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당국회담과
    모란봉악단의 공연 취소
        2015년 12월 18일 10: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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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1~12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 차관급 당국회담이 합의문은커녕 다음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하고 결렬됐다.

    또 12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북한 모란봉악단이 예정되었던 공연을 전격 취소하고 북으로 귀국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신화통신’은 “공작(업무) 측면에서 서로 간의 소통 연결에 원인이 있다”라는 보도만 내놓아 그 배경을 둘러싸고 갖가지 억측이 나돌고 잇다.

    남북 당국회담의 결렬에 대해서는 모처럼의 당국회담이 성사되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아 실망하면서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예견된 결과였다는 평가들이 많다.

    황부기 남측 수석대표의 브리핑이나 북의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남측은 전면적 생사 확인과 서신 교환 등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드레스덴 선언 이후 계속 제안한 환경‧민생‧문화 등 3대 통로 개설, 비무장지대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 개성공단 3통 문제 등의 포괄적 의제를 제시한 반면, 북측은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와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연계해 제시했다고 한다.

    금강산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문제의 연계에 대해 남측은 그 성격이 다른 문제로 연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거절했는데, 이에 대해 북측은 금강산관광 재개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 토의를 거부하는 남측의 그릇된 입장과 태도로 인해 이번 회담이 아무 결실이 없이 끝났다고 말했다.

    사실 이번 회담의 핵심은 금강산관광 재개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여부이고 이것은 이미 예측된 것이었는데, 회담에서도 확인되었듯이 박근혜 정권이 이 문제에 대해 워낙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었다.

    박근혜 정권이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혹시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회담 직전 홍용표 통일부장관이 8.25 합의의 모멘텀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그런 회담을 하는 것”이라고 말해 그런 기대가 실현될 가능성은 이미 낮았다고 할 수 있다.

    당국-모란

    남북당국자회담(위)과 모란봉악단의 철수

    모란봉악단의 공연 취소 배경과 파장은?

    남북 당국회담이 ‘혹시나’ 하는 기대가 ‘역시나’로 귀결된 데 비해, 모란봉악단의 전격적인 철수는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바였기에 많은 사람을 의아하게 했다. 그 원인에 대해 일각에서는 리허설을 본 중국측이 김정은 찬양 일색의 노래를 빼라고 했고 이에 대해 북측이 강력히 반발했다고도 하고, 다른 관계자는 중국 측이 공연 관람 인사의 급을 낮추자 김정은 위원장이 격노해서 그렇게 되었다고도 한다.

    아무튼 모란봉악단의 방중 공연은 중국 정부가 초청을 했고 북에서는 권력 서열 5위의 김기남 비서가 배웅하는 등 양측이 상당한 공을 들였고, 이는 류윈산 상무위원의 방북 이후 훈풍이 불고 있는 북중 관계를 더욱 공공이 하며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토대를 닦는 것으로까지 분석되었기에 그 배경과 파장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과 중국 체제의 특성으로 보아 신화통신의 보도와 그것을 되풀이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답변 이상의 것이 공식적으로 보도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진짜 원인을 확인하기는 힘들다. 다만 정황상 김정은의 ‘수소(폭)탄’ 발언이 그 직전에 있었는데, 당시 중국 외교부가 “관련 당사국이 정세 완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더 많이 하길 희망한다.”라고 우회적이지만 공식적으로 김정은 발언을 비판한 바 있는데, 이것과 모란봉악단과 관련한 중국 측의 모종의 조치가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고 추측할 수 있다.

    북측으로서는 이른바 최고 존엄의 발언에 대해 중국이 비판하고 나선데 이어, 공연 관람의 격을 낮추거나 그 내용에 시비를 걸자 중국에 대해 결코 굽힐 수 없다는 자존심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전격 철수를 결정했을 수 있다.

    모란봉악단 전격 철수가 이후 북중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중국은 될 수 있으면 수습하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진단했다. 중국 관영매체인 <환구시보>가 14일 사설에서 “모란봉악단의 전격적인 철수가 중-조 관계에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부정적 영향이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도 그런 진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배경이 결국 수소폭탄 발언 등 북한 측의 핵능력의 지속적인 증강과 이를 업은 미국에 대한 평화협정 체결 관련 외교적 공세 대 중국 측의 6자회담 조속 재개와 이를 위한 북한의 대외적 핵능력 과시 자제에 대한 요구가 충돌한 것이라면 북중 관계는 당분간 냉각기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국회담 제안, 왜 했던 건가?

    8.25 합의에서의 당국회담 개최 약속에도 불구하고 계속 열리지 않던 회담이 모처럼 재개되었으나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난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크게 실망스러운 일로서 남북 당국 모두에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남한 당국은 그 동안 수차례 당국회담을 제안했는데 북측이 호응하지 않는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이렇게 막상 만나서 상대의 핵심 요구는 아예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결국 아무런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하며 얼굴만 붉히고 끝낼 거면 회담은 왜 제안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산가족 상봉은 꼭 해야 하고, 또 정례화해야 하며 상시적 상봉이 실현되기 전에 생사 여부의 전면 확인도 필요하다. 하지만 북으로서는 그에 대해 많은 부담을 느끼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고 그런 북한을 설득해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면회소가 금강산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의 수시 정례화를 위해서도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더 자주 더 넓게 열려야 한다. 즉 금강산관광은 재개해야 하며, 박왕자씨 사건과 같은 일의 재발을 막을 북측의 공식적인 담보가 필요하다면 그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에 이르면 될 일이다.

    그러나 우리 당국은 미국의 반대, 북한 제재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와의 상충 가능성 등을 내세우며 재개 자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으로의 현금 유입과 그것의 활용을 통한 북의 핵개발 등 보수층의 오래된 부정적 입장과 논리를 이 정부가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면 그것은 한심한 일이다.

    금강산관광이 북의 1차 핵실험을 막지는 못했지만, 금강산관광이 중지된 이후에도 북은 2,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은 노동자들의 인력 수출 및 중국에 대한 지하자원 수출 등을 통해서 상당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즉 금강산관광 지속과 북의 핵능력 증강 정책은 직접적 관계가 없으며, 금강산관광을 계속 중지한다고 해서 북의 핵실험이나 핵능력 증강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금강산관광은 말 그대로 남북 교류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판단할 일이다. 더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것이 필요하다면 금강산관광을 계속 막을 이유가 없다. 더구나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와 확대의 지렛대가 되는 데야 말할 나위가 없다.

    북한 당국도 지난 당 창건 기념일 당시 김정은 제1비서의 핵 관련한 발언을 자제하고 ‘인민 제일’을 내세웠던 정책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남한 및 주변국에서 “북이 핵문제에 대해서도 적어도 동결 등의 전향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제 6자회담 등 대화를 재개할 때이다”는 판단이 대세로 자리 잡게끔 해야 한다. 평화협정 체결의 필요성에 대해 공세를 펼 수 있지만, ‘선 비핵화’ 주장이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으며 따라서 해법으로 바람직하지 않듯이, ‘선 평화협정’ 주장도 남한과 미국이 받아들일 리 없으며 따라서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2.29 합의와 유사한 동결과 보상의 교환을 통해 문제를 푸는 계기를 만들고, 비핵화 논의 6자회담과 평화협정 논의 평화회담(한반도평화포럼 등)을 병행해가자는 데 합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일대박’을 이야기하며 대화 공세를 하고 가끔 대화를 하면서도 남북대립은 고착화되고, 북핵 해결을 내세우면서도 한반도 비핵화의 가능성은 점점 닫혀가고 안보불안은 심화되는, ‘말과 현실의 괴리’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 대해 낙담하고 정권교체 전에는 당분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아예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하거나 그냥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책임이 있는 모든 당사국, 특히 국내정치를 우선하며 이런 상황의 지속에 따라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한국의 처지를 방기하고 있는 대통령과 정부정책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문제를 연구하는 정책가이며, 진보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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