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친숙한 근대,
    철도는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나
    [책소개]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박흥수/ 후마니타스)
        2015년 12월 19일 12: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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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20년 동안 직접 기차를 운전하고 있는 현직 철도 기관사이며, 철도 사고, 철도 파업 등 관련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해 온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 객원연구위원이자, 이른바 (3대 덕후 중 하나라는) ‘철도 덕후’로 잘 알려진 박흥수 기관사의 두 번째 책이다.

    철도가 있는 역사, 근대를 관통하는 철도 이야기

    이 책은 철도가 있는 역사, 특히 근대를 관통하는 철도 이야기다. 철도가 근대의 발명품인 만큼 철도의 역사는 곧 근대의 역사이기도 하다. 철도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곳에서 살아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을 미지의 땅, 가능성의 땅으로 데려다 주었지만, 수많은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입구까지 실어 나르기도 했다. 값싼 노동을 이역만리에 공급했고, 소모품처럼 병사들을 끊임없이 전장에 투입했다. 이 책은 철도의 역사를 통해 이 같은 근대의 양면성, 비극과 희망의 수많은 장면들을 보여 준다.

    달리는 기차

    몇 장면만 살펴보자.

    철도의 종주국 영국에서 초기 철도 공사의 주역은, 대기근으로 이주해 온 아일랜드 이민자들이었다. 영국은 아일랜드 대기근을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외면했지만, 그 하나님의 심판 덕에 영국의 철도는 쭉쭉 뻗어 나갔다.

    19세기 중엽, 이미 영국 철도 길이의 세 배를 넘어선 미국에서는 동부에 철도망이 생기자 사람들은 서부 끝까지 도달하는 대륙횡단철도를 꿈꾸었다. 그러나 대륙 횡단을 위해서는 구름을 뚫고 서 있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어야 했다. 중장비가 없던 시절 화강암 협곡에서 목숨과 바꿔 철도를 놓은 사람들은 열의 아홉이 중국인이었다. 아일랜드 노동자들도 도망갔다는 이 구간에서, 중국인들은 폭파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눈사태로 생매장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만리장성의 미국판이었다. 당시 인간 취급도 받지 못했던 중국인들이 미국에서 시민으로 인정받게 되기까지는 정말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동아시아로 돌아와, 일본은 영국이 철도 부설권 획득을 통해 일본을 밀고 들어갔듯이,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 부설과 함께 조선을 장악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5년 도쿄를 출발해, 일본이 (조선인들을 가혹하게) 동원해 부설한 경부선 열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 고종을 만나 을사늑약을 밀어붙였다.

    이후에는 경부선과 경의선이 부설되고 압록강 철교를 넘어 남만주철도(만철)와 동청 철도가 일본에 장악되자 도쿄에서 유럽행 열차표를 끊는 일이 가능해졌다. 조선에 종단 철도를 부설하고 만주의 철도를 장악해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일본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이 시절이 일본 우파들에게 마음의 고향, 황금시대인 이유다. 누군가에게는 침략과 수탈과 눈물의 시대가 누군가에게는 노스탤지어와 황금시대인 셈이다.

    그래서 박흥수 기관사는 이렇게 말한다.

    “철도는 인류의 노스탤지어다. 그것도 쓰라린 추억으로 축적된 시공간이었으며 끔찍한 트라우마를 남긴 거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철도는 의지 없는 존재이자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또한 우리는 이 거인의 어깨를 타고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이 이제 철도의 2막은 새로운 반전을 준비해야 한다. 식민지 침탈과 전쟁의 도구였던 철도가 소통과 연대의 도구로 변신하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적대적 갈등을 불식시키고 더 가난한 나라와 사람들에게 희망을 나르는 착한 거인이 되는 것이다. 그 출발점이 서울과 평양, 신의주를 잇는 노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서울역에서 런던행과 파리행 열차표를 끊으며 미소 지을 수 있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짧은 저자 인터뷰

    – 자신이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선생님은 그런 것 같다. 원래 기차를 좋아해서 기관사가 된 것인지, 기관사가 돼서 기차를 좋아하게 된 것인지?

    아이들은 원래 기차를 좋아하는데, 나도 어릴 때 그 정도는 좋아했다. 그리고 집에서 10미터만 가면 기찻길이 있어서 늘 가까이에서 철도를 보면서 자랐다. 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면서 기차를 탈 일도 있었지만 그렇게 특별한 대상은 아니었다. 우연치 않게 철도청에 입사하고 기관사가 되고 나서야 문득 그런 느낌이 들었다. 멀리 돌았지만 결국 내가 와야 할 곳에 왔구나 하는 느낌말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달까. 그리고 직장을 갖게 되었다는 안도감, 나도 먹고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여유가 생기고 즐겁고 재미있었다. (물론 내가 입사할 때는 휴일이 한 달에 하루도 없었다. 미치는 줄 알았다. 월 근무시간이 3백 시간에 가까웠다. 지금 165시간 근무니까 거의 두 배였던 셈이다.)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 등 고충이 있기는 하나 이와는 별개로 승객들을 싣고 달릴 때 큰 기쁨을 느낀다.

    – 기차의 매력은 무엇일까?

    설렘이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설렘을 갖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편안한 설렘이랄까. 사고율로 따지면 기차만큼 안전한 교통수단이 없다. 여행을 한다는 설렘과 덜컹덜컹…… 주기적으로 바퀴와 레일이 주는 소음이, 뱃속에 있을 때 들었던 어머니의 심장 소리처럼 느낀다고 누군가 그러더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고,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지 않은가?(고속버스 탈 때 맥주를 마음껏 마셨다가는 큰일난다). 기차 타면서 맥주 한 잔 안하면 기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음… 기차에 대한 장점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 얼마 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오셨는데 또 타고 싶은 기차가 있다면?

    전 세계 열차를 다 타고 싶다!! 다롄에서 장춘, 하얼빈까지 만철을 타면서 답사하고 싶고, 마추픽추 철도, 쿠바 철도도 타보고 싶고, 미 대륙 횡단 열차도 타고 싶다. 캐나다 대륙 횡단 열차도 타고 싶고, 호주 횡단 열차…… 기차란 기차는 다 타고 싶다. 다만 돈과 시간이 없어서 못 탈 뿐이다.

    – 첫 번째 책(<철도의 눈물>)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마디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쓴 것이다. 철도와 관련된 역사랄까 이런 책을 너무 보고 싶었고 누군가 써 주길 바랐는데, 그동안 나온 책들은 학술 논문 형태이거나 번역서라 한국 철도 이야기를 담지 못해서 더 나이 들기 전에 나라도 써야겠다는 욕심을 내 본 것이다.

    – 철도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나오는 책은 모두 읽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떻게 책을 읽는지?

    사실 문자 홀릭이 있어서 잡식성 독서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읽다 보면 운명처럼 흘러 들어가는 길이 있다. 사진집, 그림 책, 역사 책, 문학책…… 어떤 분야든 철도 이야기가 나오는 책들을 읽다 보면 구슬이 하나씩 떨어진다.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꿰는 것이다. 좀 달리 말하자면, 책을 읽을 때 철도라는 그물로 보니까,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빠져나가더라도 철도 관련된 내용이 그물에 걸린다. 나는 요리사가 되어서 이 요리 재료들로 요리를 하는 것이다.

    – 다독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불규칙한 기관사 생활에 언제 책을 읽는지?

    근무시간이 불규칙해서 퇴근 시간대도 불규칙하다. 아침에 퇴근하면 집에 가서 자겠지만, 오후 11시, 12시쯤 퇴근하면 낮술을 먹기에는 멤버를 구성하기에 이르고, 집에 가기에는 또 뭔가 맹숭맹숭하고…… 그럴 때 도서관에 간다. 오늘은 뭘 읽으면 좋을까 공룡처럼 어슬렁거린다. 냄새를 맡으면서. 제일 많이 가는 곳이 이 주의 신간 코너이다. 총 다섯 권을 빌릴 수 있는데, 그 중 두 권 정도는 신간을 빌린다. 또 잘 가는 곳은 900번대 역사 코너이고, 300번대도 자주 간다. 소설 문학도 많이 읽는다. 줄이 끼워지면 그때부터는 그 책이 참고하거나 인용한 책들을 찾아보는데, 읽을 것이 또 줄줄이 딸려 나온다. 빌려서 읽다가 정말 좋은 책인 것 같으면 서점에서 구입한다. 줄을 쳐야 하니까. 다른 서점이나 헌책방에서도 책을 많이 사는 편이라, 집이 거의 헌책방이다.

    – 요즘 관심 분야는?

    근대 시기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특히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일제 강점기 때 연해주, 만주, 동아시아 등에 관한 책들을 섭렵 중이다. 물론 기차 이야기가 빠지지는 않지만, 만주나 연해주에서 한인들이 겪었던 역사를 들여다보면 웬만한 서부영화보다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독립운동사의 70퍼센트 이상, 근대 한인들의 삶 가운데 대부분의 이야기는 묻혀 있다. 20, 30퍼센트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한국은 이랬구나 저랬구나 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확장된 개념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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