리고 1.5도 이하로 억제하도록 노력한다는 멋진 선언에도 불구하고, 합의문 대부분이 추상적인 구절들로 ‘맛사지’되어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나 방법은 거의 담겨 있지 않은 탓이다.

    폐회와 함께 터져 나온 각국 대표들의 큰 박수는 법적 구속력을 발휘할 수 없는 5년간의 기소유예라는 실상을 감추기 위한 스스로의 최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파리 총회에 함께 한 여러 국제적 기후정의운동 조직들의 태도 역시 이러한 사정을 이미 간파한 탓인지, 공식 회의장 내에서 전개되는 합의문 공방보다는 각 지역의 상황을 점검하고 이후의 작전을 논의하는 데 더 관심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한 움직임들 가운데 지난 몇 년간의 기후변화총회에 비해 파리 총회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띈 것 중 하나가 바로 탈핵운동을 기후정의운동과 결합시키려는 흐름이었다.

    기후변화총회에의 공식 회의장 바깥에서는 자발적 여러 사이드 이벤트(부대행사)들이 열리는데, 이번 파리 총회에는 탈핵 관련 부스와 단체의 행사들이 부쩍 많이 보였다. 후쿠시마에서 여러 명의 일본 활동가들이 오기도 했거니와, 우라늄 채굴과 신규 핵발전소 등 여러 이슈들을 갖고 있는 나라들의 활동가들이 머리를 맞대었다.

    이들이 내건 구호는 “Don’t Nuke the Climate!”, 굳이 해석하자면 “기후를 핵 발전으로 더욱 괴롭히지 말라” 또는 “기후변화를 핑계로 핵 발전 정책을 밀어붙이지 말라” 정도가 되겠다(여기서 ‘nuclear’에서 나온 ‘nuke’는 ‘핵무기로 공격하다’, 또는 ‘완전히 박살내다’라는 의미를 갖는 동사다). 핵 산업계가 핵 발전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 에너지원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구호다.

    dontnuke

    12월 12일 에펠탑 시위의 프랑스 탈핵운동 깃발

    물론 핵 발전은 핵분열 과정 자체에서 온실가스가 나오지 않을 뿐, 우라늄 채굴과 정련, 운송, 발전소 건설, 냉각장치 가동, 폐기물 처리 등 모든 과정에서 화석에너지를 사용하며 따라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것은 허구다. 그럼에도 기후변화가 국제적 이슈가 된 1990년대 이후 핵산업계와 친 핵발전 정부들은 기후변화를 핵산업 중흥의 기회로 삼아왔다.

    이에 대한 대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몇 년간의 숨고르기를 마친 탈핵운동이 이번 파리 총회에서 기후정의운동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제1세계와 제3세계의 활동가들이 반핵과 탈핵 운동의 경험을 교류했고, 단지 저항운동뿐 아니라 재생에너지의 민주적 생산과 공급을 추구하는 에너지협동조합의 사례들도 여럿 발표되었다. 개선문과 에펠탑 앞의 시위에서도 탈핵의 깃발들이 펄럭였다.

    그런데 정작 이번 기후변화총회의 개최지인 프랑스의 탈핵운동은 어떠할까? 세계에서 가장 큰 핵에너지 비중(전력 공급의 80% 내외)을 갖고 있는 프랑스에서 탈핵운동이 가능할 수 있을까? 아니면, 프랑스의 탈핵운동의 실패가 현재의 ‘핵에너지 강국’ 프랑스를 낳은 것은 아닐까?

    그러나 파리에서 만난 프랑스의 여러 탈핵 운동가와 조직들의 열정적인 활동은 무엇이란 말인가? 언뜻 보아도 프랑스의 탈핵운동 열기는 결코 낮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역시 창의적인 새로운 탈핵운동 모색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이들의 투쟁기를 아주 짧게 간추려보면 이렇다.

    프랑스는 1956년부터 2002년 사이에 60기의 핵발전소가 건설되었고, 지금은 58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특히나 프랑스는 핵연료, 상업적 목적의 방사성 물질, 재처리 기술까지 개발하고 수출하느라 온갖 유형의 핵발전소가 존재한다.

    그런데 초기부터 프랑스에서 핵 발전 정책은 좌우를 막론하고 큰 반대에 직면하지 않았는데, 2차 대전의 아픈 기억 속에서 프랑스에게 핵무기와 핵 발전은 둘 다 안보와 독립의 수단이라는 독특한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2차 대전 이후 엄청난 대중성을 구가했던 유로코뮤니즘의 기수 프랑스 공산당도 반대하지는 않았던 모양인데, 아마도 코민테른 정당으로 출발한 공산당이 소연방의 진영 논리에 기반한 핵개발에 대해서도 뭐라 할 수는 없었을 사정이 짐작된다. 그리고 1973년의 석유위기가 오자 정부는 핵 발전 설비용량을 대폭 늘릴 것을 결정하게 되었고, 이 결정은 의회에서도 기정사실로 취급되면서 아무런 심각한 논의도 일어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석유위기에 대한 상반된 대응이 탈핵 선도국 독일과 핵 발전 강국 프랑스를 가르게 된 중요한 분기점이었던 셈이다. 독일은 석유위기가 적어도 시민사회 수준에서는 에너지전환을 심각하게 논의하는 촉매가 되었다.

    어쨌든 1970년대부터 프랑스에서도 의회 바깥의 시민사회 그룹에서 반핵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1971년에 1만5천명의 시민들이 프랑스 최초의 경수로 건설 예정 부지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인 것이 최초였다.

    1977년에 벌어진 쉬페르피닉스 고속증식로 반대 운동의 폭력 충돌을 포함하여, 1975년에서 77년 사이에 십여 차례 반핵 시위에서 17만 5천명이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1972년부터는 태평양에서의 핵무기 실험 반대운동이 점화되었고, 반대 시위와 프랑스 상품 불매운동, 실험장에 뛰어드는 직접행동은 오스트레일리아, 피지, 뉴질랜드 등으로 확대되었다.

    1985년에 핵무기 실험 준비를 감시하러 가는 그린피스의 레인보우 워리어호가 프랑스 정보당국에 의해 폭파된 사건은 잘 알려져 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프랑스 정부가 체르노빌 낙진의 위험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농민과 소비자들이 직접적 피해를 입으면서 프랑스의 반핵운동은 더욱 대중적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반핵운동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에 접어들자 핵발전소는 이미 프랑스 에너지 수급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반핵운동의 초점도 핵강국이 된 프랑스의 상황에 맞추어 변화하게 되었다. 노르망디 해안 플라망빌의 유럽형 가압경수로(EPR)의 신규 건설 저지, 핵폐기물의 국제 운송 저지 활동이 대표적이다.

    핵폐기물의 국내 처분장 건설 저지 투쟁도 빼놓을 수 없다. 독일과 접하고 있는 노후한 페센하임 핵발전소의 폐쇄 문제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중요한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어, 2012년 대선에서 현 올랑드 대통령은 페센하임 폐쇄를 약속했고 의회는 핵 발전 비중을 2025년까지 50%로 낮추도록 하는 근거 법안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핵 발전으로 생산된 전력을 수송하는 고압송전선로 관련한 분쟁이 많아지고 이와 관련한 지역 수준의 운동들도 늘어나고 있다(프랑스의 고압송전선은 400kV라서 밀양의 765kV의 절반밖에 안 되는 규격이기는 하다). 온갖 핵 발전 산업과 기술을 추진하고 있는 프랑스이니만큼, 반핵과 탈핵운동의 이슈도 무궁무진해 보인다. 1997년 쉬페르피닉스 투쟁의 성공 결과 만들어진 ‘탈핵(Sortir du nucléaire)’이라는 네트워크 조직이 현재 8백개 가량의 반핵/탈핵 단체들이 결합하여 프랑스의 탈핵운동을 조율하고 있다.

    어쨌든, 핵강국 프랑스를 막아내지 못한 탈핵운동은 패배한 것일까? 애초 프랑스의 에너지 사정이나 정부의 강력한 핵 발전 정책 의지를 생각하면 중과부적이었을 수도 있고, 핵에너지가 아닌 다른 경로로 정책을 유도할 몇 번의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탈핵운동이 아무 결과를 만들지 못한 것은 아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2011년 11월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 중 40%가 핵에너지에 대해 ‘회의적’이며, 1/3이 찬성이고 17퍼센트가 반대한다고 했는데, 이조차도 과거와는 크게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올랑드 대통령이 당장의 탈핵 약속은 아니더라도 핵에너지 확대 정책의 일부 수정을 받아들인 것 역시 성과임이 분명하다. 지역 수준에서 고압송전탑 반대운동, 에너지 전환마을 운동도 시나브로 성장하고 있다.

    프랑스

    [오른쪽] 영원한 위험인 핵에너지. 핵강국 프랑스는 핵지뢰밭이다,[왼쪽] 핵에너지와 고압송전선로를 반대하는 지역 행사 포스터. 밀양과 닮은 꼴이다

    더욱이, 프랑스에서도 신규 핵발전소 수출이든 노후 핵발전소 폐쇄든, 아니면 재처리나 핵폐기물 처분장이든, 어느 하나도 핵에너지의 본질상 완전한 해결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탈핵운동은 단기적 승패는 따질 수 있더라도 끝날 수는 없는 운명이다. 어떻게 잘 할 것인가, 즉 어떻게 안전하게 또 하루 빨리 핵 체제를 끝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핵강국 프랑스의 탈핵운동이 내는 힘은 다른 나라들의 탈핵운동에 더욱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의 탈핵운동은 반면교사이자 또 더욱 응원해야 할 동지임이 분명하겠다.

    이제부터는 짧은 후기다. 파리에서 돌아온 며칠 후 서울에서는 밀양투쟁 10년을 담은 투쟁백서랑 화보집이 출간되고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너무 기쁘고 축하할 일이지만, 파리 총회의 기후정의 운동 가운데서 한국의 지난한 투쟁이 알려지지 못한 상황에 적잖이 반성이 되었다. 핵발전, 기후변화, 재생에너지 갈등, 고압송전선로, 지역분산에너지, 주민참여 에너지 계획, 이 모든 것이 세계적인 이슈들이고 한국도 그 최전선 중 하나임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을 터인데, 주로 도움을 구하는 국제연대가 아니라 우리가 운동을 확장하고 연결하는 국제연대 사업을 만들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반성 말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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