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상 전기',
    토론해야 할 새로운 의제
    [에정칼럼] 에너지 기본권의 시각
        2016년 01월 05일 09: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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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많은 한국 시민들은 ‘탈핵 에너지전환’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동감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핵발전이 저렴하기 때문에 경제 성장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는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핵발전의 위험이 감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가능한 한 빨리 핵발전소 가동을 중지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한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에너지전환’을 주장하는 이들은 핵발전 대신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효율적이고 낭비하고 있는 전력 소비를 과감히 줄여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로써 탈핵 에너지전환론의 기본적인 공리가 완성된다. 전력 소비를 과감히 줄여나가며 이를 재생에너지를 통해서 공급함으로써, 핵발전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후변화 이슈를 덧붙여서, 핵발전 뿐만 아니라 석탄발전도 이런 방법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에너지전환’ 담론에는 부족한 것이 있다. ‘에너지 기본권’에 대한 논의가 아직은 풍부하지 않으며, 어떻게 연계되는 것인지 설명도 부족하다. ‘에너지전환’이 에너지 수요를 과감히 줄인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아예 에너지를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얼마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가, 혹은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질 수 있다. 즉, 에너지 소비의 계급/계층적 양상과 개혁에 대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에너지 기본권’은 그와 관련된 하나의 담론이다. 에너지는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기본적인 필요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이용을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필요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를 충족시킬 최소량이 얼마인지는 쉽게 확정하기 어렵다.

    한전은 전기요금을 내지 않아서 단전된 가구에게도 최소한의 전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전류제한기를 부착하고 있다. 최근까지 단전가구에게 허용된 전력 용량은 220W이다. 형광등 2개, TV 1대, 소형 전기장판을 사용가능하며, 대략 월 70-100kWh의 전력소비량으로 추정된다. 겨울철에는 660W로 잠시 확대되기도 했지만, 이것이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최소한의 전력 소비량인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 권리의 실현 방식에 대해서도 여러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현재 에너지 기본권은 보편적이라기보다는 선별적 그리고 보완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진다. 즉, 경제적인 이유로 에너지 이용에 제한을 받는 에너지 빈곤층을 구분하며, 이들에게 에너지요금 할인, 에너지 바우처 제공, 단전 유예 및 최소 전력 공급 등의 지원을 하는 것이다. 현재의 선별적, 시혜적 복지 체계와 일치하는 접근이다. 이와 반대로 국가 혹은 지자체가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 에너지 소비량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상상할 수는 없을까?

    에너지 기본권의 구체적인 내용물과 그 실현 방식에 대해서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그런 권리가 존재해야 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은 없어 보인다. 녹색당은 최근 2016년 총선 공약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무상 전기’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다. 여기서 ‘무상 전기’란 가정에서 쓰는 모든 전기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가정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전기, 즉 ‘생활 기본 전기’를 무상으로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제안에 대해 당내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이어졌다. ‘생활 기본 전기’라면 대체 얼마이어야 하나? 그리고 꼭 모든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들이다. 전자의 질문은 사실 정답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어서 계속 토론해야 할 문제이지만, 후자는 판단이 요구되는 사항이다.

    보편적 ‘무상 전기’ 제안에 대해 사람들은 종종 녹색당이 내세운 ‘기본소득’ 정책과 연계해서 토론을 하곤 한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정당이라면 보편적 ‘무상전기’를 주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토론에서부터, 기본소득 안에 ‘무상전기’에 해당하는 금액이 포함되는 것인가라는 질문까지 다양하다.

    녹색당의 기본소득 제안은 1단계에서 월 40만원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주거비 등 다른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킬 비용 모두를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복지 서비스를 병행할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무상 전기’ 제안도 이와 유사하다. 필요하다면 이후 기본소득 금액을 상향해나가면서 ‘무상전기’ 정책을 흡수하여 에너지 기본권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상 전기’ 제안에 대해서 녹색당 내에서 가장 큰 쟁점은 따로 있는 듯하다. 그것은 녹색당의 핵심 정책인 ‘에너지전환’과 ‘무상전기’ 제안이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에너지전환론의 핵심적 요소인 에너지소비 감소 목표가 ‘무상전기’ 정책으로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는 녹색당으로서는 당연히 검토해야 할 핵심 사항이이다. 그러나 무상급식, 무상의료 운동 등을 통해서 많이 불식시켜 왔지만, 여전히 ‘무상’은 ‘공자’이며 헤프게 사용하도록 부추기게 될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이는 보편적 ‘무상 전기’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사항이다. 각 가정에 보편적으로 무상 제공하는 ‘생활 기본 전기’의 총량은 기본적 필요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토론과 함께, 에너지전환이 목표로 하는 에너지 수요 절감 목표와 조화되도록 설계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양은 가정 부문에서 소비되는 전체 전력량의 일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가 줄여가야 할 것은 기본적 필요 소비가 아니라 사치성 소비라고 한다면, 무상 제공되는 양 이상으로 소비하는 전력량에 대한 누진제 요금을 강화할 수 있다. 이는 낭비적 전력 소비를 줄여가는 한편,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무상전력의 비용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무상전기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녹색당이 처음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해산된 통합진보당이 2014년 지방선거에서 제시했던 공약이기도 하다. 당시 통합진보당은 전기뿐만 아니라 가스와 수도까지 포함하여 무상공급을 주장했었다. 이들의 제안은 일종의 포퓰리즘으로 평가되기도 했고, 녹색당의 견지에서 보았을 때 얼마나 에너지전환이라는 목표를 통합적으로 사고했는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에너지 기본권을 실현하는 한 방식으로 이 제안에 대해서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를 에너지전환 전략과 어떻게 연계할 수 있을지 본격적으로 토론할 일이다. 이는 에너지전환의 사회적 지지를 형성하고 확대하는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상 전기’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해보자.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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