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죽음과 비극을
    너희의 전쟁에 이용하지 말라
    [기고] 먼저 사라져야 할 것은 제국주의와 침략 정책이다
        2015년 11월 19일 05: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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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테러로 또 수많은 생명들이 희생됐다. 파리 테러 전날에는 레바논에서 40여명이, 이라크에서 17명이 테러의 희생자가 됐다. 얼마전 2백여 명을 태운 러시아 여객기도 테러로 추락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희생된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한 생명이고 개성을 가진 인격체였다.

    우리처럼 그들도 모두 꿈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고, 각자의 살아온 삶과 자의식은 그것 하나하나가 작은 우주였고 역사였을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자식이자 연인이자 부모였을 것이고, 이제 누군가는 이 죽음을 평생 잊지 못하고 트라우마와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증오심과 적대감이 너무나 커서,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못하고 죽거나 죽여도 된다는 생각과 행동이 곳곳에서 나타나는, 이것이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이다. 이 비극과 슬픔으로 가득 찬 세상은 이윤과 석유, 패권을 위해서 중동은 물론 이 세계 곳곳을 쑥대밭이자 전쟁터로 만들어 온 어리석은 사람들이 만들어 왔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의 생명이라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파리 등지에서 테러의 희생자는 그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 출구없는 세상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보통 사람들이었다. 테러는 노동계급과 이민자 거주지역에서 벌어졌다. 어쩌면 인종차별과 전쟁에 반대하고 행동하던 사람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이 때문에 더욱 참담한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테러리스트들은 어리석었고 정당화될 수도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무슬림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며 중동 민중의 고통을 대변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자신들은 제국주의와 그 하수인들을 반대하기에 이런 행동을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무모한 공격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 테러는 무슬림 차별과 중동 민중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며, 제국주의와 그 하수인들의 폭력과 전쟁을 더욱 확대시키기만 하고 있다. 이슬람국가(IS)가 반제국주의 세력이고 중동 민중 저항의 대변자라기보다는 또 다른 반동세력이라고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총기를 난사하던 테러범이 했다는 이 말은 분명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다. “이것은 당신들의 대통령의 잘못 때문이다. 그는 시리아에 개입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번 테러는 프랑스가 중동 지역에 샤를 드골 항공모함을 파병해서 폭격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에 벌어졌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이 주도하고 프랑스가 동참한 시리아-이라크에 대한 폭격으로 지난 1년간 450명(어린이 100명 포함)이 넘는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최근 며칠간 보복 폭격 속에서 시리아에서 또 4백여 명이 죽었다.

    강대국 지배자들은 이번 테러가 ‘인류와 문명세계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국주의 강대국 지배자들은 ‘인류와 문명’을 대표할 수가 없다.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힘없는 나라를 침공하고 폭격하는 집단, 특히 병원과 학교를 주된 타겟으로 삼아 폭격하는 집단, ‘오늘은 시리아 폭격하기 좋은 날씨’라는 방송을 하는 집단은 야만을 대표할 뿐이다.

    사실 ‘이슬람국가(IS)는 민간인과 여성, 아이까지 가차 없이 대량 학살하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야만’이라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민간인과 여성, 아이까지 가차 없이 대량 학살’하는 것은 이미 제국주의 국가들이 중동에서 더 대규모로 진행하고 있던 범죄행위다.(이 나라에서는 이승만 정권도 저질렀던 일이다.)

    기반시설 파괴, 고문, 전시 성폭력, 약탈 등이 뒤따른 ‘대테러 전쟁’ 14년 동안에만 중동에서 수십만 명이 죽었고 수백만 명이 난민이 됐다. 이런 상황을 만든 강대국 지배자들이 이번에 ‘소중한 생명’을 운운하니 공감보다 냉소와 반발이 나오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 프랑스 정권이 해야 할 일은 “무자비한 전쟁”을 선언하고 시리아 폭격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비상사태를 연장하고, 경찰력을 증강하고, 이민과 시민 자유에 대한 통제· 억압을 강화하기 위한 개헌을 추진하는 게 아니다.

    왜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테러리스트가 됐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왜 무슬림들이 ‘더러운 아랍 놈’이라고 불리며 프랑스 감옥 수감자의 70%를 차지하고 있는지, 이런 그들의 마음속에 어떤 불행의 씨앗이 자랄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경멸, 혐오, 차별, 왕따, 냉대를 당하는 집단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예상못할 일이 아니다. 드론 폭격으로 IS 조직원 1명을 죽일 때마다 평균 민간인 7명이 사망하는 것이 무슨 결과를 낳을지도 예상못할 일이 아니다. 이라크, 아프간, 시리아에서 테러로 매년 수만 명씩 죽어가는 데 유럽 대도시만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도 명백했다.(지난해 테러 사망자의 80%는 아랍인들이었다.)

    하지만 강대국과 지배자들은 이윤과 패권을 위한 경쟁체제에 깊숙이 얽혀 있는 존재조건과 이해관계 때문에 이것을 모른 채 하거나 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재앙의 원인이 된 그 정책들, 즉 폭격과 침략과 인종차별을 더욱 강화하려 하고 있다. 더 큰 재앙과 비극을 향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난민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국경을 막아버리고, 시리아에 대한 폭격을 더욱 강화한다고? 그럼 아랍 민중은 오도가도 못하고 죽어버리라는 것인가?

    사실, 우리는 진작 더 일찍 더 많이 슬퍼했어야 한다. 파리 테러 희생자와 그 가족, 친구들의 고통에 찬 비명과 타들어가는 심장을 보면서, 중동에서 강대국 지배자들이 벌여 온 폭격, 전쟁 속에 죽어간 아랍 민중의 심정을 떠올려봐야 한다.

    이번 테러는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그 어떠한 민족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오래된 경구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지금 서구 사회 시민들 속에서 ‘왜 소수의 이윤과 패권을 위한 전쟁과 그것이 부르는 테러 속에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자라고 있다. 이들이 중동의 평범한 민중들과 어깨를 걸고 끝없는 전쟁과 폭격, 그것이 낳는 테러의 악순환을 멈춰 세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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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혁재장전 ht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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