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랑 끝의 노동자들
    정부, '일반해고' 도입 위한 절차 돌입
    노동부, '저성과자 해고' 토론회...노동계 반발
        2015년 12월 11일 05: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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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일방적 노동개악을 반대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찰에 자진출두한 지 하루 만에 고용노동부는 11일 ‘쉬운 해고(일반해고 또는 저성과자 해고)’ 제도 도입을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노동계는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발표를 위한 정부의 구색 갖추기 꼼수”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정부 규탄 시위에 나섰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던 한국노총조차도 이 토론회에 반대하며 불참 의사를 표했다.

    고용노동부는 11일 오후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직무능력 중심의 인력 운영방안 모색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채용-평가-보상-능력개발-퇴직관리까지 능력중심 인력운영 방안 ▲인사평가의 노동법적 쟁점 ▲직무수행능력 부족을 이유로 한 해고 관련 판례 검토 등에 관한 발표가 이뤄졌다.

    특히 발표 주제 가운데 하나인 ‘직무수행능력 부족을 이유로 한 해고 관련 판례 고찰’ 발제에선 ‘직무수행능력 부족’이 정당한 해고 사유로 인정받은 법원 판례들이 구체적으로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추진하는 ‘직무능력 중심의 인력운영방안’은 얼핏 공정하고 효율적인 인사 시스템의 기준처럼 읽힐 수 있으나, 이는 사실상 정리해고와 별개로 노동자를 용이하게 해고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에 불과하다. 정부가 ‘직무능력 중심의 인력운영방안’이라는 모호한 말로 ‘일반해고’의 위험성을 감추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이날 토론회를 계기로 노동계가 가장 강력하게 반대해왔던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 지침과 관련된 논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지난 9일 한국노총에 ‘취업규칙 변경 및 근로계약 해지 기준과 절차의 명확화를 위한 논의’를 요청, 조만간 공청회를 열어 양대 지침에 관한 의견 수렴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양대 노총 모두 이 같은 공청회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사정위 합의 당시에도 노동계는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관련 가이드라인에 강하게 반대했었다. 그만큼 이 가이드라인이 노동자에게는 치명적이라는 뜻이다. 더군다나 한상균 위원장 체포 등 정부의 노동탄압이 도를 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가 정부 정책 추진에 근거를 대줄 공청회 참여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해고반대

    한국노총 “노동5법 강행은 정부 스스로 노사정 합의 파기한 것”

    한국노총은 고용부에 보낸 회신에서 노사정 대타협 당시 기간제법 등을 추가 논의 의제로 분류했음에도 노동 5법을 발의했다며 5대 노동법안이 합의 내용에 따라 개선해야 양대지침에 관한 추후 논의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노총은 이날 논평을 통해 “정부와 새누리당이 노사정 합의를 위반 훼손하며 새누리당과 함께 발의한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업종 뿌리산업까지 확대 등 비정규직 확산법안을 폐기하지 않는 것만 가지고도 인내의 한계를 느끼는 상황에서, 정부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일방적 지침 시행 수순에 들어간다면 이는 정부 스스로 노사정 합의를 파기한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한국노총은 “정부에 의해 파기된 노사정 합의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체 노동자와 함께 비정규직 확산법과 일방적 지침 시행 저지를 위한 총력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며, 노사정 합의 파기 및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탈퇴를 시사했다.

    정부가 노사정위 논의를 노동개악 강행 명분으로 삼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애초에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았던 민주노총은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비판하고 나섰다.

    일반해고1

    방송화면 캡처

    민주노총 “저성과자 해고 제도는 ‘학대해고’의 합법화”

    민주노총은 이날 정책 논평을 내고 “(해고에 관한) 법적 제한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에 대한 정부 지침을 마련하려는 것이고, 이때 성과의 기준과 평가 및 활용은 모두 사용자의 재량에 맡겨진다”며 “결국 사용자의 뜻대로 해고를 쉽게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법원은 해고를 제한하는 원칙으로서 ‘정당한 이유’에 관해 ▲노동자에게 책임이 없는 이상 해고를 할 수 없고 ▲책임이 있을 시에도 그 정도가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고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해고에 관한 엄격한 기준을 밝힌다.

    이 때문에 노동자의 실적 부진 등을 이유로 해고가 가능한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은 근로기준법에도 위반된다는 지적은 이미 수차례 제기됐었고, 노동계 또한 이 같은 이유로 양대 지침에 반대해온 것이다.

    민주노총은 ‘공정한 평가 체계’를 통해 ‘공정한 해고’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공정한 평가 기준이란 애초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가 제시한 공정한 해고 기준을 보면 리더십, 부서원과 소통, 책임감, 성실성, 적극성, 창의성 등이다. 모두 주관적이거나 다소 추상적인 기준이다.

    민주노총은 “사용자가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점수를 부여하고 하위평가자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며 “교정기회를 부여한다고 해도 사용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재평가에서 얼마든지 자의적인 평가를 통해 다시 하위평가자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금과 같이 노동자 스스로 회사를 그만 두게 하려고 엉뚱한 업무를 부여하거나 업무를 주지 않으며, 독후감까지 강요하는 등 ‘학대해고’의 번거로움도 사용자들은 면할 수 있게 된다”며 “저성과자 해고제도가 학대해고 합법화로 불리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일반해고 제도의 가장 큰 위협은 노동조합의 존립 문제다. 사용자가 조합원을 저성과자로 낙인찍어 해고시켜도 부당노동행위의 시비를 피할 수 있다. 추후에 저성과자로 찍힌 조합원이 문제를 제기해도 평가 기준이 불공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실제로 이미 성과급제가 시행되는 회사의 노조 조합원들 다수가 최하위 성과를 받아 임금이 삭감되는 사례가 있다.

    민주노총은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이 발표될 경우 “부당해고로부터 노동자를 지켜주던 제도는 사용자의 해고를 합법화해주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하며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발표를 위한 정부의 구색 갖추기 꼼수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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