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월308시간 노동착취 심각
    초과노동, 비닐하우스 기숙사비 등
        2015년 12월 18일 07: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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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을 맞아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등 국내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내몰린 이들의 현실을 외면하는 고용노동부를 규탄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주공동행동 등 관련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은 18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숙사비 선 공제 반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근로기준법 63조 농축산업에 한해 노동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적용 제외 단서조항 폐지 ▲농축산업 이주노동 현장에 대한 노동부 관리·감독 강화 등을 촉구했다.

    특히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업주의 노동착취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정해진 근로시간 이상으로 일해도 초과임금을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은 고용주가 제공하는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기숙사를 매달 30~50만원씩 내고 지낸다.

    이들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고용주 아래서 계속 일할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에겐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초과근로가 만연하고, 비닐하우스에서 재우면서도 매달 원룸 월세 값에 달하는 돈을 받아가는 고용주의 행태가 개선되지 않는 원인 또한 여기에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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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자회견(사진=정영섭님 페북)

    고용노동부, 근로기준법 독소조항 근거로 이주노동자 착취 문제 회피

    이주공동행동 등 이주단체들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고용센터에서 발급하는 농축산업 2013년 표준근로계약서상 노동시간과 실 노동시간이 80시간 이상 차이가 난다.

    2013년 표준근로계약서를 살펴보면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하고 휴게 1시간, 월 2회 휴일이다. 하루 11시간, 한 달에 28일 근무하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계산하면 이주노동자가 한달간 근무하는 시간은 총 308시간이다. 그러나 해당 표준근로계약서에는 버젓이 월 노동시간이 226시간으로 기재돼 있다. 82시간, 일주일 이상(1일 11시간 근무 기준)의 노동력을 무상으로 사업주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국내 여러 이주단체 등의 항의가 빗발치자 정부는 근로계약서를 변경했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개선이 아닌 계약서를 더욱 불명확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정부가 내놓은 2014년 표준근로계약서엔 ‘00시 00분 ~ 00시 00분, 1일 휴게 2시간’으로 근무시간이 불명확하게 기재돼있는 반면 ‘근무시간 월 226시간 월 통상임금 1,177,460원’은 유지했다. 초과근로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독소조항인 근로기준법 63조를 근거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에 대한 책임을 외면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계속되는 문제 제기에 2015년 표준근로계약서 양식 자체를 바꾸었다. 일 휴게시간을 3시간 20분으로 늘려 월 226시간의 근로시간을 맞춘 것이다. 대신 숙박비용과 식사비용 근로자 부담금액을 명시하게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노동부의 관리 감독 강화가 없는 한 근본 대책이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주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단체들은 “2013년부터 쭉 지적되어온 표준근로계약서의 문제에서 고용노동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드러난다”며 “고용주들이 근무시간을 조작해 삭감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노동시간 입증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주노동자에게 떠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시간 책정에 대한 관리·감독도 대안도 마련하고 있지 않은 노동부를 규탄한다”고 덧붙였다.

    비닐하우스에서 숙식해결… 심지어 남녀 혼숙 기숙사도
    월 20~50만원 월급에서 선 공제하니 한달 월급 고작 80만 원

    비닐하우스 등 열악하기 짝이 없는 공간을 기숙사로 제공하면서도 20만 원에서 최대 50만 원까지 월세 값 수준의 기숙사비를 월급에서 선 공제하는 고용주도 많다. 경기도 이천, 충남 논산 등지에선 노동시간과 관계없이 최저임금액에서 기숙사비를 선 공제하고 차액만 지급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 버렸다.

    이주공동행동 등이 접수받은 한 사례에 따르면 전혀 모르는 남녀를 한 방에서 6개월 동안 같이 지내게 하면서 1인당 30만원씩의 기숙사비를 공제하게 했다. 이 노동자는 기숙사비를 제하고 2015년 한 달 손에 쥔 돈은 고작 80~90만원 정도다.

    농축산업 고용주들은 기숙사비 선 공제를 임금 착취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 고용주들 사이에선 “내년에 최저임금이 오르니까 기숙사비도 5~10만원씩 인상하겠다”는 말이 나도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주단체들은 “노동부는 숙박시설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상한선을 정하여 관리·감독하겠다는 말만 읊어왔다”며 “농축산업 노동 현장의 갈등에서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노동부의 직무유기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 문제에 손 놓고 있는 고용노동부
    사업장 이동 자유 제한…이주노동자 근로조건 더 악화시켜

    이주노동자는 고용주에게 사업장 변경신청 서명을 받지 못하면 이직이 불가능하다. 사업장을 이동하려면 열악한 근로조건과 노동착취 등에 대해 노동자가 직접 증명하고 고용노동부에 요청하거나, 고용주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등은 노동권 침해 상황에 처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신청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일부 악덕 고용주는 사업장 변경을 허락하는 대가로 이주노동자에게 150~200만 원을 받아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기이한 규제’와 고용노동부의 방관을 악용한 사례다.

    이처럼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고용주 입장에서 열악한 근로조건을 굳이 개선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이를 없애는 게 이주노동자의 전반적 노동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주단체들은 “노동·생활환경 모두가 취약한 상황에서 사업장 변경만이 이주노동자의 유일한 희망”이라며 “이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전적으로 고용주가 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심각한 인권·노동권 침해 상황에서, 고용센터와 노동부에 사업장 변경을 요청한 노동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라!’라는 말만 반복된다며 노동부를 찾아가기를 아예 포기한다”며 “노동부에 관리·감독할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하다면, 최소한 문제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한 직접 조사와 해결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노동부는 농축산업 이주노동 현장의 문제를 제대로 관리·감독하고, 문제를 해결한 대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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