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력이 연대고, 연대가 희망인 사진
    [다큐멘터리 사진]신유아•정택용 외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달력, 빛에 빚지다〉
        2015년 12월 16일 09:36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2007년 이명박 정권의 시작은 대재앙이었다. 취임 직후 시민들의 저항이 봇물처럼 쏟아졌음에도 2009년 1월 새해 벽두에 용산에서 불의한 정권에 저항하고 죽지 않고 살아야 할 권리를 외치던 시민 6명이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고스란히 타 죽었다. 가히 충격 중에 충격이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만 연발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때, 일군의 사진가들이 나섰다. 뭐래도 해야 되는 거 아냐? 망루가 불에 타고 그 안에 사람들이 있음을, 그리고 그들이 눈앞에서 시꺼멓게 타죽는 것을 부릅뜬 눈으로 보고 있던 사진가들이었다. 그래, 더 이상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말자고 다짐하면서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1년 내내 곱씹고 곱씹을 수 있도록 달력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부지런히 팔아서 수익금을 내고 그것으로 유가족과 작은 연대라도 하고자 해서였다.

    2009년 10월부터 2010년 12월의 달력을 만든 첫 해 달력은 특별한 부제가 붙지 않고 그냥 제목이 ‘빛에 빚지다’였다. 이 말은 사진가라면 누구나가 아는 사진의 이치지만, 이들은 그 ‘빚지다’에 또 하나의 의미를 담았으니, 이들 사진가들은 항상 현장에 빚진다는 것이다.

    그들도 현장에 빚을 진 것이고, 현장 또한 그들에게 빚을 진 것이니, 온통 빚진 자들의 도시다. 그 빚만 있으랴? 한국 사회가 이렇게라도 굴러가는 것은 용산 희생자로 대변되는 이 땅의 서러운 인민들의 싸움에 빚지는 것이라는 의미가 읽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빛’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도 읽혔다. 결국, 우리 모두 서로 서로 빚진 자들이니 현장과 사진가 그리고 시민이 하나가 되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뜻이다.

    그것을 기획자 신유아와 참여 사진가들은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고담준론에 물들지 않은 현장에 발을 담그고 두 눈으로 지켜보던 현장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피는 끓지만 무서울 정도로 냉정해야 한다는 현실 인식에서 나온 언명이었다. 이들의 기획은 한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파를 던졌다.

    사진계가 주로 사진하는 사람들로 국한되어 뭔가를 하면서 살았는데, 새로운 바람은 사진계 밖에서 훅 하고 들어왔다. 이들은 사진을 구입하고자 희망하는 사람들로부터 미리 주문하여 사진 제작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주문이 봇물처럼 터져 시작 후 불과 며칠도 되지 않아 주문이 마감되어 버렸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하였다.

    사본 -빛에빚지다1 (1)

    2009-10년 첫 달력.

    그런데 처음 2009년 한시적으로 하려 했던 이 달력은 비극적이지만 계속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 두 번째 달력부터는 특정 현장을 주제로 하는 작업을 중심으로 사진을 뽑았고, 2011년 세 번째 달력부터는 그에 맞는 부제를 달기도 했다.

    2010년에는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들을 다루었고, 2011년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행복할 권리를 외치다’로 만들었고, 2012년에는 ‘꿈의 공장을 찾아서’라는 부제 아래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 문제를 다루었다. 2013년에는 ‘노동의 자리’라는 부제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삶을, 2014년에는 송전탑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을 하는 밀양, 강정, 청도의 투쟁 현장 사진들을 모았고, 2015년에는 수첩과 탁상용 달력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올해에는 그 부제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인데, 폐부를 찌른다.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달력’은 어느덧 현장을 기록하는 중요한 사진으로 하는 역사(歷史)이면서 사진으로 하는 사진가와 시민의 연대 역사(役事)를 이루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2010년에는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들에게 달력을 팔아 모은 기금을 전달한 뒤 1주일 만에 협상이 타결되면서, 기륭전자 노동조합이 그 연대 기금을 ‘비정규직 없는 세상’으로 양보한 아름다운 연대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갓 튼 연대의 싹은 퍼지고, 넓혀지고, 커져가면서 결국 그 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농성을 지원하기 위한 희망버스를 탄생시켰다. 한국 사회에 전례가 없던 자발적 사회연대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야말로 씨앗 하나에 우주가 담겨 있는 이치를 몸소 겪게 해주었다. 달력이 곧 연대가 되고, 연대가 곧 희망이 되었다.

     

    달력

    왼쪽 2011-12년 세 번째 달력, 오른쪽 2013-14년 다섯 번째 달력

    한국의 사진계는 갤러리를 중심으로,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의 논쟁은 이미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케케묵은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소위 ‘현장 사진가’의 사진이 작품성이 부족하다고 폄훼해서는 안 된다.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작품도 의미 있지만,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운동도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들은 예술 작품보다는 사람을 좇는 사진가들이다. 그들은 기록하되, 소외당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가들이다.

    땅을 딛고 사는 사람들의 세상은 그저 평온하고 아름답다. 상상할 수 없는 폭력과 탐욕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그들은 눈을 닫는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사니까. 귀는 뚫려 사방천지 간의 외마디 비명은 들리나 눈을 닫아 아비규환을 보지 못하는 세상, 그야말로 눈먼 자들의 도시다. 속죄는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법. 그들이 사라져 줘야 내가 산다. 세상이 비상식적이든 비정상적이든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다. 자유가 춤추고, 풍요가 넘치면서 도시 안의 섬은 더욱 외롭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단절의 섬. 그 섬이 무섭다. 그런 세상에서 최소한, 최소한 단 한 번만이라도 고개를 들고, 귀를 열어 그들을 보고 그들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외치는 사람들이다.

    사진가들이 나선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최소한 해야 할 일, 사진가라는 직업인으로서 최소한 해야 할 일. 점 같이 작아져버린 그 모습들, 소음에 파묻혀버린 그 목소리들을 세상에 알려 보고 듣게 해주는 것, 그거 하나다. 그나마 카메라로 할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최소한의 몸짓. 그거 하나다.

    인간이 자취를 감춰버린 사진, 그곳을 창의성이 자리를 잡아 예술이라 부른다면, 그건 예술을 위한 예술일 뿐이다. 정치적 목적을 띤 현장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렇지 않은 사진보다 독창적이지 못하고, 예술적이지 않다고 한다면, 그건 예술 권력의 횡포다.

    예술이란 본디 ‘대중은 속물’이라는 전제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대중의 시각과 배리되는 지점에서 예술이라는 레벨이 확보되는 것 아닌가. 그것을 창의성이라 칭할 때 그것은 그들과 손잡은 권력 안에서 규정되는 것이고 그것을 ‘속물적’ 대중이 바라보면서 추종하는 것일 뿐이다. 18세기 이후 부르주아 혁명과 자본주의가 성립되면서 만들어진 예술의 개념은 바로 이런 반대중적 정서에 뿌리를 내리며 커왔다.

    대중을 함께 해야 하는 동지적 존재이자 역사의 주체로 파악하면서 지배 계층에 저항하며 현장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것은 그들 잣대로 볼 때 예술 행위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진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듯, 실천하지 않는 사진은 죽은 사진이라 굳게 믿기 때문에.

    그들이 달력을 만드는 일은 직업인으로서 사진가이기 이전에 한 명의 시민으로서 이 땅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무슨 거창한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의 진실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것뿐이다. 그 작은 것을 위해 거대한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다. 카메라를 둘러맨 연대. 카메라로 소통하는 연대. 그것이 이 달력이자 사진집이 갖는 정체성이다.

    이미지가 넘치고 말씀이 쏟아진 한국 사회에 이들이 지난 7년 동안 던진 사진의 외침은 죽비가 되어 우리들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사진으로 그 동안 우리가 눈이 멀어 보지 않은 주변의 작은 이들의 삶을 보게 하였다. 세상에 눈 뜨게 하는 사진, 이것이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달력, 빛에 빚지다’이다. 그 안에 소통이 있고, 사람 사는 세상이 있다.

    결국 그들은 사진가이면서 사진으로 달력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4대강의 참혹한 현장을, 희망버스의 뜨거움을, 해군기지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정마을 이야기를, 초고압 송전탑으로 시름하는 밀양 이야기를, 비상식적인 대량해고가 왜 살인해고일 수밖에 없는지를 죽음으로 보여주었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고 전시로 펼쳐내기도 했다. 이 모두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달력, 빛에 빚지다’가 맺어준 동지애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본 -빛에빚지다7__일상의실천

    2015-16 일곱 번째 달력 ⓒ일상의실천

    특별한 조직도, 특별한 후원자도 갖지 않은 그 현장 사진가들, 그들은 작은 소망을 하나 가지고 있다. 달력을 더 이상 만들 필요가 없는 세상이 하루 속히 왔으면 하는 것이다. 달력을 만드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지치지 않고 달력을 만드는 일을 하는 그 현장 사진가들, 그들이 있어 세상은 여전히 살 가치가 있고, 그들의 사진이 있어 세상은 여전히 볼 가치가 있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