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일 지배자들에게
    두 번 죽임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
    [기고] 할머니들이 보여준 공감과 연대의 자세 배워야
        2016년 01월 03일 12:52 오후

    Print Friendly

    전시 성범죄의 피해를 겪은 수십만 명 중에 대부분이 돌아가시고,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제 46분 밖에 살아남아 계시지 않다. 46분의 온 몸에는 그 끔찍한 기억과 상처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일본 지배자들의 태도는 이 할머니들이 다 세상을 떠나서 그 기억들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듯한 것이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한일관계 개선의 걸림돌’ 취급해 온 한국 지배자들의 태도도 다르지 않았다. 1965년 박정희 정부가 한일청구권 협상을 통해 많은 문제를 헐값에 ‘땡처리’한 후부터 줄곧 그랬다.

    그러나 한일 지배자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이 ‘기다리기’ 정책은 계속될 수 없었다. 한일 지배자들에게 인내심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는 것을 피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다렸을 것이다.

    부족했던 것은 미국 지배자들의 인내심이었다. 제국주의 경쟁의 격화 속에 일본의 재무장,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 중국 포위라는 큰 그림을 완성시키려는 미국의 조바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결국 미국의 닦달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지배자들은 그들 사이의 이 ‘걸림돌’을 치워버리기 위해 서두르게 됐다.

    지나간 제국주의와 전쟁의 시대에 희생자였던 여성들이, 이제 다가오는 제국주의와 전쟁의 시대에 걸림돌 취급을 받았다. 이어서 나온 합의문은 65년에 이어서 또 한번의 ‘땡처리’라 할 만하다. 이 합의문에는 일본 국가가 이 범죄의 책임자라는 점과 그에 대한 법적 책임과 사과, 배상 약속, 재발 방지를 위한 진상규명과 역사 교육 등의 내용이 없다. 즉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알맹이들은 하나도 없다.

    반면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를 통해 새로운 제국주의와 전쟁의 시대로 나가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은 다 들어가 있다. ‘이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하며, 일본의 안녕과 위엄을 지켜주며, 한일은 서로 비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특히 일본 지배자들은 ‘소녀상’이 치워질 거라는 기쁨과 기대를 숨기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무슨 짓을 했고 앞으로 하려는지 너무나 잘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검은 속내를 꿰뚫어보는 듯한 소녀상의 눈을 보면서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이제 그 굴레를 벗었다고 생각하는 일본 지배자들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위한 질주에 더욱 속도를 높일 것이다. 일본 총리 아베는 “모두 끝이다. 더 사죄하지 않는다. 한국 외교 장관이 카메라 앞에서 불가역적이라고 말했고 미국이 그것을 평가하는 절차를 밟았다”고 합의의 취지를 분명히 했다. 일본 외무상도 “일본 정부가 잃은 것은 10억엔뿐”이라 했다.

    미국 정부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만큼이나 중대한 합의”, “새로운 이정표”라며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이제 미국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일대일로’ 등 중국의 육상·해상로를 봉쇄하기 위한 그물망을 더욱 촘촘히 할 것이다. 일본의 오키나와 기지, 한국의 평택기지와 강정 해군기지 등은 그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65년에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준 박정희 정부는 독재권력을 유지하며 온갖 반인권 범죄를 저질렀고 베트남에서 일제의 모방 범죄까지 저질렀다. 박근혜 정부는 그런 과거를 바로 잡거나 참회하긴커녕 그 주역이던 김기춘같은 자들을 앞세워서 종북몰이와 조작, 세월호 진실 덮기, 교과서 국정화, 노동개악 등을 자행해 왔다. 따라서 이런 박근혜 정부가 일본의 국가 성범죄를 대충 덮어준 것은 자연스럽다.

    그것만이 아니다. 정영환 교수의 지적처럼 한국 정부는 이번 합의에서 일본 정부의 ‘하청’도 받았다. “한국정부는 당사자에 대한 설득과 일본대사관 앞에서 소녀상을 철거하는 것도 포함한 교섭을 담당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 [일본 정부는] 한국정부와 당사자들이 다투는 것을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보기만 하면 된다.”

    이제, 소녀상만이 아니라 ‘일본의 안녕과 존엄’을 위협하는 모든 저항운동과 목소리는 정부 탄압의 칼날 아래 놓일 것이다.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들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를 키워내려는 이간질까지 시작됐다. 이번 ‘최종적·불가역적 해결’로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와 원폭 피해자들의 문제 해결은 더욱 힘들게 됐다.

    이 상황에서 박유하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 논란도 돌아보게 된다. 박유하 교수는 최근 재판부에 제출한 최종변론문에서도 다시 기존 논지를 반복했다. “한 위안부 할머니는 저에게 ‘위안부는 군인을 돌보는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강제연행은 없었던 걸로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어떤 이야기들은, 여전히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합의를 통해서 정말로 ‘침묵을 강요당해 온’ 이야기가 무엇인지 다시 분명해졌다. 한국 정부와 메이저언론들은 박유하 교수 같은 ‘화해론’을 비판하며, 그 반대편에서 정대협의 수요 시위를 돕고 소녀상 건립에 앞장서고, 반제국주의적 역사관과 역사교육을 장려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한국 국가와 주류 지배자들은, 일본 국가와 학계처럼 ‘화해론’을 키워서 ‘한일관계 개선’에 이용하고 싶어 했다.

    따라서 소송은 반대해야겠지만, 박유하 교수 논란에 대한 일부 지식인들의 태도는 아쉬웠다. 만약 베트남에서 한 학자가 ‘베트남 여성들은 강제로 끌려간 것은 아니며 일부 한국군과 동지적 관계였고 한국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책을 내서 고발을 당했다면, 그 학자의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고 나서는 게 한국 지식인으로서의 자세였을까?

    그런 지식인들은 대개 민족주의에 대한 일면적 관점과 거부감을 보여 준다. 물론 민족주의는 한계가 있지만, 인종적 억압과 성적 억압을 계급적 착취와 교차시켜서 분석하고 운동을 연결해야 하듯이 민족적 억압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박유하 교수 등은 ‘정대협의 협소한 반일 민족주의’를 비판하지만, 몇 주 전 <김어준의 파파이스>에는 정대협의 베트남 연대 활동이 방영됐다. 그것을 보면 정대협 할머니들이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에 사과하고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데 누구보다 적극적이었고, 일찍이 앞장섰다는 걸 알 수 있다.

    정대협과 할머니들은 팔레스타인 민중과 콩고 내전 희생자와도 연대해 왔다고 한다. 이 내용을 보면서 진행자인 김어준은 “할머니들의 정신은 지식인들의 얄팍한 글 너머 멀리 가 계시네요”라고 감탄했는데,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 할머니들은 그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지나며,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과 연대하고 공감하는 길을 찾아내신 것이다.

    반면 얼마전 <한겨레>에 실린 박근령 씨의 인터뷰를 보면 ‘아버지가 죽고 피 묻은 셔츠를 언니(박근혜)와 함께 빨아서 청와대 옥상에 가서 태웠다’며 우는 대목이 나온다. 비극과 슬픔을 겪었을 두 자매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 자신들의 아버지가 어떤 잘못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상처를 줬는지 돌아봐야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3년을 겪으며, 우리는 그 트라우마가 공감능력 결여와 삐뚤어진 복수심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목격해 왔다.

    이제 그것이 낳은 ‘외교적 참사’ 속에서 할머니들이 “왜 두 번 씩이나 이렇게 우리를 죽이느냐!”, “한을 못 풀고 가신 238명의 할머니의 한을 풀어 달라!”고 절규하고 계신다. 할머니들이 보여 준 공감과 연대의 자세를 우리 모두가 배우고 뒤따라야 할 시간이다.

    필자소개
    변혁재장전 http: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