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사진전이
    그치지 않는 슬픈 이 나라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세상을 읽다] <비주류사진관>
        2015년 11월 30일 09: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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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월 그래도 추운 부산의 한 겨울에 몇 사람의 사진가들이 ‘비주류’라는 엄청난 이름을 걸고 사진가 모임을 결성했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농성과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등 큰일을 당하면서 그때마다 현장에 가서 한 편으로는 농성 연대 동지로, 또 한 편으로는 사진가로서 직접 보고 겪고 난 후 좀 더 적극적으로 사진으로 뭔가를 하는 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저지른 일이다.

    그때 부산에서는 몇 해 전에 문을 연 고은사진미술관이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로, 상당수의 사진가들은 고은미술관의 예술 놀음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고은미술관의 예술 작품 지향의 성격이 블랙홀 같이 사진판을 망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진가들은 사진이란 예술적 표현의 매체로서보다는 기록하는 매체로서 더욱 의미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는데, 그 때가 당도하였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사진은 기록 특히 그 가운데서도 사회에서 더 소외당하고, 무시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겁탈당하는 곳을 찾아가 연대하고, 그곳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역사의 진실을 널리 알리는 일보다 사진가로서 더 의미 있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뜻을 모으고, 정공법으로 과감하게 ‘비주류’라는 타이틀을 걸고 모임을 시작하였다.

    [비주류의 현장에서 함께 하는 사회다큐멘터리 사진 집단, 비주류사진관. 2015.08.22]

    [비주류의 현장에서 함께 하는 사회다큐멘터리 사진 집단, 비주류사진관. 2015.08.22]

    SNS 시대에 걸맞게 페이스북에서 조직하고 활동하기로 했다. 처음 외치고, 조직하고, 운영하는 이는 부산의 한 변호사 사무장으로 일하는 정남준 사진가였지만, 그렇다고 그가 무슨 대표나 회장의 직함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회원에게도 특별한 건 없었다. 페이스북에 만들어진 비주류사진관 모임에 가끔씩 사진을 올리거나 관심을 표명하면 될 뿐, 특별한 의무도 없고 특별한 구속할 만한 것도 없다. 다만, 가입만 하고 몇 개월 동안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이따금씩 정리의 대상이 된다. 오로지 그것 하나다.

    ‘비주류’라서 참으로 비주류 같이 운영하는 집단이다. 어찌 보면 동아리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동인 같기도 하다. 비주류 회원은 모두 사진가이지만 동시에 모두 현장 활동가 내지는 우호적 지지자 내지는 연대 동지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한 현장에 활동가이자 사진가로 합류하여 연대도 하면서 사진도 찍는다.

    ‘비주류’ 회원이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학습이요, 또 하나는 투쟁이다. 지금은 오래 되고 낡은 것이 되어버렸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가 있게 만든 ‘운동권’ 옛 문화 와 많이 닮았다. ‘학습’은 외부에서 전문가를 초빙하여 특강을 열어 공부하는 방식이다.

    2014년에는 두 달에 한 번씩 ‘비주류’ 사진가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지식을 쌓는 일을 하였다. 4월부터 특강을 진행하였는데, 다섯 사람을 초청하여 듣고, 배우고, 우의를 다졌다. 초청된 인사로 사진비평가 이광수, 노동운동가 김진숙, 사회학자 이성철, 사진출판인 이규상, 사진가 노순택이었다. 2015년에는 특강 기간을 늘려 계절에 한 번씩 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사진교육자 임종진, 영화감독 안해룡, 사진기자 이정용이 특강에 참석하였다. 사진과 운동과 관련해 매우 다양한 곳에서 인사들을 초청한 것이 눈에 띤다.

    회원들은 각자 생업에 종사하랴, 현장에 가서 운동하랴, 사진 작업 하랴, 학습 하랴, 조직 하랴 … 2년 동안 해 온 걸 보면, 늙은 투사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서서히 내부 동력이 커갔다.

    드디어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때 계획만 잡았지, 조직이 갖춰지지 못해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일, 현장전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 동안 각자 현장에 합류하면서 따로 사진 작업을 한 것들을 모아, 현장 사진전을 여는 것이다. 무슨 좋은 프린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액자를 거는 것도 아니다. 다만, 펼침 막이나 스티로폼이나 두꺼운 종이에 프린트를 하여 거리에 세워두는 것이다. 결국 현장 사진전은 그 방점이 ‘현장’에 있지, ‘사진전’에 있지 않는 것이된다.

    그들은 사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일 뿐이라는 말에 적극 동의하는 사람들이다. 예술적 독창성을 추구하다가 대중들과 유리되는 것보다는 소위 작품성은 없을지 모르지만,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깊이 감동받고 그래서 그 사진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 땅에서 ‘비주류’가 인간으로서 조금이라도 더 대접받기를 원할 뿐이다. 소위 말하는, ‘화염병’으로서의 사진, 그들이 사진가로서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를 이루기 위해서다. 사진이 사회 진보에 눈꼽만큼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그것 말고는 더 바라는 바는 없다. 비주류들을 위한 사진판에서의 비주류들의 사진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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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해 현장 사진전, 경남 밀양 위양리. 2014.08.09

    첫 해 현장전은 그 동안 가장 많이 연대하고, 사진을 찍었던 밀양에서 열었다. 밀양 위양리 논바닥에서 큼지막하게 플래카드를 걸었다. 다 들어서버린 송전탑이 먹먹하고, 허탈한 할매들이 초췌하고, 헬리콥터에서 굉음이 지금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다.

    각자의 사진을 걸었는데, 특별한 내러티브도, 사진의 문법도, 구성도 없다. 그냥 사실 그대로에 감정선을 자극할만한 기법 그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 논바닥 위에서 모두, 만세를 불렀다. 바로 이웃 청도 삼평리에서도 똑같은 투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삼평리 이름으로 한 장 옆에다가 더 붙였다. 연대가 최우선이고, 형식은 뒷전이다. 그리고 그 다음 달 청도에서도 초청을 받았다. 그 다음 성남에서도 초청 받았고, 세월호 광화문 집회에도 참여하였다.

    그리고 11월 14일에는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그 동안 2015년 이 한 해 동안 한국 사회가 얼마나 짐승 같은 일이 노동자에게 가해졌는지, 이 판을 왜 뒤집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해를 결산하는 ‘뒤집자’전이 열렸다. 그 날은 민중총궐기가 열리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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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생탁 택시 해고노동자 농성장, 부산시청 앞. 2015.10.14

    [사진4. 서울 파이낸스 빌딩 앞 ‘뒤집자’전. 2015.11.09]

    서울 파이낸스 빌딩 앞 ‘뒤집자’전. 2015.11.09

    사실, 그들이 사진으로 무엇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생생한 목격을 기록으로 남겨 시민들에게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이미 이 시대는 그런 사진들이 홍수보다 더 넘치고 넘쳐 흐른다. 이미 익숙해진 만큼 익숙해져버린 그 이미지 범람의 시대에 그들 사진이 더해져 그 범람이 더욱 심해지고, 사람들은 이미지의 익숙함에 더욱 매몰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게 말해 두어야 할 게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도 규정할 수 없다는 시대에, 모호성과 이질성 그리고 비(非)정형성의 사회라고 해서 담론에만 참여하고, 그 유희에만 빠져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가 지금 지옥으로 가는 열차에 탑승을 했다면, 그렇게 된 이유는 우리가 그 지옥이 무엇인지, 그 지옥의 성격은 어떠한지, 그 지옥을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만 할 뿐, 아무 짓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담론의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의미가 있으니 그대로 두자. 그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결코 지옥행 열차를 멈추지 못 한다 해서 그들의 담론 놀음을 비난하지는 말자.

    마찬가지다. 행동하는 사람을 비난하지 말라. 비록 이런 행동으로 지옥행 열차를 멈추지 못할 거라고 해서 비난하지는 말라는 이야기다. 적어도 그들은 지옥행 열차에서 예술을 즐기고, 그 예술 위에서 돈으로 작품으로 사람들을 무시하는 짓은 안 하니 말이다.

    노동자들이 망루나 첨탑이 아닌 우리가 딛고 사는 땅을 디디며 함께 살고 싶은 세상, 점심으로 고구마 대신 밥 한 끼 먹고 사는 세상, 내 집에서 내 새끼들과 비록 허름한 집이지만 그냥 오순도순 살고 싶은 세상, 아침 저녁으로 좋은 공기, 좋은 물마시면서 비록 가난하고 불편하지만 우리 동네에서 살고 싶은 세상, 생떼 같은 자식이 바다에 빠졌을 때 국가가 최선을 다해 그 아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구해 엄마 아빠 품에 돌려주는 세상 …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것이다.

    더 이상 그런 일을 기록할 게 없어서 ‘비주류사진관’이 문을 닫는 세상이 하루 속히 왔으면 좋겠다. 비주류사진관의 현장사진전이 그치지 않고 열리는 이 나라가 참으로 슬프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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