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모던’이라는 가면
    현대의 노동자와 과거의 ‘하류 인생’
        2015년 12월 15일 03: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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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참 웃기는 일 중의 하나는 “현대인으로서의 자만”입니다. 우리는 “현재”를 사는 만큼 우리 시대를 가장 진보된 것으로 착각하기 쉽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현재를 사는 만큼 현재를 “포스트 시대”로 오인하기가 아주 수월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시각은 그저 근시안에 의한 착각에 불과합니다. “포스트모던”할 것도 없이, 우리는 그저 근대 자본주의 시대의 후기쯤을 사는 것인데, 그 후기는 많은 면에서는 20세기 초반의 독점자본의 전성기를 빼닮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를 특별한 기술 발전의 시대로 오해하기가 쉬운데, 최근 20년간의 컴퓨터나 휴대전화 등의 보급이란 20세기 초반의 기술혁명에 비하면 아주 왜소해 보입니다.

    대한제국의 시기만 생각해봐도 10여년에 불과한 짧은 시기인데도 한반도로 자꾸 침투했던 “문명세계”에서는 비행기와 라디오가 발명되고, 자동차, 전화, 영화의 보급이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세계화”라는 단어는 최근에 생겨서 그렇지만, 내용적으로 봐서는 20세기 초반의 구미권 독점자본의 세계시장 정복은 오늘날의 “세계화”를 훨씬 능가했습니다. 주요 국가의 자본수출 비율로 따져보면 근래보다 20세기 초반에 훨씬 더 컸죠. 레닌이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로서의 제국주의>에서 독점자본의 시대를 자본수출의 시대로 정의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입니다.

    유럽 안에서의 무비자 여행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유럽에서도 일반적이었습니다. 노동의 대규모적인 세계적 이동은? 마찬가지로, 1870~1914년 사이에 수백만 명의 유럽인들이 북미와 남미로 가고, 각종 “유색인종”에 대한 이민 통제에도 불구하고 화교들의 미주 및 호주 진출이 본격화됐습니다. 오늘날에 폴란드인들이 주로 서비스 부문 노동자로서 프랑스나 독일로 간다면, 100여 년 전에는 광산 노동자나 공장 노동자로, 그러나 똑같이 대규모로 갔습니다.

    이주노동자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이탈리아의 이주노동자들(사진=한노사연)

    100여 년 전의 인터넷이 전신망이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에 의한 자본과 노동의 이동, 정보 교환 속도의 가속화 등 여러 과정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많이 닮아 있죠. 도대체 뭐가 “포스트모던”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20세기 전간기 이전의 “고전적” 자본주의와 비교했을 때에 전후 황금기 자본주의의 중요한 상이점은 딱 두 가지이었습니다.

    하나는 대량의 대중적 소비의 시대가 도래하여 노동자는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된 것이고, 또 하나는 소비자를 겸한 노동자는 복지국가 등의 재분배 시스템에 의해서 각종의 사회적 보장들을 받는 동시에, 대부분의 경우에는 (정규직이라는 형태로) 취직한 이상 직장 보유에 대한 일종의 보장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후를 기점으로 해서 “해고”가 어려워진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는, 후기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시대는 전후 황금기의 제도적 장치들을 상당 부분 약화시키면서 “1914년 이전의 상태”로 모든 것을 돌리려 한다고 봐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가난해지는 대중들의 보편적 소비는 이제 재분배 시스템이 아니라 소비재를 만들어내는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에 대한 상대적 저임금과 고착취를 통해서 가능하게 됩니다. 즉 핵심부 노동자의 “저가 소비재”라는 이름의 복지 아닌 “복지”를 준주변부나 주변부에 대한 착취가 보장해줍니다. 레닌 말대로 100여 년 전의 식민지 착취가 유럽 일부 고임금 노동자들의 상대적으로 중상층에 가까운 생활수준을 보장했듯 말입니다.

    그러나 주변부에서 오는 값싼 물건을 살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지는 대신 재분배는 줄 대로 줄고 중심부의 복지국가는 최소화되고 격차는 다시 100여 년 전의 세상처럼 벌어집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극소수의 “고귀한 신사”와 늘 불안에 떨어야 하는 다수 “상것”들의 양분화된 세계로 돌아왔습니다. 오늘날의 현대판 “하층민”은 대졸일 수도 있지만, 불안과 상대적 빈곤의 평생을 살아야 할 점에서는 100여 년 전 대다수의 “하류 인생”들과 아무 차이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돌아온 것은 열강들의 무장 각축입니다. 오늘날 사실상의 열강에 의한 시리아 영토 분할을 보면 뻔히 보이는 일이죠. 20세기 초반의 열강의 식민지 각축전은 1914년으로 이어졌죠. 오늘날의 각축전이 그 어떤 다른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이게 순진한 오해이십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살육극이 과거에 못지않을 것은, 불 보듯 확실합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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