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테러와 민중궐기
    그리고 식량주권의 문제
    [에정칼럼] 평등과 지속가능한 사회
        2015년 11월 27일 10: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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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한 주 동안 머릿속에서는 파리 테러와 민중총궐기의 장면들이 서로 엉켜있었다. 파리 테러 직후, 프랑스 정부는 즉각적으로 다에시(Daesh)(IS에 대한 경멸적 호칭)에 대한 보복을 선언하고 대규모 공습에 들어갔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은 슬픔과 애도 속에서도 분노하지 않으려 애썼고, 이슬람교도들과 중동 난민들을 모두 다에시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했다. 테러와 싸우는 일은 그들에게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화를 찾는 일이라고 서로를 보듬었다.

    그런데 이런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하고 하루가 지난 14일, 한국에서는 노동자, 농민, 청년, 시민사회 등이 13만여 명이 광화문에 모여 민중총궐기에 나섰다가 공권력 폭압에 시달렸고, 농사로 정직하게 살아오던 백남기 선생님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아직까지 병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후 그날 모인 13만의 민중들은 여당과 대통령에 의해 졸지에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이들은 사회를 나누고 서로를 적대시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예상보다 더 황당하고 비정상적인 행태에 분노하지 않았다. 그들은 늘 그래 왔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 신문기사를 보다가 밑에 달린 댓글을 보고 맘이 상했다. 그 기사는 나름 진보적 성향을 띄는 신문의 인터넷 기사였다. “쌀값이 떨어진 걸 왜 국가보고 책임지라고 하느냐”, “쌀 말고 밀을 재배하면 되겠네”, “우리나라는 수출하면서 수입은 거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

    농민들은 알고 있다. 한국 농업이 죽은 지 이미 오래됐다는 것을 말이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자료만 봐도 국내 식량자급률은 49.8%, 곡물 자급률은 24.0%로밖에 되지 않았다. 2013년 기준 밀은 전체 소비량의 99.3%, 옥수수는 99.2%, 콩은 88.7%를 수입했다. 누군가의 댓글처럼 우리는 차를 팔았고 밀, 옥수수, 콩을 수입했다. 그런데 차는 안 타도 그만이지만 먹거리는 얘기가 다르다. 식량은 국가를 지탱하는 기본자산인 것이다. 그 자산을 모두 외국에 넘겨주면서 당장 내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 것만 챙긴다면 언젠가 그 몇 배에 달하는 자본과 자원을 내어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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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종자 기업으로 유명한 몬산토는 종자에 대한 특허권을 사들이고, 종자를 개량하여 다년 경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청양고추도 몬산토에 사용료를 내고 사용하고 있고 이 외에도 토마토, 파프리카, 시금치 등이 있다. 농민들이 매년 몬산토에 특허권의 명목으로 비용을 지불하면 이 비용은 또 다른 종자를 사들이고 또 다른 유전자 변형을 연구하는 기금으로 사용된다. 결국, 농민들은 초국적 기업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자본과 기업에 자비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고 더 많은 수익을 위해 그들의 상품 가격을 올릴 수 있다. 그리고 식량 가격의 상승은 아파트 전세금의 상승보다 더 큰 파문을 일으킨다.

    또한, 더 중요한 것은 초국적 기업들에 의해 행해지는 식량의 세계화다. 식량의 세계화로 파인애플, 망고를 비롯하여 몇 년 전에는 구경도 못 했던 과일들과 식재료들이 밀려들어 온다. 바야흐로 먹방의 시대인지라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하는 방법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재료들은 누구에 의해 재배되고 어떤 방식으로 유통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잘 먹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알고 먹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배부른 사람은 많아졌지만 배고픈 사람도 많아졌다. 우리의 수명은 늘어났지만, 땅은 죽어가고 있다. 부조리하고 불평등하다. 그래서 농민들은 식량주권을 외친다.

    식량주권에 대해서는 2007년의 닐레니 선언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식량주권은 환경 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되고 문화적으로도 적합한 식량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이며, 또한 민중들이 그들의 고유한 식량과 농업 생산 체계를 결정지을 수 있는 권리이다. 식량주권은 식량체계와 정책의 중심을 시장과 기업의 요구가 아니라 생산과 공급, 소비를 하는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하며 동시에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식량주권은 농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며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민중궐기가 있던 그날 공권력의 힘에 쓰려진 한 농민은 단지 이것을 지키고 싶었다.

    이제 다시 프랑스로 가보자

    오는 11월 30일부터 12월 11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제21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가 개최된다. 테러가 발생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열리는 유엔회의다. 혹자가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2주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이전의 기후변화당사국총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리라 예측되는 회의다. 프랑스 정부는 회의 기간에 예정되어있던 대규모 집회에 대해 공식적으로 불허방침을 밝혔다. 안전상의 문제다.

    하지만 여기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기후변화와 빈곤과 테러가 서로 연관이 있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단순히 지구의 온도를 낮추는 것뿐 아니라 전쟁, 기후변화, 가난을 유발하고 심화시키는 지금의 강대국과 초국적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지속가능하고 민주적인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에는 소농의 권리와 식량주권도 있다.

    테러에 맞서 기후변화총회에서 가난의 종식과 시스템 전환을 이야기하는 프랑스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와 어떻게 맞설 것인가? 부디 우리가 앞으로 쟁취할 많은 것들에 무임승차자가 없길 바래본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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