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진' 요리 아닌 '좋은' 요리가 필요
    [안녕? 페미니즘!] 가정과 시장, 그 경계를 넘어 여성적 일로서의 요리 모색해야
        2012년 07월 26일 10: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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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종영한 한 케이블 채널의 요리 서바이벌 <마스터셰프 코리아>가 꽤 화제가 되었다. 총 3억 원의 상금을 걸고 아마추어 요리사를 발굴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요리는 노래나 연주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의 테마로 부상했다.

    <마스터셰프 코리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셰프라는 전문 직업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흔한 식재료가 어떻게 고급 레스토랑에서 판매될 수 있는 요리로 변신하는지, 그러한 상품 가치를 창출해내는 셰프의 자질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만의 재미다.

    길거리 음식의 대표주자인 순대와 떡볶이를 3만원 값어치의 요리로 재탄생시키는 도전자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직접 맛을 볼 수 없는 시청자들에게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반전의 묘미를 제공한다.

    마스터셰프 키친을 떠난 어머니 요리고수들

    <마스터셰프 코리아>에는 셰프의 요리와 어머니의 요리 사이의 깊은 간극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장안의 요리고수인 주부들도 수천 명 지원자들의 대열에 합류했고, 그 중 3명의 ‘어머니’ 도전자가 직업 요리사와의 경쟁을 뚫고 본선에 올랐다. 자신의 대표 요리를 선보이는 예선에서 이들은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았고, 기본기를 테스트하는 양파 썰기 미션도 “엄마들이 다 하는 일”인데 어려울 게 있냐는 듯 가볍게 통과했다.

    일찍이 ‘장금이 아줌마’라는 캐릭터를 굳힌 한 도전자는 “나 떨어뜨리면 손해”라는 넘치는 자신감과 요리에 대한 열정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두 명의 어머니 도전자는 본선의 첫 미션이었던 두부 요리에서 탈락했고, TOP 15에 들었던 장금이 아줌마도 머지않아 콩나물 요리에서 탈락했다. 다른 누구보다도 많이 다뤄봤을 식재료가 어머니 도전자들에게 걸림돌이 된 것이다.

    어머니들이 만든 두부 요리는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서양 요리가 익숙지 않아 애를 먹던 장금이 아줌마는 콩나물 잡채에 여러 가지 소스들을 가미했다가 자신만의 맛을 살리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요리를 배운 적도 없고 취미로 요리를 하는 아마추어 도전자도 많았지만, 셰프의 세계에서 어머니 도전자들은 유독 이질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마스터세프 코리아의 소개 모습

    심사위원들은 어머니들의 요리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여러 번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던졌고, 보는 시청자들도 언젠가 탈락이 예정된 사람을 지켜보는 것처럼 마음을 졸였다. 늘 먹는 요리와 달리 희소성이 있어야 높은 가격이 매겨질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원리, 셰프에게는 흔한 재료일수록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요리하는가가 중요해진다.

    때문에 어머니 도전자가 만든 두부선보다는 서양식 조리법을 결합한 두부 라비올리, 연두부 라타투이가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 요리를 보기 좋게 담는 플레이팅 감각도 중요하다.

    여러 가지 요리를 한 접시에 푸짐하게 담았던 한 도전자의 요리는 시식도 되지 못한 채 쓰레기통에 버려지기도 했다. 이렇게 요리의 부가가치를 더하는 건 색다른 아이디어와 미적 감각이며 이것이 ‘셰프’의 요리 실력을 가늠하는, 때론 맛보다도 우선하는 기준이 된다.

    어머니의 집밥은 예술이 될 수 있나

    이는 오늘날 요리가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희이자 미적 욕구를 자극하는 기제가 된 것과 관련된다.

    소비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에게 요리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즐거움을 주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이런 소비자들에게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요리사는 오늘날 셰프, 파티셰, 쇼콜라티에 같은 세련된 직업명을 가진 전문가이자 예술가로 주목받고 있다. 숙련된 기술과 더불어 창의성과 미적 감각은 요리사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자질이자 그가 만든 요리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소가 되었다.

    아이돌만큼 인기를 누리기도 하는 스타 셰프들은 자신의 레스토랑뿐 아니라 대중들이 요리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작가이자 방송인으로 활약하며 자신들만의 화려한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

    이러한 요리 세계는 어머니의 요리와는 거리가 멀다. 창조성과 예술성은커녕 지겹고 진부하기까지 한 집밥의 반복성과 일상성은 오히려 셰프의 요리에 더 특별한 가치를 부여한다. 어머니가 만드는 요리는 즐기는 요리, 아름다운 요리가 아니라 꼭 먹어야 하는 요리, 없어서는 안 되는 요리, 이를 테면 김치 같은 것이다. 길게는 1년 짧게는 매일매일 순환되지만 변함없는 맛을 내야 하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요리다.

    엄마의 고유한 음식 맛이 변하면 그건 위기의 징후 같은 것이다. 이러한 어머니의 집밥은 미적 감각과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아닌 오랜 손맛과 정성의 산물로 여겨진다. 요리를 만들어 내는 어머니만의 지식, 기술, 숙련은 모성과 헌신의 일부일 뿐, 시장에서 가격을 매길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으로 간주된다.

    어머니의 요리노동을 배제하는 요리 산업

    사실 요리사의 직업 세계는 예전부터 ‘가정요리’를 만드는 것과 다른 기술과 체력, 지구력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로 여성의 진입을 차단해 왔다.

    여전히 한식을 제외한 중식, 일식, 양식 요리사 중 여성 비중은 많아도 30%를 넘지 않는다. 집밥을 짓는 어머니의 전문성을 손맛으로 분리해 내면서 요리사의 ‘전문성’은 남성중심적인 가치체계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때문에 여성은 주방보조, 디쉬직과 같은 고급 요리 산업의 주변주로 흡수되거나, 5천 원짜리 백반집 같은 영세한 식당 시장에만 진입할 수 있었다.

    셰프의 레스토랑과 달리 이 식당들은 잦은 창업과 폐업으로 소비자의 입맛을 쫓으며 가격 경쟁으로 승부한다. 이 경쟁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푼돈이라도 벌어야 하는 어머니들을 동원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중장년 여성, 이주여성들은 저임금에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이 시장을 불안하게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노동력이 주를 이루는 이 식당들도 어머니의 노동으로서 요리의 가치를 배제하는 건 마찬가지다. 값싼 음식은 식재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그럴수록 맛을 내는 건 강력한 화학조미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들이 쌓아온 지식과 기술이 애초 작동할 수 없는 구조이다. 생존을 위해 먹는 음식이 도리어 건강을 해치며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먹는 사람의 섭생에 대한 책임이 보증되는 경우는 드물다.

    때문에 식당밥은 집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여성의 책임을 더 강화한다. 입맛을 버리는 식당밥은 어머니의 집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식당밥의 안전이 문제 될 때마다 여성은 ‘엄마표’ 음식으로 가족을 보살피는 역할로 소환된다. 이렇게 상품화된 음식은 요리에 대한 여성의 수고를 늘리지만, 이는 노동이 아닌 어머니의 의무이자 당연한 역할, 그리운 손맛으로 간주될 뿐이다.

    집밥 같은 식당밥은 불가능한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집밥을 차려 먹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리는 다른 가사노동에 비해 손이 많이 가며, 음식을 하지 않을 때도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해 먹을지 항상 생각하며 식재료를 구입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타인을 먹여야 하는 요리노동은 더 복잡하다. 영양을 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식단을 짜고 먹기 싫어하는 것도 먹여야 하며, 뭘 먹고 싶어 하는지 살펴서 욕구를 충족시키는 음식도 해줘야 한다. 이처럼 요리노동은 몸을 쓰든 머리를 쓰든 늘 지속되고 반복되며 타인의 성장과 건강을 보살피는 책임을 요한다.

    그러나 외식산업은 요리노동의 이 복잡한 수고로움을 어머니의 몫으로 밀어내고 시장 원리에 따라 책정된 고가/저가의 음식 상품을 만들어 낼 뿐이다.

    오늘날 요리는 즐기는 유흥이 되고 향유하는 예술작품이 되어 팔리고 있지만, 섭생과 돌봄, 책임으로서 요리는 여전히 가족 안에 갇혀 있다. 요리와 요리노동에 서로 다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가정과 시장, 그 경계를 넘어 여성적 일로서 요리의 의미가 구현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건 불가능할까. 집 바깥에서도 집밥 같은 식당밥, 동네밥, 학교밥, 회사밥을 먹을 수는 없을까. 그러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공적인, 공동체적인 방식으로 조달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없을까.

    요리 생산-소비의 대안 체계 모색해야

    이러한 대안적인 모색이 절실한 건, 가정과 셰프의 레스토랑, 소규모 식당을 재조직하는 거대 자본의 행보가 발 빠르기 때문이다.

    이미 대기업이 공장에서 만들어 낸 음식 상품들이 가정의 식탁을 차지한지 오래다. 여느 식당은 물론 동네 국수집, 떡볶이 가게까지 대기업 외식브랜드의 진입에 밀려나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미디어 산업이 요리에 대한 감각을 자극하고 라이프스타일을 조직하며 식품제조업과 외식업을 소비자와 보다 긴밀하게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이 모두를 계열사로 포괄하여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멀티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식품제조업체, 브랜드 외식업체, 미디어 사업체를 계열사로 둔 CJ그룹은 지난 해 ‘이제는 요리의 시대’라는 타이틀을 건 채널을 런칭하여 요리를 엔터테인먼트의 ‘핫’한 테마로 만들어냈고, 이 채널의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자사 업체들의 생산, 마케팅, 개발을 상호 연계하고 있다.

    무려 40억의 제작비가 투여된 <마스터셰프 코리아>는 이러한 기획 하에 탄생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CJ 식품 브랜드의 종합 광고판으로 기능하며, 도전자가 개발한 메뉴가 CJ 외식업체에서 출시되는가 하면 심사위원 중 한명인 CJ그룹의 브랜드 전략 고문은 도전자들의 요리에서 상품 개발의 아이디어까지 얻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제 요리 산업은 어머니가 가진 고유한 지식과 기술을 흡수하여 만든 ‘손맛’ 상품까지 시장에 내 놓고 있다.

    대기업이 수십 년간 제주도의 어머니들이 만들어 온 고기 국수를 발굴하는 과정이 다큐멘터리로 방송되고 얼마 후 그 국수는 브랜드 레스토랑의 메뉴로 출시된다. 자본은 가정과 지역사회, 식당을 넘나들며 모든 식탁을 장악하고, 요리의 맛과 멋에 대한 우리의 감각도 그에 따라 조직한다.

    집밥과 식당밥, 셰프의 요리로 나눠진 요리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이것뿐일까. 시장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신뢰 관계를 매개로 요리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체계, 그렇게 만들어 지는 ‘몸을 살리는 요리’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볼 수는 없을까.

    필자소개
    필자들은 페미니즘 속 세상, 세상 속의 페미니즘이 일으키는 불화를 열광하고, 성찰하는 연구자들이다. 관계와 소통을 본격적으로 통찰하는 매혹적인 학문이자 사상으로서, 농익은 진리 주장에 머물러 있기보다 설익은 질문에 열려있는 페미니즘을 지향한다. 필자들의 관심사는 저마다 다르지만, 생계부터 정치적 안부까지를 함께 걱정하고 토론하는 생활공동체의 화학작용으로 인해, 각자의 사유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 엄혜진(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 연구원) 김원정(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 윤보라(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이선형(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이 차례로 글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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