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곶감 세 개면
    호랑이도 물리친다?
    [다른 삶 다른 생각] 곶감 농사
        2015년 12월 16일 10: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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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이야기 한번 해볼까?

    신1

    옛날 옛날에 산골 외딴집에 호랑이가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선 아이의 울음이 들려왔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과자도 주어보고 엿도 주어보지만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습니다. 엄마는 밖에 여우도 와있고 호랑이도 왔다고 하지만 아이는 계속 울어댑니다.

    엄마는 우는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여기 곶감이 있다고 하니 아이는 신기하게도 울음을 그칩니다. 호랑이는 자기보다 더 무서운 게 곶감이라는 생각에 도망가려다 배가 고파 소라도 잡아먹어야겠다싶어 외양간으로 갑니다.

    마침 외양간에는 소를 훔치러 소도둑이 와있었는데, 깜깜한 밤이라 앞이 보이지 않았던 소도둑은 호랑이를 소라고 생각하여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탔습니다.

    호랑이는 소도둑을 곶감이라고 생각하고 곶감이 등 위에 올라탄 줄 알고 놀래서, 곳감을 떨어뜨리기 위해 산속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온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어렸을 적엔, 당근 호랑이도 없어졌고, 나름 도시에서 살았기에 외양간에 소도 없었지만, 곶감은 알았다. 하지만, 곶감이란 것은, 호랑이 보다 무서운 게 아니라, 설이나 추석 제사상에 올라가는 아주 귀한 음식이고, 제사가 끝난 다음 겨우 한 입 베어 먹던, 워너비 먹거리였다.

    신2

    세상살이가 좀 나아지던 학창시절엔, 가끔 엄마가 겨울이면 수정과에 잣과 함께 곶감 하나를 거의 조각 조각 내어 띄워주곤 했고, 담배랑 술이랑 친해지면서, 곶감에 대한 미련과 추억은 마감이 되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곶감이, 다시 내 인생에 등장한 것은, 지리산에 내려온 첫해였다. 지리산의 첫해 겨울을 나던 지리산의 작은 암자 뒤엔 생전 처음 들어본 고종시라는 감나무가 있었고, 거짓말 좀 보태면 나무 하나에 감이 수백 개는 달려있었다.

    도시적 감성으로, 그냥 “와 이뿌다”, “맛있겠다”라는 말을 할 즈음, 산사에 같이 기거하던 선배가 곶감 만들자면서, 감을 따기 시작했다. 덩달아 며칠을 감나무에 매달려 감을 따고, 물론 생전 처음으로 감을 딴다. 그때 알았다. 감나무 가지는 약해서 잘 부러지고, 감 따는 철이면 마을마다 감나무에서 떨어진 사람이 꼭 있다는 것을.

    그런데, 감이 어떻게 곶감이 되지?

    감자 칼로 감을 깎기 시작한다. 더듬 더듬거리던 손놀림이 점차 익숙해지고, 감 한 접씩(도시 사람들아, 한 접은 감 100개를 말한단다) 줄에 꿰어 덕장에 차례로 늘어놓기 시작한다. 한 접, 또 한 접을 깎아도, 감은 줄어들지를 않고, 거의 꼬박 일주일을 깎아 한 동을(도시사람들아, 한 동은 감 100접을 말한단다. 그러니 감 만개지) 매달았다.

    신3

    아침이면, 절 뒤 켠 덕장에 가서 감이 잘 말라가나 쳐다보는 게 일과가 되고, 언제나 맛을 볼랑가 덕장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나는 어린 시절 제사상에 오른 곶감을 쳐다보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근 한 달이 지날 무렵, 곶감 맛을 본다, 반시(반쯤 익은 곶감)를 생전 처음 맛본 그날, 나는 세상에는 설탕이나 꿀보다도 더 단맛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날부터 아침이면 슬쩍 한입 넣고, 점심이면 또 한입, 밤이면 에라이 모르것다면서 한 웅큼씩 떼어와 곶감에 맺힌 어릴 적 포한을 기어이 풀고야 만다.

    신4

    그런데, 그런데, 올해는 난리가 났다.

    10월말부터 곶감을 깎는데, 날씨가 겨울 날씨가 아니게 포근하고, 늦가을 장마가 들어 한달 내내 눈 내리고 비 내리면서, 곶감에 곰팡이가 피고, 녹아내리고 말았다. 곶감의 최대 생산지인 상주에서는 곶감 총생산량 1만332t의 35%인 3천627t에 피해가 발생하여, 436억 원의 피해가 발생하고, 우리 옆 동네인 함양에서는 16만 접 중 35%인 5만5000여 접의 곶감이 피해를 입었다. 산림청의 보도에 의하면 올해 곶감 생산계획량(2만7800톤)의 절반에 가까운 45%(1만2500톤)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 된다.

    동네 아랫집 후배도 곰팡이로 곶감 6000개를 밭에다 묻어야 했고, 동네 어르신들 곶감 덕장도 곰팡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난리다. 우리 집도 먼저 깎아 놓은 감들이 녹아내리고, 곰팡이로 뒤덮였다. 에고 아까운 것, 눈물을 머금고 닭장에다 버린다.

    신5

    심기일전, 다시 곶감을 깎는다. 11월말 곶감이 한창 말라가야 할 때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곶감을 깎는다. 사실, 산골에서 겨울철 소득 작물로 곶감만한 게 없다. 흔히 겨울철은 농한기니깐 먹고 놀아야한다고 말하지만, 겨울이라고 누가 거저 밥 멕여 주지 않기에, 누구는 절임배추를 팔고, 누구는 산에 가서 겨우살이를 따서 팔고,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겠기에(아, 이렇게 말하니 좀 비장하다), 나는 곶감을 깎는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는 “아 이런 곶감 값이 비싸겠군” 하면서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지만, 곶감 농사를 짓는 농꾼들의 입장은 시중의 곶감이 비싸든 말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가 주저리 주저리 곶감 이야기를 하는 것은, 혹시 시중에 팔리는 곶감이 예전보다 좀 비싸더라도, 이런 사정이 있다는 것을 좀 알아달라는 하소연이다. 더불어 곶감엔 호랑이를 물리친 옛이야기가 담겨있고, 어릴 적 제사상에 대한 아쉬움과 추억이 깃들어 있지 않은가? 올 겨울은 곰팡이로 눈물 머금은 농꾼들을 위해 곶감을 한 입이라도 더 먹어주시길.

    그런데, 12월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 비가 내린다. 지금 이 밤도 비가 내린다. 덕장에 곶감은 무사한지…..

    신6

    필자소개
    대구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지리산에 살고 있는 초보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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