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선거 연령만 낮아지면 돼?
    [기고] 정치와 청소년, 구분의 벽을 허물어야
        2016년 01월 04일 03: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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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SNS 뉴스피드를 넘기다 말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내가 멈춘 포스트는 한창 선거구 획정 문제 때문에 시끄러운 와중에 정의화 국회의장를 인터뷰한 기사였다.

    직권상정을 하네 마네 시끄러웠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던 으레 그런 내용일 것이라 생각하고 읽었으나 기사 말미에 쓰여 있는 ‘선거권 연령 18세 하향 조정’라는 문구를 읽곤 깜짝 놀랐다. 뜬금없는 시점에서 갑자기 내던져진 듯한 그 선언의 저의가 의심되었지만 그래도 최근 정치개혁 이슈에서 단 한 번도 부각되지 않았던 “선거권 연령” 문제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반가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선거권 연령 이슈는 한계가 드러났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인터뷰 이후 여야 협상에 대한 속보와 기사들 속에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낸 선거권 연령 이슈는 다른 쟁점들처럼 여야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 진전되지 못했다. 반대의 명분을 찾아 헤매던 여당 측은 급기야 고등학생들을 제외한 18세 선거권자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타협점으로 제시하였다.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대신 고등학생들을 제외하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황당한지에 대해서는 서술하지 않겠다. 보통선거권의 기본 원리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저급한 발상이 마치 타당한 주장인 마냥 대등하게 논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진정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면 수많은 질타와 야유 속에 도태되어야 할 위험한 주장이고, 허구한 날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며 떠들어대는 새누리당의 입에서 나올 수조차 없는 주장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황당한 주장은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얕은 사유의 깊이를 반증하는 신호이다. 이 웃지 못 할 촌극은 사회가 구성원의 정치적 자유를 어떻게 보장하고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와 같은 청소년 참정권의 본질적인 고찰이 담론의 장에서 실종되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시민인 청소년의 민주적 권리를 어떻게 최대한 보장할 것인가?”

    선거권 연령 논의를 비롯한 청소년과 관련된 정치개혁 이슈가 매번 놓치고 있는 것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는 그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진 존재라는 지점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통치자와 피치자의 일치를 기본적인 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이러한 기본 원칙에 따라 청소년들 또한 사회의 구성원과 주권자로서 인정된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라는 공간을 운영하는 과정 속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민주적 정당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권자로서 시민이란 존재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으로서 성장하는 일정한 단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허나 시민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은 결코 사회적인 행위들과 격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성장하는 단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구성원이 아님을, 주권자로서의 권리가 박탈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은 피치자들의 정치참여의 자유에서 비롯되기에 민주사회에서 참정권은 인간의 매우 중요한 기본권 영역에 속하게 된다.

    정치적 기본권 관점에서 청소년의 참정권을 바라볼 때 그 논의의 폭은 넓어진다. 참정권의 영역은 단순히 선거권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 정당을 만들고 가입하지 못하는 것, 본인들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학교·교육정책·지역사회 등의 공간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 등 선거권뿐만 아니라 너무도 많은 경우에 청소년들은 수동적인 피치자로서 종속되고 능동성과 주체성을 억압받고 있다. 현실적인 조건으로 인해 선거권에 연령제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수용하더라도 이토록 광범위하게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제약당하고 있는 것은 민주적 가치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청소년 참정권 문제를 다루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이를 정치적 기본권의 문제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 으래 그랬듯이 몇 살이 성숙한지, 판단할 능력이 있는지를 판단하고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비로소 그 능력을 입증하였을 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제공받는다.

    선거권 연령 논쟁 속에서 오고 가는 청소년의 성숙함에 대한 근거 없는 논의들이 끝나야만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연령,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연령, 정치에 관심 가질 수 있는 연령이 함께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꼭 그래야할 필요가 있을까?

    선거권의 특성과 정당 가입이라는 행위의 특성, 선거운동이라는 행위의 특성은 모두 다름에도 선거권 연령이라는 척도에 의해 일괄적으로 정해져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청소년이 지닌 정치적 기본권을 우선된 가치로 두게 된다면 각 제도들의 연령제한이 단일하기보단 오히려 다양하게 설계하는 것이 폭넓게 청소년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이는 논의의 전제가 정치참여를 비청소년이 청소년에게 행하는 시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음과 동시에 시민의 기본권이라는 측면에서 사고하지 않음을 뜻한다.

    결국 청소년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폭넓은 접근은 “몇 살의 연령이 권리를 부여하기 합당한가”라는 지금의 질문을 “어떠한 접근으로 청소년이 지닌 정치적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할 것인가”라고 뒤집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권 국가들의 경우 국가 차원의 선거권 연령보다 지역자치단체 선거에서의 선거권 연령이 훨씬 낮다. 주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위치하여 있는 지역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고려하여 청소년들의 참여를 보다 폭넓게 보장한 것이다. 누가 보기엔 기겁할지도 모르지만 이들 국가에서 정치인들이 학교를 방문하여 연설하고 학생들과 토론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그럼에도 이들 국가는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다.)

    또 청소년들이 어린 나이부터 정당활동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특히 유럽권 국가들에선 이러한 경향이 매우 보편적이다. 젊은 나이에 독일의 환경부 장관을 지낸 ‘요쉬카 피셔’나 18세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세계 최연소 정치인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안나 뤼어만’의 경우에도 매우 어린 나이부터 정당에 가입하여 정당활동을 통해 성장한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이외에도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특수한 제도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일부 주에 설치되어 있는 어린이의회·청소년의회가 대표적인 제도이다. 우리도 비슷한 이름을 가진 프로그램이 국회와 지자체에서 실시되고 있지만 단 몇 시간의 의원놀이에 불과한 우리의 그것과는 달리 체계적이고 정책환류적 기능을 지녀 실질적인 제도로 확립되어 있다.

    실제로 매년 정기적·상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의회에서 제시된 법안이나 정책의견이 실제 정책과 법안으로 입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선거권이 보장되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끊임없이 정치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과 유럽의 모습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청소년도 시민으로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히 보장해야한다”는 원칙으로부터 유연하고 다양한 방식을 마련해냈기 때문이다.

    선거권 연령에 함몰된 정치적 기본권 되찾기

    한국의 선거권 연령은 높은 축에 속한다. 최근 일본의 법률 개정으로 인해 OECD 국가 중 유일한 19세 국가가 된 한국은 사회·경제·문화의 발전 수준에 비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이 매우 높은 편이기에 연령을 낮추는 것은 분명 시급한 과제이다. 그렇기에 선거권 연령을 하향조정하자는 주장과 논의가 조명 받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허나 선거권 연령이 하향되더라도 여전히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대다수일 것이다. 선거권 연령을 기준으로 사회참여와 정치참여의 통로가 모두 열리거나 모두 닫히는 현행제도의 형태 속에서 선거권 연령에 대한 논쟁은 어쩌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단 “누구를 배제할 것인가”를 논박하는 구차하고 편협한 싸움을 전제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선거권 연령 고작 한 살을 낮추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벌여봐야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정치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선거권 연령을 뛰어넘어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고민의 근간에서부터 다시 출발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18세 대신 고등학생들은 선거권을 주지 말자고 당당히 주장하는 우리네 정치의 모습을 볼 때 앞으로 선거권 연령의 하향조정만을 통해 청소년의 참정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한계에 부딪히기 쉬워 보인다.

    선거권 연령을 낮춰야한다는 주장과 근거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제도에 대해 다양한 접근을 제시해야 한다. 청소년의회, 지방선거권 연령의 하향조정, 정당과 선거운동의 보장 등 현행 제도와 법률이 어떻게 청소년들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상상하여 새롭게 구성해야한다.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과 선거권 연령 하향 조정은 양자택일의 문제도 아니다. 더 많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정치적 행위들을 보장 받고 사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할수록 결국 장기적으로도 선거권 연령을 더욱 낮추는 청소년들의 주체적인 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개혁이 보다 민주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자하는 것이라면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더욱 폭넓은 시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길은 정치개혁의 핵심적인 과제일 것이다.

    민주적이고 진보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은 정치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이들이 정치를 넘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일은 이미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다. 정치와 청소년이 구분되는 벽을 허무는 시도가 고등학생을 포함할지 말지와 같은 시답잖은 논쟁을 넘어 시작되어야 한다.

    필자소개
    청소년 활동가. 관악청소년연대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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