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베네수엘라,
좌파 총선 패배의 원인
[기고] 경제 개조의 실패와 부패
    2015년 12월 14일 10: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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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님의 기고글(링크)에 이어 부산외국어대의 안태환 교수가 지난 12월 6일 베네수엘라 총선에서 차베스그룹이 패비하고 우파가 승리한 것에 대한 분석 글을 기고해왔다. 감사드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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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6일 국회의원을 뽑는 베네수엘라 총선에서 정부 여당이 패배했다. 패배의 가장 큰 원인으로 마두로 대통령도 ‘경제 전쟁’에서 졌기 때문임을 인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베네수엘라 경제가 어려워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유가 하락과 상품의 공급부족으로 인한 인플레와 생필품 구입의 어려움 등이 가져온 일반 대중의 불안과 고통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차베스가 1998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전에 1990년대 내내 베네수엘라 시민을 괴롭혔던 인플레의 고통이 재연한 것이다. 아주 비관적으로 언급하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주기적으로 공급 부족으로 인한 인플레의 경제위기가 되돌아온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우파와 국제 금융자본은 재정적자(사회정책)의 축소와 긴축 등 거시경제 지표의 관리에만 집중하고 생산력 증대를 위한 경제의 구조적 혁명은 손을 대지 않는다.

승리에 도취된 우파 이론가들은 차베스 혁명의 본질은 사회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에 대한 적극적인 국가 개입을 옹호하는 케인즈식 정책이었고 이런 방식을 통한 사회정책의 관대함은 지속적일 수 없었다고 시장의 자유를 옹호하는 담론을 펼치기 시작하고 있다.

과연 그렇게 차베스 혁명의 대안적 실험을 축소시켜도 될까? 순수한 부르주아 경제학적 관점으로만 보면 그럴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를 넘어서려는 차베스 혁명은 대안적 비전으로 신자유주의에 의해 ‘배제’된 대중권력의 강화를 통한 계급이 아닌 새로운 집단적 주체(주민평의회, 도시토지위원회, 코믠공동체)의 다양한 출현을 시도했고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생태 친화적 사회주의의 경제 사회 모델을 만들려고 했던 그 시도는 매우 중요한 실험이었다. 예를 들어, 현재 베네수엘라의 2백6십만 대학생의 숫자는 ‘수크레 미션’의 덕택에 1998년에 비해 3배로 늘었다.

어쨌든 이번 총선 패배의 도화선은 원유가 하락이었다. 예를 들어, 알메이라에 의하면,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5년 공식 예산을 2015년에 유가를 60불로 상정하고 짰는데 실제로는 40불에 머물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2008년의 미국의 금융위기와 그 후의 유럽의 경제위기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위축시켰고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은 더욱 원유가를 하락시켰다. 이미 차베스 생존 시부터 상당수의 진보적 학자들도 고유가에 기댄 차베스 정부의 고강도 사회정책의 실험이 지속 불가능함을 지적해왔다.

1999년 집권 이후 차베스는 그동안 다양한 차원에서 새로운 변혁을 추진하면서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으로 불리는 독립적인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였다. 그동안 오랫동안 소외되어왔던 대중에게 권력을 주고 다양한 미션 사업을 통해 단지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소득의 분배와 재분배가 아니라 새로운 유토피아로 향하는 급진적 정책들을 추진했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차베스 진영이 패배했지만 일반시민 대중의 차베스에 대한 존경의 감정과 정서적 연대는 강하다. 그래선지 인터넷 언론 ‘아포레아’에 의하면, 이제 막 승리하자마자 우파는 현재 차베스가 안치되어있는 몬타냐궁에서 차베스의 시신을 꺼내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한다고 한다. 이에 마두로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만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21세기의 상징이 차베스에 대한 기억이라고 비판하였다고 한다.

우파가 승리한 후의 로드맵이 이미 상당 부분 만들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일반대중의 차베스에 대한 강한 연대감과 대중의 집단적 기억을 약화시키려는 우파의 전략은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는 것 같다.

베네수엘라 총선

차베스 벽화를 뒤로 한 투표 행렬

차베스 혁명, 토대 개조에는 못 미쳐

이번의 총선 패배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 시장구조의 논리 즉, 토대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동안 추진해온 차베스 혁명의 한계로 이미 패배는 예고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차베스 정부가 2007년과 2008년에 국영화한 철강, 통신, 전기 등의 기초산업은 베네수엘라에서 오랫동안 국영화되어 있었다. 오직 신자유주의로 인해 1990년대에 민영화되었던 것을 ‘정상화’시킨 것이지 어떤 사회주의적 국유화 정책을 실험한 것은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토대는 그동안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에서 이야기한 대로 먹고 사는 문제인 토대가 정치라는 상부구조를 결정지음을 이번 베네수엘라 총선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의 토대는 지나친 원유에의 의존이다. 소위 말하는 ‘채굴 경제’ 모델이다. 따라서 상당수 학자들은 차베스 혁명을 원유 수입에 의존한 ‘지대 사회주의’라고 호명했다. 원유에의 의존을 줄이기 위해 농업을 개발하고 새로운 공업 분야를 개척한다고 하지만 이런 구조적 변화가 하루아침에 될 리가 없어 자본주의 시장 구조의 핵심적 원리인 생산력의 증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와 달리, 볼리비아의 경우는 에보 모랄레스 정부에 의해 과거 불법으로 여겨졌던 코카 잎 재배농지가 합법화되고 아래로부터의 원주민 공동체 문화의 힘을 동력으로 하여 소농의 집단적 생산방식으로 인한 농업생산력의 확대가 광물자원으로 인한 외화 수입 외에도 경제를 성장으로 이끄는 동력이 되어왔다.

또 경제정책의 실패 외에도 관료체제의 비효율과 부정부패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차베스 혁명의 성과를 뒤로부터 허물고 있었다. 예를 들어, 2002년과 2003년 차베스 정부가 가장 큰 정치적 위기를 겪을 당시에 기획발전부 차관이었던 좌파 운동가인 롤란드 데니스에 의하면, 차베스 자신도 소위 ‘21세기 사회주의’를 선포하던 2005년을 정점으로 하여 그 후에는 2002년과 2003년 사이의 극우 쿠데타와 국영 석유공사의 경영 지도부와 노조 상층부가 결합하여 일으킨 자본가 파업 당시에 보여주었던 과감한 정면 돌파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롤란드 데니스에 의하면 다름 아닌 여당과 정부의 중요한 직위를 차지하고 있는 고급 관료와 군부 세력이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베네수엘라 정치지형의 세 축은 여당과 정부, 야당,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정치적 행위자 또는 새로운 집단적 주체로 출현한 광범한 대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의 중요한 세력인 여당과 정부 지도부의 부패로 말미암아 차베스의 새로운 사회주의의 이념과 비전이 현실적 추동력이 약한 관념적 수사로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차베스 혁명의 실천으로 인해, 광범한 대중이 대중권력의 주체로서 집단적으로 출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당 즉, 반차베스 세력과 미국을 비롯한 국내외의 미디어의 정치 공세에도 불구하고 이만큼의 방어를 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차베스가 중앙과 지방의 의회 의원과 고위 관료 등 엘리트가 아닌 일반 대중에게 새로운 권력을 주는 것을 베네수엘라 혁명의 중심적 경로로 삼은 것은 정확한 통찰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의사결정권을 가진 고위관료의 부패는 실제로 혁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변혁의 에너지를 분산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석유가격의 하락과 함께 베네수엘라 정부에 의해 집행되어온 ‘외환통제‘ 조치들은 베네수엘라의 부르주아를 형성하는 많은 수입업자들을 괴롭히는 일이었다. 외환정책의 실패로 생필품의 수입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지독한 공급 부족에 의한 악성 인플레가 생긴 것이다.

전통적 대지주를 제외하고 베네수엘라의 유력한 부르주아는 주로 외국으로부터 물건을 수입하는 수입업자들이다. 이들에게 외환 보유고의 확보와 불필요한 수입을 막기 위해 차베스 정부가 2003년부터 실시한 평가절상의 공식 환율과 이와 너무나 다른 암시장의 이중환율제는 전반적으로 너무 큰 고통이었고 일부에게는 부정부패를 통한 횡재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들 수입업자중 일부는 고위관료와 금융권의 간부들과 담합하여 개인의 이익을 위한 부정부패를 통해 해외로의 자본도피 등 무려 약 3백억 불의 달러가 사라지게 되었다고 롤란드 데니스는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중소 유통업자의 매점매석이 함께하여 식료품등 기초 생필품의 품귀를 불러와 대중의 일상생활이 힘들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극우파에 의한 보수 언론의 공세와 해외 주류 언론의 지속적인 비판과 극우파가 지원(?)하는 폭력적 거리 시위가 더해졌다.

2014년에 이런 폭력적 시위는 4개월이나 지속되었고 여러 명의 유혈의 희생자들을 낸 이런 도시 폭력을 “과림바”(guarimba)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해서든 차베스 체제를 끝내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였다. 이런 폭력적 시위를 진압하는 베네수엘라 정부를 언론자유를 탄압하는 독재 정부로 해석하는 담론 정치가 국내외 언론 미디어를 통해 펼쳐졌다. 그리고 야당 연합 (MUD)은 이런 폭력시위로 체포된 자들을 ’정치범의 석방‘이라는 프레임으로 이번 총선에 임했다. 경제 실패에다가 독재의 이미지를 덧칠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야당의 철저한 공격 앞에 마두로 정부는 어정쩡한 수동적 자세로 대해 일반적으로 비즈니스 경영자 계급 외에 일반 대중에게서도 차츰 헤게모니를 잃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수동적 자세는 사실 차베스 집권 초기부터 있었지만 우파와 미국은 냉정하게 실용적 접근을 통해 차베스 진영을 흔들어 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 후에도 차베스 정부는 경제정책의 효율성을 위해 비즈니스 그룹의 일부와는 밀월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그룹 중 일부는 오히려 엄청난 액수의 불법적 외환거래를 통해 부정부패를 키우고 정치적 헤게모니의 유지에 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들 기업가 그룹은 차베스 정부로부터 이익을 얻었더라도 여차해서 반 차베스 진영이 권력을 잡으면 제일 먼저 그들의 품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취약점을 롤란드 데니스가 위에서 지적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차베스 진영은 자신들의 정치적 역량과 헤게모니를 지나치게 과신했는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차베스 체제를 어떤 수단을 써서든 단절시키려는 우파의 공격 앞에 너무 안일한 접근을 한 것이 아닌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만일 위에서 지적한 대안적 체제를 지향하는 대중권력의 강화가 없었더라면 마두로 정부는 벌써 무너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과거의 일이지만 70년대 초, 칠레의 아옌데 정권은 피노체트 군부의 군사적 공격이 있기 전에 이미 헤게모니적으로 일반 시민과 중산층의 이반을 가져왔던 것도 기초 생필품의 품귀가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

일단 그동안 절치부심하던 우파로서는 차베스 정부 출범이후 만들어진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를 다시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첫 걸음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장 빈곤대중에 대한 공격적인 사회정책을 무너뜨리는 급격한 정책 전환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비록 이번에 총선에서는 경제문제로 인해 우파가 승리했지만 차베스 혁명의 최대 성과인 급진적 사회정책의 눈부신 성공을 대부분의 베네수엘라 시민들이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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