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진 사진계의 선선한 바람
‘최민식사진상’과 ‘이해선사진상’
[다큐멘터리 사진] 최민식과 구와바라 시세이
    2015년 12월 29일 09:26 오전

Print Friendly

2015년이 다 저물어 간다. 한낱 무의미한 숫자가 지나는 일일 뿐, 묵은 것이 지나가고 새 것이 오는 것은 아니다. 가는 해를 돌이켜보고, 오는 해를 맞이하는 것은 희망적이기도 하지만, 그 희망이 다시 실현되지 못하는 것임을 알게 될 때는 카타르시스에 젖어 좌절할 수도 있다.

‘지금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바꾸어가지 않으면 새날은 오지 않는다. 2015년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의 그늘을 보여주는 사건 하나와 선선한 바람을 선사해 준 사건 하나를 통해 2015년 한 해를 돌이켜 본다.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은 그 ‘새날’을 맞이하고 싶은, 부질없을지 모르지만 간절한 마음에서다.

2015년 상반기,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에 파란이 하나 일어났다. 부산의 협성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최민식사진상’ 대상을 사진가 최광호가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드러났다.

나는, 그 사진이 과연 모집요강에 나오는 바, 최민식 ‘정신’(요강에는 ‘사진철학’이라고 나와 있다.)을 지향하는 휴머니즘에 입각한 사진인지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며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였다. 운영위원장인 이상일 고은미술관 관장에게 공론의 장을 열어달라고 요청하였다.

공식적인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운영위원회는 물론이고 다른 어떤 심사위원도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사과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공론을 모아 새로 다시 출발하자는 것에 대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 후 이규상, 박진호, 박대원을 비롯한 몇몇 사진하는 사람들의 비판이 쇄도했고, 한겨레 곽윤섭 기자는 취재와 보도를 통해 좀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문제를 지적하였다.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는 그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일부 권력자들의 ‘짬짜미’를 통해 상을 나눠 주고 받는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입을 닫았다. 뒤에서 들리는 모함과 비난은 난무했지만, 앞에서 나오는 건 짐짓 침묵뿐이었다. 시쳇말로 ‘생 까는 것’, 그것뿐이었다. 시간은 흘렀고, 사건은 그들이 바라는 바대로 흘렀는지는 모르겠으나, 잊혀져 갔다.

널리 알다시피, 사진 특히 다큐멘터리 사진은 기록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에 그것을 평가하여 상을 준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굳이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해 상을 주어야 한다면, 요건을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아니면, 사진가 누구누구의 이름을 걸지만, 그의 사진 정신과 관계없이, 장르 구분도 없이 대상을 확대하는 경우도 있다. 두 경우 모두 분명하게 사전에 밝혀야 한다. 공로 혹은 업적을 평가해서 주는 경우가 아닌 응모제인 경우 특히 그렇다.

분명한 것은, 특정 사진가의 정신을 구현하는 사진을 대상으로 하면서, 응모라는 시스템으로 선정하는 경우는 여간 철두철미하게 하지 않으면 사단이 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개념이 이미 넓어질 대로 넓어진 상황에서 사진이라는 유추 언어의 속성을 갖는 매체가 특정 정신에 대해 귀에 걸면 귀 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정신’을 모집 요강에서 구체화시키지 않으면, 심사 권력이 자신이 주고 싶은 사람에게 상을 주고 대층 얼버무릴 가능성이 농후해 질 수 있다.

그런데 ‘최민식사진상’의 경우 ‘최민식의 사진철학/정신’을 구체화시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응모제로 심사를 했다. 그렇다면 그 ‘정신’은 사진가 최민식이 말한 바를 통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최민식의 ‘정신’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시대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은 사진가 최민식이, 사진가 자신이 살았던 사회적, 시대적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사회에 대한 비평가의 자세로 찍은 휴머니즘의 작가 정신이 있는 사진을 진정한 사진이라고 여러 차례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최민식사진상’은 이를 기준으로 삼아 평가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1

2

ⓒ 최민식, 《휴먼선집》 111쪽 (2013. 서울: 눈빛출판사)

최민식의 ‘사진철학/정신’을 기준으로 보는 관점에서, 사진가 최광호의 ‘천제’를 찍은 사진은 자격미달이다. 강원도 태백에서 특정일 하루 행하는 천제라고 하는 어떤 관제 행사를 찍은 사진으로 최민식의 휴머니즘을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최광호의 작품은 천제라는 행사의 이모저모를 스케치로 기록한 사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행사를 소재로 하여 최민식의 ‘정신’을 지향하고자 했다면, 사진 각각은 물론이고, 전체를 통해 시대정신에 입각한 휴머니즘을 담았어야 했다.

그의 사진이 최민식의 ‘정신’을 지향하는 사진상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가 되려면, 천제 행사와 관련하여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피소드를 추적하여 그 안에 담긴 시대정신에 부합된 휴머니즘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 안에 그 행사와 관련하여 있어 온 주변의 슬픈 혹은 가슴 저미는 혹은 끈질긴 ‘휴먼’의 이야기를 시대정신 차원에서 담았어야 했다.

최광호의 출품작은 천제라는 행사를 통해 전통이 어떻게 만들어져 재현되는가에 관한 기록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임은 분명하지만, 최민식 사진철학/정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작품이다. 어떤 특정 관제 행사에 대한 스케치 기록 사진을 ‘최민식사진상’ 본상 대상을 주었다 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심사위원이라고 하는 사람은 심사평을 통해 혹은 공론의 장에서 납득할 수 없다는 사람들을 납득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심사평이라고 나온 것을 보면, 대상 수상작이나 최종 탈락된 작품에 관한 것이나 거의 동일하다.

‘긴 시간, 같은 장소, 애정 어린 시각, 열심히 한 작업’은 대상 최종 심사 탈락자인 사진가 안성용 작품에 대한 심사평이고, ‘긴 세월, 몰두해온, 끈기 있는 작가’는 대상 수상자 최광호에 대한 심사평이다. 도대체 무엇이, 어떤 차별성이 그의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하게 만들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 심사평조차도 문제가 있다. 최광호라는 사진가가 긴 세월 동안 끈기 있게 작업을 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추호의 의심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가 ‘천제’ 작품을 도대체 얼마나 길고 어떤 끈기로 작업을 했다는 말인가? 탈락자 안성용은 제출한 작업을 긴 시간 동안 해온 것이 사실인데, 수상자 최광호는 어떠한가? 그는 제출된 작품을 도대체 몇 년 동안 작업을 했는지, 일 년에 하루 행해진 행사를 도대체 몇 년 동안 참여해서 어떤 끈기로 작업을 했는지를 심사위원들은 파악했어야 했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져갔음에도 심사위원들 어느 누구도 일언반구,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심사위원이라는 자리는 서릿발 같아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판관으로서의 의무를 지켜내지 못할 것 같으면 그 자리를 맡지 말아야 한다.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심사위원이 앞으로 한국 사진판에서 심사를 다시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선선한 바람도 분다

‘최민식사진상’ 문제로 그늘진 한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계에 작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12월 9일 대한사진예술가협회가 제14회 ‘이해선사진상’ 수상자로 일본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씨를 선정, 수상했다. ‘이해선사진상’은 여러 가지 점에서 ‘최민식사진상’과 비교 된다.

‘이해선사진상’은 대한사진예술가협회라는 사진계에서 큰 영향력이 없는 어느 작은 단체에서 주관한 상이다. 그래서 상금도 없다. ‘최민식사진상’은 중견 기업체에서 만든 재단에서 하는 일이라 대상에게 주는 상금이 3천만 원이나 된다. 그에 비해 ‘이해선사진상’은 오로지 사진인의 명예밖에 주지 못한다.

‘이해선사진상’은 심의위원회가 여러 대상자들을 심의하여 수상자를 결정한다. 2015년에는 구와바라 시세이 씨를 선정하였는데, 그 이유로 지난 50년 동안 그가 “기록해야 할 역사를 그 시대의 유산으로 남긴다.”는 철학을 가지고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작업하였다는 점을 들었다. 그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국내에 아무 연줄도 인맥도 없는 그가 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 상에 상금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는 한국의 일부 사진 권력에 의해서는 별로 후한 평가를 받지 않는 사진가다.

3 (1)

ⓒ 남준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는 1964년 격변하는 한국의 시대를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하였으니 지금까지 50년이 넘게 외국인 그것도 민감한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상황에 처한 일본인으로서 기록하였다. 그의 작업은 50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갔다. 한일국교정상회담 반대 시위, 청계천변에 사는 도시 빈민, 베트남 파병, 팀스피릿 한미군사훈련, 판문점과 비무장지대, 여러 차례의 대통령 선거, 민주화운동 등을 비롯해 각 시대를 살아온 가난하고 소외당한 인민들의 삶을 현장에서 기록하였다.

4

ⓒ 구와바라 시세이, 《격동한국 50년》 88쪽 (2015. 서울: 눈빛출판사)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이 2014년 사진가 송년 모임에서 한 말이 뇌리를 스친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의 역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살아온 것이 무엇보다도 자랑스럽다, 그렇지만 다시 태어나면 이런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살고 싶지 않다는 그 말. 처절한 가난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뼛속 깊은 데서 배어나온 말이다. 숙연해지 않을 수 없는 사진가로서의 자세다.

그의 사진은 최민식 사진과 닮았다. 올곧은 사회 참여와 시대정신을 갖춘 기록 사진이라는 점이 같다. 그리고 같은 점이 또 하나 있다. 소위 권력이라는 사람들이 사진을 폄하한다는 점이다.

2015년 벌어진 사진상을 둘러싸고, 최민식과 구와바라 시세이 두 사진가의 사진과 사진가로서의 삶을 통해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한국의 모습을 본다. 돈 있는 자, 힘 있는 자들은 권력 휘두르는 재미로 살고, 그들 주변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이고, 그 거짓과 위선에 돈 없고 힘 없는 자들은 좌절하지만, 그래도 간간이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 속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 그나마 삶의 의욕이 한 번씩 생기곤 한다.

2015년 사진계는 ‘최민식사진상’이라는 그늘에 ‘이해선사진상’이라는 작지만 선선한 바람이라도 분 해였지만, 대한민국 이 땅은 이명박-박근혜가 만든 쉬운 해고,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라는 암흑에 그 어디서도 바람 한 줄기 불어오지 않는다, 어찌 해야 할꼬?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