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광화문
그리고 플란다스의 개
[다른 삶 다른 생각] 농꾼 백남기
    2015년 11월 26일 03: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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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라슈가 제일 먼저 생각나고, 네로와 알루아가 생각나는 어릴적 TV만화 제목이 ‘플란다스의 개’이고, <지리멸렬>을 찍고 한동안 지리멸렬하던 봉감독이 나름 스크린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영화 제목이 또한 <플란다스의 개>이다.

근데, 플란다스는 어디쯤에 있는 나라인가? 도시인가? 대충 찾아보니 벨기에 서부와 네덜란드의 남부 일대를 포함한 지역을 부르는 지명이다.

슬그머니, 작고하신 정 선생의 글을 조금 도둑질해오자면….

13세기쯤엔 이 지역, 파트라슈가 뛰어 놀던 플란다스는 고급의 양모 생산지로서 세계적인 명성이 높아서 좀 잘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기 마련인 약삭빠른 플란다스의 자본가들은 양모 자체의 생산보다는 영국 모직물의 수입에서 더 큰 이문이 난다는 것을 알고는, 양모 생산을 포기하고 모직물 수입에 점차 몰두하게 된다.

그러자 플란다스의 생산 기반은 무너지고 그 기술자들은 어쩔 수 없이 영국으로 이주하게 되고, 시간이 흘러 영국은 모직물 공업을 바탕으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일으켜 잘 먹고 잘 살게 되는데, 양떼들이 자취를 감춘 플란다스의 초원은 점점 더 황폐해져 갔다는 이야기.

중학교 국어시간스럽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의 주제는, ‘생산’을 포기하고 ‘무역’을 선택한 인간의 무지와 오류에 대한 역사의 가혹한 심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11월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전국농민대회가 열렸다. 여기 지리산 골짜기 농꾼들도 버스 하나 대절해서 새벽밥 먹고 서울로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농민가도 한번 부르고, 촌놈 소리 듣지 않도록 구호 연습도 몇 번하고, 길 잃어버리지 않게 농민회 깃발 잘 따라오라는 신신당부를 귀에 뭐가 앉도록 듣고 또 듣고 하면서 장장 6시간 만에 서울 4대문 안에 발을 디딘다.

인산인해다. 노동조합 조끼 입은 사람들, 깃발 든 사람들, 명동에 놀러온 중국 사람들, 빌딩은 왜 그리 높고 많은지, 어리벙벙하다가 겨우 새로 지은 남대문 앞 농민대회장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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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부슬부슬 내리지, 스피커 소리는 방방 울리지, 옆쪽에 어디서 온 농민들은 둘러앉아 막걸리에 수육 한 잔들 하시고, 우리 동네 무시기는 오다가 사라져서 찾아 댕기고, 비옷 대신 뒤집어 입은 쌀포대에 뭐라뭐라 구호를 쓴 할무이들이 우루루 지나가고, 뻘건 머리띠 둘러맨 할배들은 도로에 주저 앉아 담배 피우시고, 야, 이거 난리버꾸통이 따로 없네 싶다.

급기야 연단에선 농사 지어도 빚만 늘어가는 농산물을 불태우고, 상여를 메고 행진을 시작하는데, 지리산 촌놈들은 농민회 깃발만 쳐다보면서, 걷다가 서다가, 어느덧 무시기 백화점도 지나고, 청계천 똥물도 건너고, 희안한 삼성건물 앞 네거리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저 앞에선 물대포가 춤을 추고, 캡사이신 냄새는 풀풀 풍기고, 참내, 환장하것네.

종각 네거리에서 농민가도 부르고, 구호도 외치면서, 문득 플란다스의 개가 생각났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플란다스의 그 자본가들의 짓거리가 생각났다.

지난해 17만 원대를 유지하던 80㎏ 쌀 1가마가 올해는 15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9월 초 쌀값은 5만원(조곡 40㎏ 1포대)대로 전년 동기 6만2000원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떨어졌다. 그러면 왜 쌀값이 떨어지나?

정부는 햅쌀의 소비 가능 물량을 397만톤으로 잡는다. 그해 생산량이 397만톤을 넘어서면 쌀 시장 가격은 하락한다. 통계청이 전망한 올해 쌀 생산량은 425만8000톤. 소비가 안되는 물량만 28만8000톤에 이른다. 이 정도 물량이 남아돌면 쌀 가격이 폭락해 생산농가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15년산 햅쌀 20만톤을 매입해 시장에서 격리시키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민간 농업전문가들은 올해 실제 생산량이 최대 447만톤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소비 못하고 남는 쌀 물량이 50만톤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정부는 그 지랄 맞은 FTA를 핑계삼아 매년 41만톤의 쌀을 수입하고 있다.

농민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정부가 20만톤이 아니라 50만톤을 매입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밥쌀용 쌀을 수입하지 말라는 것. 심플하다.

누군가, 수요와 공급 어쩌고, 시장의 원리 저쩌고, 말할런지도 모른다. 쌀과 농산물의 가격은 주류경제학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는 없다. 왜냐구? 대한민국이 그렇게 좋아하는 미국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미국은 최근 5년간 연평균 169억 달러(16조1,100여억 원)씩 총 845억 달러를 농업보조금으로 지원했다. 대표적인 농업보조금은 ‘3중의 농가소득 안전망’이라 불리우는 △마케팅론(Marketing Loan) △고정직접지불제 △경기대응 소득보조(Counter-Cyclical Payment)이다.

미국은 3대 안전망을 통해 최저가격을 보장(마케팅론)하고, 이에 추가해 매년 일정액의 직접지불금(고정직접지불제)을 농가에 지원하고 있다. 또 시장가격과 직접지불단가의 합계액이 목표가격에 미달하면 그 차액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통해 농가소득에서 차지하는 보조금 비율을 2004년 15.2%에서 2005년 33.2%로, 2006년에는 33.5%로 꾸준히 높여가고 있다. 특히 농가당 보조금이 가장 많은 쌀의 경우 2004년에 6만213달러를 보조금으로 지원했다. 이는 같은 해 쌀 농가의 농업소득인 8만5,500달러(8,150여만 원)의 70.4%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모내기를 하지 않아 풀들이 무성한 논과 밭들이 내팽겨 쳐져도, 미국에서 중국에서 싼 농산물을 수입해 오면 되지 않니? 우리는 그 논밭에다 삼성전자 공장을 지어 스마트폰 수출하면 되지 않니?라고 말하는 자들은, 플란다스의 교훈을 다시 한번 되돌아 봐야하고, 또 자유무역의 주창자인 미국의 자국농 보호를 유심히 쳐다봐야 할 게다.

끝으로, 우리 농꾼 백남기 선생님…..힘내세요.

백난ㅁ기

필자소개
대구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지리산에 살고 있는 초보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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