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협정,
    새로운 그린라운드 출범
    [에정칼럼] 평가 아닌 실천 필요
        2015년 12월 22일 09: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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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2일, 파리에서 새로운 기후변화협정이 체결되었다.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은 2020년 이후 전 세계가 참여하는 국제기후레짐의 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각국의 비준 절차가 남아 있지만, 2016년 4월부터 1년간 각국이 서명하여 유엔에 제출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중요한 협상 결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숱한 쟁점들을 협정문에서 제외한 최소주의를 택해 논란의 여지를 제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총회장에 설치된 에펠탑 조형물에 걸려 있는 기후정의 요구사항들. 출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총회장에 설치된 에펠탑 조형물에 걸려 있는 기후정의 요구사항들. 출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파리협정에 대해 많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인류와 지구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낙관론부터 향후 논의기구(APA)와 후속협상을 통해 신기후체제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현실론, 그리고 파리협정이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는 물론 유엔기후변화기본협약(UNFCCC)보다 후퇴했다는 비관론까지 다양하다.

    낙관론의 주장은 이렇다. 2013년 이후의 기후체제를 마련하려 했던 포스트 교토의정서 협상이 사실상 실패한 상황에서 파리협정은 구사일생인 셈이다. 그것도 선진국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가 참여하기 때문에 과거보다 진일보하였고, 감축 목표를 할당하는 의무적 방식이 아니라 자발적인 방식(INDC)으로 설정하여 각국의 능동적인 행동을 점진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현실론은 낙관론의 입장과 비슷하지만, 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세부적인 쟁점은 후속협상에서 계속 논의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신기후체제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교토의정서 2차 기간(2013~2020)이 공식 발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에 대한 법적 체계의 불확정성이 유지되고 있고, 이 기간 동안의 감축목표의 상향에 대한 어떤 결정도 없었기 때문에 남은 5년에 대한 행동을 기대하기 난망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비관론은 파리협정이 후퇴를 거듭하다 “실패”했거나 “사기”를 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하기로 노력한다는 문구가 삽입되긴 했지만, 그 진정성은 찾기 어렵다고 본다. 2030년까지의 1차 INDC의 취합 결과, 최소 2.7도 상승이 예측되는데, 2023년부터 5년마다 유엔의 검증과 상향조정(stocktaking)으로 1.5도는커녕 2도 목표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0.85도 가량 상승했고, 배출된 탄소의 온실효과를 고려하면 1도 이상 상승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1.5도의 정치’가 상징뿐 아니라 실체를 갖기 위해서는 2050년경에 탈탄소 사회로 전환하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화석연료 사용을 중지하는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최종 협정문의 세부 조항에는 ‘탈탄소’와 ‘화석연료’라는 단어는 삭제되거나 제외되었고, 전문에 개도국과 빈국의 ‘재생에너지’ 촉진의 필요성만 언급되었다. 그리고 탄소 배출량 순제로(net zero)-탈탄소나 화석연료 사용중지가 아닌 ‘배출과 흡수의 균형’-는 2050~2010년 사이로 잡혀 있다(그렇다고 올해 6월 본에서 G7이 선언한 ‘2100년 탈화석연료’보다는 낫다고 안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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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협정문을 휴지로 만든 전시물. 출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물론 1.5도는 2도 목표 설정이 보수적이라는 비판 진영의 대안이라는 점에서 존중해야 마땅하다. 또한 앞으로 십수년 동안 기본 문서가 될 협정문에 포함되었으니 충분한 성과로 인정할 부분도 있다. 이런 점에서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규모 상쇄 장치를 상정하고 있고 탄소시장(SDM)의 지구적 확장을 설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1.5도와 순 제로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다. 기후정의가 바라는 것은 실 제로(actual zero)의 탈탄소다.

    한마디로 파리에서 화석연료의 종말이나 재생에너지 100%가 결정된 적은 결코 없다. 총회장에서처럼 한국 정부가 국내에서 당장 할 일은 거의 없다. 기한 내에 국회에서 파리협정을 비준하는 것 말고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정상화’를 위한 대책이 전부일 것이다.

    파리협정을 새로운 희망이라 말하기 전에, 이 역사적 합의 곳곳에 숨어 있는 함정들에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 역시 그린워시(green wash)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화석연료 보조금은 연간 4,520억 달러에 이르지만, 기후재정 목표인 연간 1,000억 달러는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재정목표 조정은 2025년에서야 논의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당장 벌어지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한 ‘손실과 피해’에 대해서 선진국은 ‘법적 책임과 보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근본적으로 따지면, 기후변화는 온실가스 때문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 그리고 이것들이 선택한 에너지원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파리협정은 자본과 권력을 통제할 힘도 수단도 없다. 파리총회를 보이콧하려는 기후정의 진영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이 지키려던 ‘레드 라인’은 예상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뉴욕처럼 시작해서 시애틀처럼 끝내야 한다”는 선동 역시 테러로 인한 비상사태의 분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기후협정은 평화협정이고 안보협정이라는 논리는 현실에서 무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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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2일, 에펠탑 인근 기후정의 집회. 출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코펜하겐처럼 실망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실패를 예견한 탓에 “기후 파업(Climate Strike)”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 정도였으니. 이제 파리총회를 계기로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다양한 전선이 더욱 중요해졌다.

    파리에서는 국제시민사회의 주장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기후정의로 수렴된 인상을 줄 정도로 한 목소리로 표출되었다(물론 우리 앞에는,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2012)에 의하면, ‘녹색자본주의’와 ‘사회-자유적 그린뉴딜’과 ‘녹색사회주의’라는 경쟁하는 모델이 놓여 있지만). 그리고 어느 때보다 에너지민주주의(지역화와 공유화)와 에너지시민성 그리고 생태전환과 탈성장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었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례들이 활발히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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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너지협동조합 부대행사에서 축사를 하는 세골렌 루아얄 환경․지속가능한발전․에너지장관. 출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우리에게 남은 일은 파리협정이 기후변화 대응의 터닝 포인트가 맞는지 하는 사후적 평가가 아니라 ‘즉각적인’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실천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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